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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노자/현암사/오강남

이산저산구름 2016. 10. 11. 10:25

 

 

 

저자에 대하여

 

노자(老子, ?-?)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사상가, 철학자이자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다. 성명은 이이(李耳), 자는 담()이어서 노담(老聃)이라고도 하고 일명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고도 불린다.

노자의 삶에 대하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노자는 춘추시대 말기의 주나라 사람으로 궁정 도서실의 기록 계장(도서 관리인)이었다가 후에 궁중 생활이 싫어 유랑의 길을 떠났다고만 전해진다. 공자가 찾아와 예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당시에는 모든 문서를 정부가 관리하였기 때문에, 노자는 그 곳의 관리로서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고찰하여 인간의 삶이 지니는 근거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자는 후에 주나라가 쇠하는 것을 보고 은거를 결심, 서방으로 떠나던 중 관문지기의 간청으로 그의 가르침을 5천여 글자로 된 상하 2편의 책으로 썼다고 한다. 이것을 《노자》라고 하며 《도덕경》이라고도 한다그러나 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사기》도 이에 의문을 표하고 있고 오늘날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노자의 제자로는 도가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장자가 유명하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후에 도가의 주요 흐름 중의 하나인 노장학파를 이루었다. 노자는 후에 도교의 민간신으로 숭배되었다.

 

번역 : 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7년간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종교학과 교수로 있다가 2007년 이후 동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장자>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또 다른 예수> 등이 있다.

 

도덕경(道德經)

초()나라사람으로 주왕(周王)을 섬겼으나 주의 쇠망을 예견하고 주나라를 떠날 때 함곡관(函谷關) 관령 윤희(尹喜)의 간청으로 쓰게 된 노자이다. 《노자서》 또는 《노자》로도 불린다. 5,000()으로 이루어진 책이며, 후에 도가 사상(道家思想)의 대표적인 저서가 되었다. 노자는 이 저서에서 전체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초간(楚簡)이 있고 백서(帛書)가 있다. 통용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하편으로 되어 있다. 즉 도경과 덕경으로 나뉜다.

왕필이 주를 달았는데 이것이 현재 전하는 텍스트가 된다. 왕필이 주를 단 것이 가장 흔히 사용되며, 기타 다른 사람이 주를 단 것도 적지 않다.

2000년대 전후 발견된 곽점촌 노자는 현재까지 발견된 노자 도덕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왕필본을 비롯한 여러 필본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오래된 고서인 만큼 여러 견해가 있으나 변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면서 꼭 알아두어야 할 지혜서라는 것이다.

 

 

도덕경-老子(노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머리말

 

공자님의 윤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살이 우리 생활에서 양揚적인 외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면, 노자님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위적인 사상은 우리 생활에서 음陰적인 내면 세계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7]

 

<도덕경>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책으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도덕이나윤리를 가르치는 책으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도와 덕에 대한 경전이라는 뜻이다. ‘는 우주의 궁극실재혹은 근본 원리이란 그 도가 구체적인 인간이나 사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때 얻어지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덕경> 전체를 통해서 주어지는 기본 메시지우주의 기본 원리인 의 흐름을 체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감으로 참다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을 보라는 것쯤으로 생각 할 수 있다.[8]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노자님의 사상을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고 송두리째 떠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을 읽고 그와 함께 생각하며 내면적 대화를 가짐으로써 뭔가를 우리 속에 잠재해 있던 것을 일깨우려는 것이다.[9]

 

이런 길벗들을 만남이 길감의 기쁨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11]

 

 

1

 

라고 할 수 있는 는 영원한 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잇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것.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스러운 것.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19]

 

도덕경은 이렇게 존재계의 신비,그리고 그 존재의 영역을 포함하고 통괄하면서 그 근본 바탕이 되는 비존재계의 신비, 이런신비의 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차분한 마음으로 이 초대에 응해보자.[23]

 

4

 

도는 그릇처럼 비어,

그 쓰임새에 차고 넘치는 일이 없습니다.

심연처럼 깊어,

온갖 것의 근원입니다.

 

날카로운 것은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깊고 고요하여,

뭔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아들인지 난 알 수 없지만,

하늘님보다 먼저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35]

 

인간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삶이란 도에 맞추어, 도처럼,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 도와 함께 흐르고, 도와 함께 춤추는 것이기 때문이다.[36]

 

5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풀무의 바람통.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내놓는 것.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

중심 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39]

 

도는 이처럼 한결같을 뿐이다. 따라서 도를 향해 나를 사랑해 달라고 조르거나 간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특별히 조르거나 간구하거나 잘 보일 일을 하지 않아도 한결 같은 도의 덕으로 입을 것 입고 먹을 것 먹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도는 우리의 변덕스런 이기적 요구 사항에 좌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 같은 도의 근본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40]

 

아직 흔들리지 않은 마음, 평정된 마음, 말고 고요한 마음, 이런 마음을 유지하므로 온 우주가 그 속에 합일되고 주객에 일체가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뜻으로 해석해 보아도 좋으리라 생각된다.[42]

 

7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

자기를 앞 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합니다.

 

나를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47]

 

이런 참삶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을 그만 들 때 가능해진다고 한다. 종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자기 부정의 길이 곧 자기 긍정의 길이라는 것이다.[48]

 

8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입니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

심연을 닮은 마음

사람됨을 갖춘 사귐

믿음직한 말

정의로운 다스림

힘을 다한 섬김

때를 가린 움직임.[51]

<도덕경>에서 가르치는 삶의 자세가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물같이 되라는 것이다. 물은 도의 최고 상징이다. 그래서 <도덕경> 에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거듭된다.[52]

 

엄격히 말하면 물은 자기가 만물을 이롭게 하고 잇다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고 있다. 구태여 부산하게 무엇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방식 그대로가 남에게 이익을 주도록 되어 있다. 이러게 자연스런 행동, ‘함이 없는 함이 없는 함때문에 자기의 행동을 행동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런 것을 가지고 공로를 주장하거나 인정을 받겠다고 하는 마음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54]

 

9

 

넘치도록 자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날카롭게 벼리고 갈면 쉬 무디어 집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재산과 명예로 자고해짐은 재앙을 자초함입니다.

 

일이 이루어졌으면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입니다.[56]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 길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잇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삶을 그만큼 여유 있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한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다.[58]

 

부유하든 가난하든 재산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인생의 더 깊은 면에 눈을 돌려 보지 못하고 평생을 그저 돈 생각만 하다가 마쳐 버릴 위험이 있다.[59]

 

16

완전한 비움 (뿌리로 돌아감)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 가나

결국 모두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를 찾음입니다.

이를 일러 제 명을 찾아감이라 합니다.

제 명을 찾아감이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아는 것이 밝아짐입니다.

 

영원한 것을 알지 못하면 미망으로 재난을 당합니다.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집니다.[85]

 

헛된 욕심과 잡생각을 모두 비우고 조용히 앉아 우주 만상의 생겨남을 관조하면 모든 것이 결국 그들의 뿌리로 돌아감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20

세상 사람 모두 기뻐하는데(위대한 인물의 실존적 고독)

 

배우는 일을 그만두면 근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라는 대답과 이라는 대답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선하다는 것과 악하다는 것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나도 두려워해야 합니까?

얼마나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입니까?

 

딴 사람 모두 소 잡아 제사 지내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봄철 망루에 오른 것처럼 기뻐하는데,

나 홀로 멍청하여 무슨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이 같기만 합니다.

지친 몸으로 돌아갈 곳 없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 여유 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습니다.

 

내 마음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텅하기만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합니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 않는 바람 같습니다.

 

딴 사람 모두 뚜렷한 목적이 있는데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나 홀로 뭇사람과 다른 것은 결국

나 홀로 어머니[젖을] 먹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102]

 

덕이란 도를 따르므로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 여유 같은 것이다.[107]

 

22

휘면 온존할 수 있고(겸손의 위력)

 

휘면 온존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잇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휘면 온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습니까?

진실로 온존함을 보존하여 돌아가십시오.[111]

 

24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단단히 설 수 없고,

다리를 너무 벌리는 사람은 걸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게 빛날 수 없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돋보일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밥찌꺼기 군더더기 같은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의 사람은 이런 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119]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야 밝게 드러나고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아야 돋보이게 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야 한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아도 오래갈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121]

 

남이 칭찬을 하거나 오해하여 비난을 하는데 신경쓰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소박하고 충실하게, 그리고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삶이 가져다 주는 자유와 청복(凊福)을 누리며 살아가는 해방의 삶이다.[122]

 

죠셉캠벨은 그의 유명한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모든 영웅담에 나오는 정신적 영웅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그들의 정신적 모험이란 결국 최종적으로 이 반대의 일치자각에 도달하려는 정신적 추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칼 융도 중국인들은 모든 생명 속에 생래적으로 내재하는 모순성과 양극 성을 인지하는데 실패한 적이 없다. 반대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다른 편에 대한 균형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는 고급무화의 징표이다.[138]

 

29

세상은 신령한 기물 (외경의 자세)

 

세상의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내가 보건대 필경 성공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것을 망치고,

그것을 휘어잡으려는 사람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사는 [다양해서]

앞서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뒤따르는 것도 잇고,

숨을 천천히 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빨리 쉬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약한 것도 있고,

꺾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너무함, 지나침, 극단 등을 피합니다.[141]

 

무위를 말하고 잇다. ‘세상을 휘어잡고 그것을 위해 뭔가 해 보겠다고 설치지 말라는 것이다.[141]

 

동서양 할 것 없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크게 요구되는 것은 나라나 자연을 대할 때 함부로 설치는 대신 차분한 마음으로 거기에 내재한 흐름과 리듬을 알고 거기에 순응하겠다는 더욱 겸허한 마음가짐이 아닐까?[144]

 

36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

 

오므리려면 일단 펴야 합니다.

약하게 하려면 일단 강하게 해야 합니다.

폐하게 하려면 일단 흥하게 해야 합니다.

빼앗으려면 일단 줘야 합니다.

이것을 일러미묘한 밝음이라 합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국세고 강한 것을 이깁니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나와서는 안 굄 같이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도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170]

 

국가의 흥망 성쇠뿐 아니라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다는 사시를 변화에 그때마다 안달복달하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라는 것. 그런 데서 초연하여 세상을 멀리 보는 법을 터득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라 볼 수 있다.[173]

 

40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입니다.

약함이 도의 쓰임새입니다.

 

온 세상 모든 것 있음에서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났습니다.[189]

 

어느 누구도 벼이삭을 빨리 자라게 할 수도 없고, 가는 봄 오는 겨울을 붙잡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이와 같이 약한 듯 은은하고 은근하게 돌아가는 도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돌며 의연하고 늘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리라.[191]

 

42

도가하나를 낳고

 

도가하나를 낳고

하나을 낳고

을 낳고,

이 만물을 낳습니다.

 

만물은 ;을 등에 업고,

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가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룹니다.

사람들은고아 같은 사람’, ‘짝잃은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되기를 싫어하지만

이것은 임금이나 공작이 자기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잃음으로 얻기도 하고,

얻음으로 잃은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 나도 가르칩니다.

강포한 자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도 이것을 나의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으려 합니다.[198]

 

음기와 양기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고 했는데, 가만히 따져보면 서로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각자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상대방에게 자기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화는 어디까지나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마음, 자기 혼자서는 아무 일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의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조화는 자시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전제로 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다.[199]

 

43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부드러움이 머금고 있는 힘)

 

세상에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단단한 것을 이깁니다.

없음만이 틈이 없는 것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함이 없음의 유익을 압니다

말없는 가르침. ‘함이 없음의 유익에 미칠 만한 것이 세상에 드뭅니다.[201]

 

에너지는 모든 것에 다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형체 없는 것 가운데서 절대적으로 형체가 없는 것은 물론 도이다. 그러기에 도가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다.

인간사도 마찬가지, 자기 주장, 자기 줏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섞일 수가 없다. 자기를 진정으로 비운 사람만이 거침이 없는무애의 경지에서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201]

 

4

명성과 내 몸, 어느 것이 더 귀한가?

 

명성과 내 몸, 어느 것이 더 귀합니까?

내 몸과 재산, 어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얻음과 잃음, 어는 것이 더 큰 관심거리입니까?

 

그러므로[무엇이나] 지나치게 좋아하면 그만큼 낭미가 크고,

너무 많이 쌓아 두면 그 만큼 크게 잃게 됩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205]

 

우리 몸이 명성이나 재산보다 더욱 귀하고 중하니 몸을 해치면서까지 명성이나 재산을 위해 애태우고 감투와 돈을 찾아 신기루 좇듯 하며 달려가는 그런 부질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규ㅗㄴ고 하고 있다.[207]

 

밤낮으로 자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자기의 체면을 세워 주는가 손상을 끼치는가 혹은 자기의 인간 관계 하나하나가 자기의 경제적 목적에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만 따지다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삶을 살아가느라 고달프기 그지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207]

 

48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십시오.

한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억지 일 꾸미지 않을 때만 가능합니다.

아직도 억지 일을 꾸미면

세상을 다스리기엔 족하지 못합니다.[222]

 

50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에(생사에 초연한 삶)

 

태어남을 삶이라 하고 들어감을 죽음이라 한다면

삶의 길을 택하는 사람이 십분의 삼 정도요,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십분의 삼 정도요,

태어나서 죽음의 자리로 가는 사람도 십분의 삼 정도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모두 삶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듣건대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육지에서 외뿔난 저하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무기의 상해를 입지 않는다고 합니다.

들소는 그 뿔로 받을 곳이 없고,

범은 그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무기는 파고들 곳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그에게는 죽음의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252]

 

요점이 우리가 삶과 죽음에 구애받지 않고 초연한 태도를 취할게 도리 때 진정으로 자유스런 참삶을 살 수 잇게 된다는 것이다.

[233]

 

그는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조문차 찾아온 친구가 자네는 부인이 죽은 것이 그렇게도 기쁜가?”하면서 놀라워하자 장자님을 물론 자기도 처음에는 슬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 부인도 대우주의 생성변화의 흐름에 따라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제큰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이를 슬퍼하는 것은 계절의 바뀜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차라리 춤을 춘다고 했다.[233]

 

죽음이든 삶이든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사에 관계되는 모든 욕심이나 집착의 줄을 끊고 초연해진 사람만이 육지에 다니든 전쟁터에 나가든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234]

 

살아가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연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주어진 삶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234]

 

52

세상 만사에는 시작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식을 알고, 그러고도 그 어머니를 받들면,

몸이 다하는 날까지 위태로울 것이 없습니다.

 

입을 다무십시오.

문을 꽉 닫으십시오.

평생토록 애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입을 여십시오.

일을 벌여 놓으십시오.

평생토록 헤어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이 밝음입니다.

부드러움을 받드는 것이 강함입니다.

빛을 쓰십시오.

그러나 밝음으로 돌아가십시오.

몸을 망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를 일러 영원을 배워 익힘이라 합니다.[240]

 

시작을 아는 것, 근원을 아는 것, 도를 터득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용히 욕망으로 가득한 입을 다물고”, 감각과 지각 같은 이원론적 의식의 문을 닫고”, ‘작은 것’, 내면적인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부산하게 일을 벌이거나 욕심스럽게 설치는 저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부드러움을 지킬 줄 아는 차분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깨달음이요, 힘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세상에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울 것 없이 꿋꿋하고 늠름하게 살아갈 수 있고, 이런 일이 바로 영원을 배워 익힘이라는 이야기이다.[242]

 

56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언어의 한계)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 합니다.

 

입을 다물고, 문을 꽉 닫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은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하나 됨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터득한 사람은]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습니다.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이를 귀하게 여깁니다.[257]

 

이렇게 도와 하나가 되고 만물과 하나가 된 사람은 가까이 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고, 귀하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없다.[259]

 

64

천릿길도 발 밑에서(큰 일의 작은 시작)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 유지하기 쉽고,

아직 기미가 나타나기 전에 도모하기가 쉽고,

취약할 대 부서뜨리기가 쉽고,

미세할 때 흩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아직 일이 생기기 전에 처리하고,

혼란하기 전에 다스려야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나오고,

구층 누대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천릿길도 발 밑에서 시작됩니다.

 

억지로 하는 자 실패하게 마련이고

집착하는 자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인은 하지 않음으로 실패하는 일이 없고,

집착하지 않음으로 잃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언제나 거의 성공할 즈음에 실패하고 맙니다.

시작할 때처럼 마지막에도 신중했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만이 있고,

귀하다고 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많은 사람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갑니다.

온갖 것의 본래적인 자연스러움을 도와 줄 뿐,

억지로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293]

 

성인은 욕심이 없다. 있다면 다만 욕심을 없애겠다는 욕심뿐이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없애겠다는 욕심도 욕심인 것만이 틀림이 없으므로 그런 욕심마저도 없어진 완전한 무욕의 상태를 이상으로 보는데,[도덕경] 에서는 거기까지 말하고 있지는 않다.[295]

 

66

강고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스스로 낮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낮추기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스스로 몸을 뒤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그 무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앞에 있어도 백성이 그를 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즐거이 받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303]

 

이렇게 아무런 사심이 없이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면 결과적으로자연히 위에 오르게 되고, 진심으로 자기를 뒷자리에 놓으면 결과적으로자연히 앞에 앉게 된다는 뜻이다.[304]

 

70

내 말은 알기도 그지없이 쉽고(깨치지 못한 자의 무지)

 

내 말은 알기에 그지없이 쉽고

실행하기도 그지없이 쉬운데

세상 사람들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합니다.

 

말에는 종지가 있고

사물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사람들 이를 알지 못하기에

나를 알지 못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 드물고,

나를 따르는 사람 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인은 굵은 칡베옷을 입지만

가슴에는 구슬을 품고 있습니다.[322]

 

구슬을 품고 있는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남루한 옷, 사람의 멸시나 박해 등에도 기죽기 않고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겉을 다듬는데 신경을 더 쓰는가, 솟사람의 자라남을 더 중시하는가? [325]

 

72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백성 사랑이 자기 사랑)

 

사람들이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욱 큰 두려움에 이를 것입니다.

 

그들의 거처를 좁게 하지 말고,

그들의 생업을 억누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억누르지 않기에

그들도 싫증 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인은 스스로를 알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되

스스로를 치켜 올리지 않습니다.

성인의 앞의 것을 버리고 뒤의 것을 택합니다.[331]

 

마지막 구절그러기에 성인은 스스로를 알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되 스스로를 치켜 올리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성인의 정치를 하면 다스리는 자로서 자기에게 권위나 권력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과시하거나 휘두르려 하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되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사람들 앞에 치켜세우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333]

 

81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아름다움과 변론과 박식함을 넘어서서)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성인은 쌓아 놓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뭐든지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이 가지게 되고,

사람들을 위해 모두를 희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할 뿐

해로운 일이 없습니다.

성이늬 도는 하는 일이 있더라도

겨루지를 않습니다.[368]

 

도에 입각한 성인의 길’, 이 진리의 길에서의 은 세상의 모든 인위적 행위와는 달리 함이 없음의 함이므로 경쟁이나 시비나 싸움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건강하고 조화롭고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해준다. 이런 길로의 길감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370]

 

 

내가 저자라면

 

도덕경의 구성

1장부터 제 37장까지를 상편 도경道經이라 하고, 38장부터 제 81장까지를 하편 덕경 德經이라 나누어 놓은 것이 전통적인 분류 방법이다. ’도경은 도의 존재론적인 면을, ’덕경은 도의 기능적인 면을 좀더 많이 다루고 있다. ‘도덕이나윤리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알기 쉽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도와 덕에 대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5천자 남짓인 한문으로 짤막짤막하게 81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마다 우주의 기본 원리인 의 흐름을 체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참다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내 맘대로 해석한 도덕경

도나 덕을 잠시 접어두고 81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내 방식대로 요약해보자면, ‘모든 일에 관여하려하지 말고 예나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너의 인생을 살아라. 네가 해서 즐겁고 행복한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돌려 생각하면 너의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유지되는지를 찾아 그 마음을 유지해라인 것 같다. 나 역시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면 만족이라는 것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결핍은 내면의 세계, 를 접하기 전에는 영원에의 목마름이 충족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요구의 계층구조”, 칼 융의 개체화 과정”,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의 삼단계등의 이론들은 인간은 끊임없이 내면의 만족을 위해 갈고 닦을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며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노자 시대의 사람들이나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나 모두 내면의 충족에 대한 변함없이 추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면을 충족시키려면 말을 줄여야 하고, 물처럼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이것이 내면의 충족에 이르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시처럼 잠언처럼 들려주는 의 길


노자는 진정으로 자기를 완성하려면 자기를 비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진리는 박식이나 박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를 알고 체득하는 길은 우리가 가진 잡생각이나 편견을 하루하루 없앨 때 생기는 직관과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도덕경에서 잔잔히 들려주는 진리의 말들은 물질문명에 대해 지나친 믿음을 갖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명상록’ & ‘도덕경


이 두 책은 동양과 서양에서 따로 만들어졌지만 모두 조급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뒤돌아보고 쉬어가면서 살아가라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성찰의 필요성을 역설한 지혜서이다. 타인이 아닌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또한 너무 바쁘게 삶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에 너무나 좋은 책들이다. 이 두 책의 메시지를 너무나 잘 표현한 글이 있어 적어 본다.  내가 하고 싶었던 표현이었지만 미처 생각해 낼 수 없는 막막함을 확 풀어준 문장이다.

까치발을 세운다고 키가 커지지 않으며, 제 멋대로 날뛴다고 힘이 세지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재잘댄다고 지혜가 늘지 않으며, 성공과 행복은 간절히 원한다고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어 고요한 방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작은 열쇠 하나면 족하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살아가고, 성공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으며 살아가라. 또한 성공하고 싶거든 아니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든 욕심을 버리고 또 버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라는 말씀이 아닌가! 이 두 책을 읽는 동안 간만에 오랫동안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