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1288

메아리의 이치

메아리의 이치 어느 마을에 호기심이 가득한 한 아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단풍 구경을 하기 위해 홀로 산에 올랐습니다. 울긋불긋 예쁜 옷 입은 산을 보자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앞산을 향해 "야!"하고 소리 질렀더니 앞산에서 역시 "야!"하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앞산의 누군가 화답했구나 싶어 "너는 누구니?"라고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 대신 아이의 물음과 같은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누군가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자기 흉내만 내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난 아이는 이번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이놈아!" 그러나 역시 그대로 돌아왔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아이는 한참 동안 앞산을 향해 화를 내고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아들의 사정을 다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다시 ..

두드려야 희망이 있습니다

두드려야 희망이 있습니다 일생을 문밖에서 서성이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이라도 문 안으로 들어가길 바라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는 일평생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죽을 무렵이 돼서야 문지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안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나요?" "이 문은 당신이 먼저 열어 달라고 해야 열리는 당신의 문입니다." 문지기의 말에 그는 후회했습니다. 진작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거나 열어보려고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벌써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던 걸까... 남자는 땅을 치면서 통탄해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돈가스와 소스

돈가스와 소스 오래전 어느 군부대에서 저녁 식사 때 일입니다. 그날은 특식으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돈가스를 1인당 1개가 아닌 2개의 돈가스를 나누어 준다는 소식에 병사들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일순간에 병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돈가스가 2개인 대신 소스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식 담당 병사가 실수로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가 아닌 돈가스 두 상자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병사들의 불평이 들렸습니다. "소스도 없이 맛도 없게 돈가스만 2개 먹으란 말이야?" 그때 한 선임병이 말했습니다. "다들 그만 불평하자. 분명히 어떤 부대에서는 지금쯤 돈가스 없이 소스만 ..

500년 금기를 깼다

500년 금기를 깼다 미국이 자랑하는 발레단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는 영국의 로열 발레단,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극장 발레단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발레단입니다. 이곳에서 수석 무용수가 된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는 발레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흑인 발레리나입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였고 모텔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지역 청소년 클럽에서 발레를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고 13세 때 발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또래보다 매우 늦은 시기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레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보통의 경우 성공하는데 1년 정도 걸리는 동작을 단 3개월 만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쐐기풀을 꽉 잡다!

쐐기풀을 꽉 잡다! 여름에 꽃이 피는 쐐기풀은 줄기나 잎새에 연한 가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살짝 스치거나, 건드리면 가시에 찔려서 상처가 나지만 오히려 꽉 잡으면 아무렇지 않다고 합니다. 한 아이가 이 쐐기풀의 가시에 찔려 울면서 엄마에게 다가와 아픔을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야 다음부터 쐐기풀을 만질 때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담대하게 꽉 잡으렴. 그러면 가시가 부드러워져서 다치지 않는단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은 일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담대하게 나서야 합니다. 영어의 숙어 중 '쐐기풀을 잡다'라는 말인 'Grasp the nettle'은 '곤경에 선뜻 맞서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작은 가시의 두려움을 넘어설 때 더 ..

까치밥을 남겨 두는 마음

까치밥을 남겨 두는 마음 장편소설 '대지'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합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부모님을 따라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음에도 평생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예찬했습니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또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긴 계기는 196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몇 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짐은 서로 나누어지는 것'이라는 소재로 편리함과 합리성을 따지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1987년,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제니퍼 브리커(Jennifer Bricker)'. 부모는 장애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홀로서기'를 바란 양부모의 지원 속에 제니퍼는 보조 기구 없이 두 팔로 뛰는 방법을 배웠고 소프트볼, 농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독립심 강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습니다. 제니퍼는 체조선수인 도미니크 모치아누의 연기에 반해 체조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가족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으며 제니퍼는 전미 청소년 체육대회 지역 예선 1위, 전국대회 4위 등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

헤라클레스의 선택

헤라클레스의 선택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힘을 보였습니다. 아버지 안피트리온은 그런 아들의 힘에 놀라 키타론 산으로 그를 보내 소 떼를 돌보게 했습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앞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 소 떼를 돌보다 잠이 들었고 비몽사몽 하며 꿈을 꾸게 됩니다. 꿈에서 헤라클레스는 갈림길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는 욕망이라는 여자와 미덕이라는 여자가 양쪽 갈림길에서 다르게 서 있었고, 헤라클레스를 기다렸습니다. 욕망이란 여인은 자신과 함께 간다면 아주 쉽게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 있다고 헤라클레스에게 손짓했습니다. 반면 미덕이라는 여인은 자신을 따르는 길은 고난과 고통이 있지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헤라클레스..

능률의 비결

능률의 비결 어느 마을에 성실하기로 소문난 두 나무꾼이 장작을 패러 산에 함께 갔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도끼를 가지고 반나절 동안 나무를 베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서로 쌓인 장작의 짐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의 일하는 방법의 차이였습니다. 한 나무꾼은 쉬지도 않고 계속 나무를 베었고 나머지 나무꾼은 1시간 나무를 벤 후 10분 쉬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쉬지 않고 일한 나무꾼보다 10분씩 쉬며 일한 나무꾼이 더 많은 나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쉬지 않고 일했던 나무꾼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쉬지도 않고 일한 나보다 어떻게 더 많은 나무를 벨 수 있었지?" "간단하네, 나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다네." 중요한 일을..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이다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이다 1996년 신예순 할머니는 74세의 나이로 해발 5,800m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등정해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 몸도 마음도 허약해질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등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리도 불편하고, 관절도 좋지 않았으나 꾸준히 산을 오르면서 할머니의 몸과 마음은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등산을 통해서 인생의 이치도 알게 되었다며, 산이 곧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1992년 등정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킬리만자로를 다시 마주했을 때 두려움도 있었지만, 함께 오르는 사람들의 응원과 성원에 힘입어 극복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등정에 성공한 뒤 신예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회만 닿는다면 더 높은 산이라도 오를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