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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권정생 선생 추모글)

이산저산구름 2007. 5. 28. 11:50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 권정생 선생을 떠나보내며 -
                                                                               김헌택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산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아카시아 향기가 제 코를 간질이고 있습니다. 몇몇 아이들도 수업에 열중하기보다는 창 밖 먼 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했나 봅니다. 지난 17일 남북 철도가 반세기의 세월을 훌쩍 넘어 남과 북으로 오고 가던 날 낮에 권정생 선생님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지난 2월에 찾아뵙고 금강산 함께 가자고 졸랐더니, "기차로는 모를까, 차로는 도저히 갈 수 없노라"고 말씀하시고는 기어코 이 뜻깊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자유로이 훨훨 날아서 경의선, 동해선 철길 따라 북녘 땅 아이들 보고싶어 홀연히 떠나셨나 봅니다. 대구 가톨릭 병원에서 돌아가시자, 서둘러 안동병원 영안실로 모셨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빈민가 헌옷장수 집 뒷방에서 태어나, 어릴 때 그곳에서 "이 때 나는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따듯한 촉감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셨듯이 이 어릴 때의 기억이 바로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를 낳았고, 그의 70 평생동안 100 여 편이 넘는 글을 썼습니다.

 해방 후, 조국이라고 찾아왔지만, 가난이 가족을 외가인 청송과 안동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당시 안동 읍내 잡곡가게에서 첫 직장을 잡았으나, 주인의 '저울 눈금 속이기'를 보고 괴로워하다가, 부산으로 떠나 책가게 점원을 하다가 결핵이라는 병을 얻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동생의 혼사에 지장을 줄까봐 집 떠나 살아온 유랑의 삶이 일직교회 예배당 종지기로 정착합니다.

 

 1969년 '강아지 똥'으로 기독교 문학상을 수상하시고.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권 선생의 글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하나같이 이 땅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강아지 똥, 지렁이, 먹구렁이, 똘배, 앉은뱅이, 거지 문둥이, 장님, 절름발이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또한 갈라진 이 땅의 분단의 역사를 아파하면서 들풀처럼 모질고 굳세게 살아온 이들을 그 분의 글 속에서 주인공으로 삼아 아름답고 올곧게 생명을 불어넣어 그려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국내는 물론 일본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셨습니다. 

 

 '가난하여 베풀 수 있었던 당신의 삶/ 삶이 고단하여 맑을 수 있었던 당신의 삶/ 닮고 싶어서 찾아가고/ 배우고 싶어서 찾아들었지만/ 살아 생전 잘 모시지 못한 채/ 선생님 떠나보내고 남은 우리/ 죄인이 되어 가슴을 칩니다/ 가족은 가족대로 / 친구는 친구대로/ 당신의 고독과 고통에 힘되지 못한 죄밑으로/ 통곡을 하고 가슴을 칩니다. ......(조영옥 조시 '선생님 가시는 그 나라에는'에서) 하지만, 선생을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이 서로 만나 서로를 확인하고 함께 선생을 흠모한 이들이 이렇게도 많이 만나게 되어 장례기간 내내 힘들어도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선생의 누님과 아우와 조카들도 만나고, 정호경 신부님, 최완택 목사님, 염무웅, 이하석, 도종환, 박기범 등과 눈이 해맑은 어린이들도   만나서 시네미골 선생의 부모님 산소와 사시던 집 뒤편 빌뱅이 언덕에 유언대로 유골을 흩뿌렸습니다.

 

 생전에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중략...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 가고/ 어머니와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오래오래 살았으면......(권정생 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서)하고 평생을 그리워하셨던 어머니와 혹독한 병마와 싸우며 가는 길에 든든한 길잡이이자 벗이셨던 이오덕, 전우익, 권종대, 김영원 님들을 기쁘고 행복한 하느님나라에서 만나 뵙고 덩실덩실 춤추며 북녘 땅, 아니라 세상 그 어디라도 가실 수 있겠지요? 이제는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안한 안식에 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