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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불에 어린 추억

이산저산구름 2007. 12. 26. 13:51
서산마애블에 어린 추억
 

 지지난해던가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 나는 당분간 미술공예연구실의 책임을 벗고 부여문화재 연구소가 부여군청의 의뢰를 받아 발굴하고 있는 백제시대 절터 군수리 현장에 지원 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이 때는 연구소가 우리나라 대표적 철불이 출토된 곳으로 잘 알려진 보원사 터에 대한 시굴조사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고,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속칭 강뎅이 골로 유명한 서산마애불을 오랜만에 마주 할 수 있었다.

 이 삼존마애불은 지난 1950년대 우리들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시절만 하더라도 아무런 시설이 없이 노출되어 있던 것이 60년대 중반부터는 보호각으로 막혀 있었고, 이제는 다시 보존상 삼면의 벽체를 없애서 남은 기둥사이로 자태를 드러낸 삼존불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감회를 갖게 하였다.
 흔히 “위대한 발견”으로 회자되는 이 서산마애삼존불 하면 무엇보다도 발견 당사자이자 부여박물관장을 역임하였던 연재(然齋) 홍사준(洪思俊)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나에게는 당시 홍사준  선생님과 함께 현장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초우(蕉雨) 황수영(黃壽永) 선생님이 오히려 기억에 새롭게 다가온다.

 그 유별난 기억이 지금도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대학교 학창시절 불교미술에 초출내기였던 나로서는 황수영 선생님의 백제불상과 관련한 첫 강의에서 받은 깊은 인상 때문이었다. 아울러 단색 넥타이와 어우러진 감청색 정장에 손수 작성하신 강의자료를 들고 열강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왜 선생님이 그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백제불에 그토록 집착을 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생겼다. 사실 백제의 본 고장인 공주에서 태어나 자라난 내가 알고 있는 백제불에 대한 상식을 무너뜨리는 강의 내용도 신선했지만 백제불이 갖고 있는 고유의 소박한 자연미, 신라불과 대비되는 반 귀족주의적 자태, 비인위적인 조형미를 안고 있는 백제불에 대한 끊임없는 해석을 토해내는 그 강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더욱 새로운 사실은 그런 분석과 해석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선생의 은사인 한국 미술 사학계의 거목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우현 선생님은 황수영 선생님으로 하여금 백제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여 주었고, 연구의 계기를 제공한 참다운 스승이었던 것이다. 황수영 교수님의 그 강의 전체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후생가외(後生可畏)’이었다.

 서산마애불 하면 특이한 구도의 삼존형식으로, 그 본존의 상호에 어린 순진무구한 미소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서산마애삼존불을 평생 유지 관리하여온 관리자가 발견한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소에 대하여 관람자들이 경탄을 김치 못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삼존불의 ‘살아있는 미소’ 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무궁무진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불상에 대해 미술사적인 안목이 깊지 않지만 이 삼존불 가운데 협시보살은 차지하고서라도 가운데 주존불의 상호를 보고 있노라면 ‘이와 같이 특이한 모습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곤 하였다.

  오죽하면 이미 작고하신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선생님은 “이 같은 얼굴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역설했을까.
 어떻게 보면 마치 ‘우리네 시골 할아버지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손주에게 친숙하게 금방이라도 두 손을 내밀며 반겨줄 것 같은 표정’ 이다.

  작년인가 모교인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세계의 빛 우주의 빛” 전시회에 다녀왔다. 직장인인 나로서는 대학시절의 전공인 조각분야의 꿈을 접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전시회에 출품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는 극성스러운 전업작가 후배의 등살에 떠밀려 겨우 흙으로 빚어 구운 그다지 볼품없는 작은 소조상(테라코타) 한 점을 낸 터였다. 나중에 안내책자로 전시형편 정도나 알아 볼 요량이던 차에 명색이 미술과 초창기 졸업선배로서 반드시 전시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불화같은 후배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개막식에 나가게 되었다.

 전시회 개막 직전에 겨우 도착한 나는 전시장 입구에서 나누어 준 카탈로그에서 황수영 선생님을 오랜만에 뵐 수 있었다.

 개교 1세기만의 기념전이었기 때문에 각별히 원로 교수님들의 출품작도 함께 초대한 듯 했다.
 그 분의 출품작은 ‘다소곳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앉아 있는 불상’ 주위로 발문(跋文)이 한자로 빼곡히 씌어 있는 김원룡 선생님의 실제 작품이었다.

 그리고 출품작 바로 위와 옆은 데생식의 연필로 그린 초상과 정장차림의 조그만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다. 바로 대학시절에 열강을 하시던 열의에 찬 50대의 그 모습을 넘어 ‘이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만고풍상을 다 겪은 원숙한 미술학자의 안정된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막 한 장을 넘기고 있는 차에 곧 개막식이 있겠다는 안내방송에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내심 뵐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끝내 오시지 않아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지난 어느 날 대전 숙소 방 한 켠에 어지럽게 흩어진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동국대 개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 도록’ 에 수록된 황수영 선생님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소발(素髮:민머리) 모양만 제외하면 음영이 짙게 깔린 눈 아래 굵은 주름이며 뭉툭하고 널찍한 콧망울, 적당히 두툼한 입술 등이 서산마애삼존 가운데 본존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나만이 느끼는 그 분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 묘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황수영 선생님의 백제불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모아져 그 사진이 삼존불의 모습으로 재현된 것은 아닐는지……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장 김선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