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밤 편안히 앉아 등불을 은은히 하고 차를 끓인다. 세상은 온통 고요한데 시냇물 소리만 졸졸졸 들려와 이부자리도 펴지 않은 채 건듯 책을 읽어본다.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 빗장 걸고 방을 치우고선 눈 앞에 가득한 책을 흥 나는 대로 꺼내서 본다. 사람들의 왕래가 뚝 끊겨 온 세상이 고즈넉하고 온 집안이 조용하다.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 빈 산에 겨울이 찾아와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싸락눈 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바람결에 흔들리고, 추위에 떠는 산새가 들판에서 우짖을 때, 방안에서 화로를 끼고 앉아 차 끓이고 술 익힌다.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야언(野言)’ 중 일부(김수진 편역 ‘신흠선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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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의 즐거움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책 읽기다. 책 읽기 예찬은 계속된다. ‘글 읽기는 이로움만 있을 뿐 해가 없다’고. 마치 산과 내를 사랑하고, 꽃과 대죽과 바람과 달을 완미하고, 단정히 앉아 묵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는 없고 오직 이로움만 있다 한다.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속된 병, 책 읽기 만이 그 속된 병을 고치는 길이라 한다.
책 읽기의 유익함이 어디 한 두마디일까.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란 자호로 유명한 이덕무는 추운 겨울날 ‘논어’와 ‘한서’를 병풍과 이불 삼았다는 일화를 전한다. 동서고금, 나를 알고 세상을 아는 길이 책 읽기 아닐까. 새해의 다짐이 흔들리는 가, 마음이 어수선한 가. ‘건듯’ 책 한권을 집어, ‘흥나는 대로’ 읽어 보자.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