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너른 강의 품에 안겨, 애절한 선율에 귀 기울이다 - 명승 제42호 충주 탄금대

이산저산구름 2016. 4. 26. 08:37

물살을 따라, 가야금 소리 들려온다

충주로 여장(旅裝)을 꾸리면, 집을 나서기도 전에 ‘철썩’하고 물소리가 먼저 들린다. 호반의 도시다운 충주호의 너른 풍경과 어르신들의 단골 여행 ‘수안보’까지, 충주는 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도시다. 또 하나의 숨은 명승지 탄금대 또한 남한강과 달천 두 줄기의 강이 하나로 만나는 망망한 풍경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선비의 힘 있는 필체와 같이 뻗어 오른 소나무들과 투박한 기암절벽은 하나의 조화를 이뤄 탄금대만의 비경을 빚어내고 있다. 빽빽한 솔숲을 한량처럼 걷다 보면 자그마한 탄금정에 이른다. 가만히 앉아 시선을 멀리 던지면 유유히 흐르는 물살이 번뇌와 고민을 다독이며 쓸어가는 듯하다.

명승 제42호로 지정된 탄금대는 고요해 보이는 풍광과는 달리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고적지다. 시작은 탄금대란 이름을 갖게 된 1,400년 전 신라 진흥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이라 불린 우륵(于勒)은 쇠퇴하는 가야국을 떠나 제자 이문과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망명한다. 진흥왕은 우륵을 지금의 충주인 ‘국원성’으로 이주시켜 계고와 법지, 만덕에게 각각 가야금, 노래, 춤을 가르치도록 했다.

우륵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가야금을 탔는데 그의 신비로운 음률에 이끌려 하나둘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부락을 이뤄, ‘가야금을 타던 터’란 의미를 담아 탄금대란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경치 좋은 강을 앞에 두고 제자들과 음악을 나누기는 했으나 나라를 잃은 그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터. 강 건너에서도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들렸다고 해, 창동리 창골에는 청금대(聽琴臺)라 불리는 곳이 있다.

01 충장공 신립 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 02 신립장군 순절비

전란의 역사가 흐르는 탄금대

유독 탄금대에는 역사를 기리는 비(碑)나 탑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고요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탄금대에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이란 전란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의 순국 현장이자 뼈아픈 패전의 장소이기도 한 탄금대다.

선조 25년 4월, 15만 왜군이 쳐들어와 서울로 향할 때 신립 장군은 충주를 지키게 된다. 탄금대에 8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쳤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해 사지에 몰아넣어야 투지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격전 당시 신립 장군이 층암절벽에서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강물에 식혀 병사들의 의지를 북돋웠다 해서 절벽에 ‘열두대’란 명칭이 붙어있기도 하다. 그의 나라를 아끼는 마음과 의지를 기리는 신립장군전적비가 탄금대를 지키고 있다.

탄금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충혼탑이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장병과 경찰관, 노무자 등 2,838인을 추모하고자 세운 것이다. 충혼탑에는 항일시인 권태응의 감자꽃 노래비도 있어 잠시 발길을 멈추고 ‘나라’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더듬어 본다.

이제 제법 봄날 같은 바람을 따라 탄금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솔 숲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40~60년 전 심었다는 리기다소나무가 서로 키를 재듯 어깨싸움을 하는 사이로, 툭툭 무심히 놓여 있는 조각 작품들도 볼만하다. 광장을 지나 탄금정에 올라 해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도 우륵처럼 멋진 선율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탄금정의 낙조는 충주팔경 중 하나! 충주까지 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한 장면이다.

Tip. 탄금대 이용

· 연중무휴
· 주차시설 있음
· 문의 및 안내 : 충주시청 관광과 (Tel. 043-850-6723) 탄금공원 관리사무소 (Tel. 043-848-2246)
· 홈페이지 : 충주 문화관광 (http://cj100.net/tour)

 

글‧최용미 사진‧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