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시

우리의 손끝에서 혁명은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

이산저산구름 2016. 11. 29. 10:01

 

우리의 손끝에서 혁명은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

- 체 게바라 시, <대장의 접시> <새로운 인간> <나의 손끝>

글 최규화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 realdemo@hanmail.net

 

 

촛불이 켜졌다. 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면 꺼질 거라던 촛불은 횃불로 커졌다. 들불로 옮겨 붙었다. 10만, 20만, 50만, 100만. 더 이상 그 숫자를 짐작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다. 촛불은 자존심이다. 이 나라가 누구 것인데, 이른바 ‘비선실세’라는 몇몇이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자존심이다. 촛불은 위로다. 어째서인지 국민의 몫이 된 부끄러움을 서로 마주하고 서로 녹여주는 위로다. 그리고 촛불은 혁명이다. 주어지는 대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 세상을 직접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바로 혁명의 시작이다. 11월 12일 서울 시내에 100만의 촛불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깜짝 놀란 청와대와 여당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것도 잠시,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반격에 나섰다. 누구보다 심하게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은 적반하장으로 헌법을 들먹이며 업무에 복귀했다. 검찰 조사를 받겠다던 약속은 은근슬쩍 뒤로 미뤘다. 가신들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따위의 말로 민심을 희롱했다. ‘퇴진할 정도의 큰 잘못은 아니다’라는 말로 대통령의 심기부터 살폈다.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국민들의 뜻을 서슴없이 모독했다.

 

대장의 접시

식량이 부족해 배가 고플수록
분배에 더욱 세심해져야 한다
오늘,
얼마 전에 들어온 취사병이
모든 대원들의 접시에
삶은 고깃덩어리 2점과
말랑가 감자 3개씩을 담아주었다
그런데,
내 접시에는 고맙게도
하나씩을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난 즉시
취사병에게 접시를 던지며 호통쳤다
“이 아부꾼아,
지금 여기서 당장 나가!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네놈이 적군한테도 이렇게 인심 쓰듯
총을 쏘아 댈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그러고는,
취사병의 무기를 빼앗은 다음
캠프 밖으로 추방시켜버렸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11월 19일 다시 촛불을 들고 모였다. 전국 곳곳에서 다시 100만이 모였다. 예정된 ‘집중집회’는 한 주 뒤인 11월 26일이었지만, 분노한 국민들은 ‘숨 고르기’조차 잊어버렸다. 한가롭게 시집을 뒤적이는 것이 잠시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야수의 시대로 치달을수록, 그에 맞서는 인간은 더욱 더 ‘인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혁명의 때, 인간의 마음을 담은 시. 자연스럽게 ‘그’가 떠올랐다. 위의 시는 <체 게바라 시집>(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노마드북스/ 2007년) 100~101쪽에 실린 시다. ‘시집’이라고 돼 있지만, 체 게바라가 이 시들을 모두 시로 생각하고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그의 일기와 편지 등에서 군데군데 시와 같이 섬세하게 빛나는 간결한 구절들을 찾아 시집의 형태로 묶은 것이다. 혁명과 저항의 상징 체 게바라.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킨 특별한 사람이자,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은 인간 이상의 인간. 그가 남긴 시편을 통해 인간으로서 그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뇌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밝힌 혁명의 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장의 접시’는 그가 겪은 일을 일기처럼 써내려간 시다. 작은 사건 같지만, 그 사건을 대하는 체 게바라의 태도는 엄격하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그런 엄격함을 배우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치욕을 당하고 있다. 고개를 들지 못하게 부끄러웠고, 우롱당한 도덕과 가치들 앞에서 노여움이 치솟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촛불은 “단 한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평등을 모독”한 이들을 더 이상 용서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명령이다. 변화의 불씨였던 촛불은 이미 혁명의 들불로 일어났다.

 

새로운 인간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 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끊임없는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간이다

<체 게바라 시집> 61쪽에 실린 시다. 촛불 이후의 우리는 촛불 이전의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국가도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300여 명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쯤으로 부르던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유가족들의 참담한 마음을 걱정할 때, 대통령의 지지율만 걱정한 대한민국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갖고 있던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 뒤, 국정원이 만들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출했고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보이는 그것.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였다. 국민들은 웃음소리 한번 크게 내는 것도 미안스러워 할 때였다. 하지만 그 보고서에는 진상규명이나 선체 인양, 유가족 지원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었다. 오직 '비판 세력이 여객선 사고를 빌미로 투쟁을 재점화하려는 기도를 제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유가족들을 편 가르기 하고, 보수단체 집회로 ‘우호적 여론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을 ‘제언’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 있나. 사람의 마음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찾아볼 수 있나. 악마다. 그들은 야수가 아니라 악마다. 마지막으로 <체 게바라 시집> 56쪽에서 찾은 시를 덧붙인다. 체 게바라의 시는, 촛불을 쥔 우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는 것 같다. 그 손길은 연대의 온정으로 따뜻하고, 무한한 신뢰로 단단하다. 악마의 시절에서 인간을 구해내는 투쟁. 촛불은 인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타오른다. 우리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 우리의 손끝에서 혁명은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

 

나의 손끝

아름다움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만드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