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 예천 회룡포 ■

이산저산구름 2015. 12. 1. 08:40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

 

 

지정번호 명승 제15호
소 재 지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 외
지정면적 227,554㎡
지 정 일 2005년 1월 3일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경남 남해군의 서남단의 홍현리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산간 지역의 급경사지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농경지이다. 다랑이 논은 농경시대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경관이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지형을 따라 곡선 형태로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랑이 논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논배미가 작아‘삿갓배미’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지닌 가천마을 다랑이 논의 배후에는 높은 산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전면으로는 넓게 트인 바다가 다랑이 논과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다랑이 논의 논두렁은 돌로 촘촘히 쌓여 있는데 여기에 공급된 돌들은 현재도 배후 산의 급사면에 풍부하게 퇴적되어 있다. 다랑이 논은 매우 규모가 작은 논으로서, 특히 경사가 심한 지형에 만들었기 때문에 폭이 좁게 이루어져 있는데, 한 뼘이라도 논을 넓히기 위해 석축을 가능한 수직으로 축조했다. 이렇게 조성된 석축은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형태의 농업경관을 만들었다. 남해 가천 마을 다랑이 논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나의 위요경관圍繞景觀을 형성하고 있는데, 가천마을은 이 위요경관의 아래 부분의 한가운데를 점하고 있고, 이 마을에는 가천암수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암수바위는 숫바위가 높이 5.8m, 둘레 2.5m이고, 암바위가 높이 3.9m, 둘레 2.3m의 선돌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경관이다.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농업경관은 농경행위의 지속에 의해서만 경관의 영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의 주요 경작물은 벼와 마늘이며, 1년에 이모작을 하고 있다. 현재도 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비탈이 심한 지역 등 경작 여건이 어려운 곳은 휴경지로 남아 있다.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집안에 전해오는 자료로 추측해 볼 때, 신라 신문왕(?~692) 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에 전해지는 미륵전설과 육조문에 대한 전설을 통해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 삶이 시작되었고, 400여 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흘산 봉수대는 이미 그 전에 이곳 가천마을에 주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가천加川’이라고 고쳐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내에는 가천암수바위(경남도 민속자료 제13호), 밥무덤 등이 있어 민간신앙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각각 숫미륵, 암미륵이라고도 부르는데, 과거에 부르던 원래의 명칭은‘미륵불’이었으나 최근 들어 암수바위로 불리고 있으며, 자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성기숭배의 대상물로 여겨지고 있어 이 바위에 기도를 올리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예천 회룡포

 

 

지정번호 명승 제16호
소 재 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950 외
지정면적 790,864㎡
지 정 일 2005년 8월 23일

 

예천 회룡포는 용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가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성천이 태극무늬 형태를 이루어 모래사장을 만들고 그 안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곳이 회룡포이다.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수많은 감입곡류嵌入曲流지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회룡포는 가장 전형적이며 아름다운 감입곡류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감입곡류란 하천의 물돌이 지형을 의미하며,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은 S자형으로 흘러가는 감입곡류의 하천이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루게 한 경관형성 요소이다.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에는 맑고 푸른 강물, 은모래가 쌓인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지형, 울창한 자연식생, 그리고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선캄브리아누대에 형성된 편암 혹은 편마암이 분포하는 지역에 하천이 발달하여 유로가 크게 회류하게 되고, 하천이 크게 회류함에 따라 형성되는 침식지형과퇴적지형이 근접·발달하여 감입곡류 지형의 특유한 하천경관을 형성한다. 하천의 공격사면 쪽에 발달한 아치형 산 능선은 이를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또한 산 능선 부위가 감입곡류 지형을 바라보기에 알맞은 조망지점을 이루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가진 곳이 많지 않으며 그 규모 면에서도 회룡포를 능가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회룡포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지점은 회룡대이며, 회룡대는 하천 침식에 의해 깎여진 비룡산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회룡포에서는 하성단구·하성도·포인트바·범람원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침식 및 퇴적지형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활용가치가 크다.

 


회룡포는 원래‘의성포義城浦’라고 한다. 의성포라는 지명은 이곳의 하천이 성과 같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이 마을에 사람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 약 150여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들은 1백리 밖 의성에서 건너와 정착하였기 때문에 의성포라 불렀다고도 한다.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인 회룡포는 풍양면 청운3리 사막마을에서 살던 경주 김씨 조상들이 이주해 온 것이라고 하며, 현재 9가구 모두 경주 김씨다. 의성포라고 하면 의성에 있는 마을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예천군의 주도로‘회룡포’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내성천을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사찰인 장안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장안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옛 사찰이지만 장안사의 절집들은 최근에 중수하여 옛 사찰의 모습은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