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
눈 녹은 해토어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윌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래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려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 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시들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글 / 박노해 시집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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