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 싶은 시

작은 사람, 권정생 - 임길택

이산저산구름 2019. 4. 29. 15:06


작은 사람, 권정생

 

                                         임길택


 

어느 고을 조그마한 마을에


한 사람 살고 있네.


지붕이 낮아


새들조차도 지나치고야 마는 집에


목소리 작은 사람 하나


살고 있네.


  

이 다음에 다시


토끼며 소며 민들레 들


모두 만나 볼 수 있을까


어머니도 어느 모퉁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잠결에 해 보다가


생쥐에게 들키기도 하건만


변명을 안 해도 이해해 주는 동무라


맘이 놓이네.

 


장마가 져야 물소리 생겨나는


마른 개울 옆을 끼고


그 개울 너머 빌뱅이 언덕


해묵은 무덤들 누워 있듯이


숨소리 낮게 쉬며쉬며


한 사람이 살고 있네.


  

온몸에 차오르는 열 어쩌지 못해


물그릇 하나 옆에 두고


몇 며칠 혼자 누워 있을 적


한밤중 놀러 왔던 달님


소리 없이 그냥 가다는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그러나 몸 가누어야지


몸 가누어


온누리 남북 아이들


서로 만나는 발자국 소리 들어야지


서로 나누는 이야기 소리 들어야지.


  

이 조그마한 꿈 하나로


서른  넘기고


마흔  넘기고


쉰  넘기고


예순마저 훌쩍 건너온 사람.

 

 


바람 소리 자고 난 뒤에


더 큰 바람 소리 듣고


불 꺼진 잿더미에서


따뜻이 불을 쬐는 사람.


  

눈물이 되어 버린 사람


울림이 되어 버린 사람.


  

어느 사이


그이 사는 좁은 창틈으로


세상의 슬픔들 가만히 스며들어


꽃이 되네.

 


꽃이 되어


그이 곁에 눕네.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27, 19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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