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글

어디에도 사람의 길이 없네

이산저산구름 2007. 1. 12. 10:20
어디에도 사람의 길이 없네



친구여.
천리길을 걸었네.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걸었건만 기계의 길, 자동차의 길이 있었을 뿐 사람의 길이 없었네. 길에 서있는 한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자동차이었네. 혹여 사람이 있을지라도 사람을 배려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네.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네. 미덥지 않으면 한번쯤 서울을 벗어나 길을 걸어보게나. 내 이야기가 구체적 사실임을 바로 실감하게 될 것이네. 그뿐만 아니라 길에서의 인간이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네. 적어도 길 위에서만큼은 인간의 생살여탈권을 자동차가 쥐고 있음이 틀림없네.

"길을 장악한 자가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옛말을 들은 적이 있네. 어떤 사정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는 아는 바가 없네. 하지만 옛사람들의 뛰어난 통찰력은 감탄스럽기 그지없네.

길을 걸어보니 옛 말씀대로 길을 장악한 기계가 세상의 주인으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 전이네. 자기도취에 빠진 무지한 인간들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네. 사람이 길의 주인인 시절은 벌써 끝이 났네. 만물의 영장이라며 큰 소리 치던 인간들이 자기 꾀에 빠져든 셈이네. 돈, 기계, 자동차 따위를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사람다운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네. 대다수 사람들이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조짐들은 말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네.

-도법스님 ‘생명평화 탁발순례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