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은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 류시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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