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시

풀잎을 보며

이산저산구름 2016. 3. 21. 11:35

풀잎을 보며

 

 

내가 빈손을 하고

사랑의 허세를 부린 탈을 벗는다 해도

바람에 누었다 일어서는 풀잎만도 못하리라

 

빈손바닥에 풀물이 묻어난다

이순에 다시 쓰는 나의 詩는

남루함이 비열함보다 좋았던 풀잎의 지조인가

입이 천근의 무게

 

귀를 만리 밖에 떼어놓아도

나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만리 밖에서 몰아쳐온다

 

온몸에 풀물이 감돌고 있는지

풀잎에 누웠다 일어서며

손 저어 일러주는 말귀를 알 듯 말 듯 더 몰라라

 

 

 - 박곤걸 시집 / '하늘 말귀에 눈을 열고'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