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식영정 일원 ■
지정번호 명승 제57호
소 재 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5-1
지정면적 28,039㎡
지 정 일 2009년 9월 18일
담양 식영정息影亭은 무등산 북쪽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창계천(창암천)으로 흐르다가 호수를 이루는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식영정은 성산星山의 한 끝 언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식영정의 뒤로는 청청한 소나무가 가득한 성산봉우리가 서있고, 앞으로는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며 그 건너 무등산이 바라다 보인다. 창계천에 댐을 막아 광주호가 형성되면서 이곳의 지형은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광주호의 수면이 현재의 수준으로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길이 조성되었으며, 식영정 앞의 창계천은 수몰되어 하천이 흘러가는 예전의 창계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창계천은 하천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내 붉은 꽃이 마치 꽃구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계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의 한자명을 따서‘자미탄紫薇灘’이라고 했다.
식영정은 성산의 한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서,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식영정의 뒤로는 소나무림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고, 앞으로는 광주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그 건너로 무등산이 바라다 보인다.
식영정은 조선 명종때 서하당棲霞堂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石川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송강松江정철이「성산별곡」·「식영정 20영詠」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된 장소이다.‘ 그림자가 쉬어 가는 정자’라는 의미로 지은 식영정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으며, 이들 중에서 식영정을 가장 유명하게 한것은 송강 정철의「성산별곡」이다. 식영정은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곳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식영정은 주변 무등산과 광주호 등이 있어 자연환경과 조화미가 뛰어나고 주변의 소나무 고목과 송림, 배롱나무 등이 있어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식영정은 이정자의 모습이‘띠풀로 지붕을 하고 대발로 날개처럼 차양을 달았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포장을 친 놀잇배와 같다’하여 그 모양을 배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임억령이 지은「식영정기息影亭記」에는 장자의‘외영오적畏影惡迹’에 관한 고사로부터 식영정의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옛날에 자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빛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쫓아오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나자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은 그늘에 숨던지 빛이 없는 곳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고 한 장자의 글에서 인용하여, 임억령 자신을 마치 그림자가 싫어 그늘에 숨는 고사의 주인공처럼 지금까지의 자신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간절한 소망에서 정자의 이름을 명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천 임억령·서하당 김성원·제봉 고경명·송강 정철 등을‘식영정 사선四仙’이라 일컷기도 하며, 그들의 문학의 산실인 식영정을‘사선정’이라 부르기도 했다. 김성원은 지금 식영정이 있는 곳 아래에 본인의 호를 딴‘서하당棲霞堂’이란 정자를 지었는데 집 자리만 남아있다가 최근 복원되었다. 식영정의 주변에는 송강 정철이 살던 지실마을이 있고, 별뫼가 있는 자미탄의 양안으로는 식영정·환벽당·취가정·소쇄원 등 누정문학의 산실을 이루었던 누정이 흩어져 있다.
■ 담양 명옥헌 원림 ■
지정번호 명승 제58호
소 재 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511 외
지정면적 13,484㎡
지 정 일 2009년 9월 18일
담양 명옥헌鳴玉軒원림은 후산마을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하여 정자와 원림을 조성하고 있다. 계류를 끌어들여 높은 지반에 조그만 방지형태의 위 연못(상지上池)을 조성하였으며, 이 연못의 옆에는 호남지방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는 정자인 명옥헌이 위치하고 있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홑처마 5량 팔작지붕의 정자로서, 정자의 한 가운데 방을 두고 방의 가장자리로‘ㅁ’자 형태의 마루를 배치한 호남지방 특유의 평면을 지닌 정자이다. 정자의 아래로는 방지원도 형태의 모양을 갖고 있는 아래연못(하지下池)이 장방형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연못의 가장자리와 못 가운데 조성된 섬에는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수목이 위치하고 있으며, 근래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배롱나무의 유목도 함께 자라고 있다. 담양 명옥헌 원림의 전면은 후산마을의 고개가 낙타의 등처럼 드러나 있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왼편은 들판, 오른편은 목맥산에서 후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있어 북풍을 막아준다. 명옥헌 원림은 산기슭을 타고 내리는 계류를 이용한 위 연못과 아래 연못, 아래 연못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북서향으로 앉은 정자로 이루어져 있다. 명옥헌 원림은 자연스런 기단과 지형적인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 위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하였으며, 동남쪽으로는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를 심어 낮 동안의 햇볕을 막아주고 있다. 명옥헌 정자 앞의 연못 아래쪽에 소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명옥헌 경역의 담장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배롱나무는 한여름에 붉게 무리지어 꽃을 피워 마치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명옥헌 원림은 배롱나무·소나무·느티나무 등이 잘 배식되어 있어 호남지방의 별서정원 양식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의 자연경관을 잘 살려 낸 전통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중기 명곡明谷오희도(1583~1623)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계곡물이 흘러 위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부딪치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명옥헌鳴玉軒’이라 했다고 한다.
명옥헌은 오희도의 손인 오대경이 중수했다고 하는 기록이 정철의 넷째 아들 정흥명이 지은「명옥헌기鳴玉軒記」에 전하고 있으며, 계류가 바위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명옥헌鳴玉軒계축癸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명옥헌에 걸려 있는‘삼고三顧’라는 편액은 유비가 제갈공명의 초가를 세 번이나 찾았듯이 인조가 반정 직전에 세상을 돌며 뜻을 함께 할 사람을 찾던 중 만난 선비가 오희도였으며, 인조가 오희도를 세 번 찾아 왔다는 뜻을 의미하는 글이다. 주위의 산수경관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을 명옥헌에서 내려다보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하여 자연에 순응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반영한 전통원림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경승지이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 ■, ■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 (0) | 2016.04.26 |
---|---|
고요한 아침의 나라 (1925) (0) | 2016.04.25 |
■ 무주 구천동 일사대 일원 ■, ■ 무주 구천동 파회·수심대 일원 ■ (0) | 2016.04.12 |
길목에 새기다 - 옛길 위, 말을 걸어오는 이정표 (0) | 2016.04.07 |
■ 구미 채미정 ■, ■ 거창 수승대 ■ (0) | 2016.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