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59호
소 재 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 외
지정면적 4,619,039㎡
지 정 일 2009년 9월 18일
해남 달마산은 높이 489m로 신라시대 사찰인 미황사와 더불어 수려한 지형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해남군 현산면·북평면·송지면 등 3개 면에 접하고 있으며, 해남읍에서 약 28㎞ 떨어져 있다.
달마산은 백두대간에서 분지된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일어선 산이다. 현산이 머리라면 북평은 등, 송지는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산의 산자락은 땅 끝의 사자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백산맥의 마지막 용틀임인 달마산은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이다. 암석단애는 달마산 북서쪽에 위치하는 바람재 일대로부터 달마산-귀래봉(471m)-도솔봉(421m) 일대에 걸쳐 나타나는데, 길이는 약 6~7㎞에 달한다. 암석단애를 구성하는 지질은 시대미상의 변성퇴적암류인 덕룡산 규암(용암산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 능선부를 점하는 변성퇴적암 계통의 규암질 암석단애는 풍화와 침식에 강해 급경사의 암봉을 이루는데, 마치 공룡의 등줄기를 방불케 할 뿐 아니라 암색 또한 흰 빛을 띄고 있어서 매우 수려하고도 기묘한 경관을 연출한다. 산세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달마산은 천년 사찰 미황사를 품고 있다. 미황사 뒤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는 도솔봉으로 부터 달마산에 이르는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미황사에서 바라보이는 달마산 능선의 조망경관은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고, 달마산 능선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황사의 전경과 남해 도서의 조망경관은 이 일대의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달마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매우 아름답다. 또한 달마산 정상에 있는 봉수의 높은 곳에서는 노화도·보길도·추자도 등이 멀리 바라보인다. 미황사는 경사가 완만한 달마산 서사면 중간에 대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사찰의 구역이 여러 단의 축대로 이루어져 있다. 미황사 경내에는 대웅전·응진전·달마전·세심당·향적당·자하루·범종각·석비·당간지주·부도군·사적지 등 많은 당우와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달마산은 삼황三黃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상과 바위 그리고 석양빛 등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달마산이 바위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자리에 위치한 미황사는 749년(경덕왕 8)에 창건되었으며, 많은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달마산의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는 절경의 산사이다. 도솔봉에서 달마산으로 연결된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의 섬과 미황사, 달마산 일대의 수려한 경관, 산 능선부에 풍화에 매우 강한 규암 층이 길게 노출되면서 발달한 흰색의 수직 암봉들이 수직으로 늘어서 있어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봉화를 주고받던 곳으로 현재 잔허가 남아 있으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
지정번호 명승 제60호
소 재 지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산131 외
지정면적 232,595.82㎡
지 정 일 2009년 12월 9일(사적 및 명승 제3호 내성유곡 권충재 관계유적/사적 및 명승 재분류)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유곡리의 청암정과 유곡리에서 봉화읍 방향으로 형성된 석천계곡을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봉화읍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울진 방향으로 약 1㎞ 정도 가다가 고개를 넘으면 북쪽 방향으로 보이는 전통한옥으로 구성된 마을이 유곡리다. 유곡리는 안동권씨 세거지이며, 산 아래에 종가가 위치하고 있고, 종가의 사랑채에 청암정이 자리 잡고 있다. 석천계곡은 문수산을 분수령으로 남서류하는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에서 흘러내리는 동막천이 합류하여 흐르는 계곡으로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천계곡에는 석천정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석천정 주변의 석천계곡 경관은 유곡마을의 대표 경관으로, 주변의 울창한 송림·계류·아름다운 수석 등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경승지다. 특히 석천계곡은 동천으로 명명되어 있으며, 계곡의 진입부는 별천지로의 통로역할을 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암정 : 충재 권벌權(1478~1548)이 1526년(중종 21)에 조성한 정자이다. 청암정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냇물을 끌어 올려 연못을 파고 조촐한 장대석 돌다리를 놓았다. 물 위에 거북이가 떠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놓인 형상이다. 초가가 딸려 있는데, 정자 내에는‘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새긴 미수 허목이 쓴 편액이 걸려있다.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습 그대로 살려 주춧돌과 기둥 길이로 조정하여 위치에 따라 정자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 정자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온돌 구들이 아니고 마루가 깔려 있다.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이 응방산과 옥적봉을 지나 유곡리에 이르러 발달한 계곡이다. 석천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과 2칸 반, 1칸의 건물이 서로 이어진 평면구조이다. 지붕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의 두 부분으로 각각 달리 구성되어 있다.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만큼 수림이 울창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유곡마을은 1380년 충재 권벌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마을 모양이 금닭이 학의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의 지세라 닭실 마을이라고도 불리며, 실학자 이중환이『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경승지로 지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마을 이름이 닭실인 것은 동쪽의 옥적봉이 수탉을 닮고, 서쪽의 백운령이 암탉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석천정사는 권동보權東輔(1517~1591)가 지은 정자로서, 권동보는 우찬성을 지낸 권벌의 맏아들이다. 1542년(중종 37)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1547년(명종 2) 양재역벽서사건(정미사화)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로 귀양 가 1년 만에 사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전원의 계곡 위에 선조의 뜻을 계승한 석천정사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권벌은 선조 때 신원되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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