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입구에 전동 성당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딸과 함께 무작정 떠난 여행지였고, 전주 시내 어디쯤 있을
테지 하는 마음과 기회가 되면 한번 가 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는데 마침 아주 잘 된듯했다. 공교롭게도 천주교를 박해한 조선 왕조를 모신
곳과 서양 건축의 묘미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먼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요즘 세월호의 침몰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며 잠시 머리 숙여 기도했다. 단 한 명이라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참담한 심경이 마치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을
기리기 위해 1908년 축조하기 시작한 성당을 찾는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전동 성당은 서울의 명동 성당, 대구의 계산 성당 등 한국 3대 성당에 속한다고 하며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한다. 1907년 조선에 왜인이 들어와 전주성의 풍남문을 허물고 도로를 낸다는 계획을 미리 듣고 프랑스
보두네 신부는 풍남문 성벽의 주춧돌을 가지고 와 1914년 겨우 외벽 완성했다고 한다.
풍남문 밖에서 이슬처럼 쓰러진 순교자들의 피가 그대로 묻어있는 주춧돌이 기초가 되어 1931년 23년 만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천주교의 아픔과 역사가 고스란히 묻히고 배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서울의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 기술자들을 데려와 완성했는데 명동성당은 아버지,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에 속하는 두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을 한 바퀴 돌자 끝자락에 피에타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피에타상 앞에 서니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월호 침몰로 자식 잃은
어미의 마음이 어떠할까 잃은 자식 안아보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부모들이 생각났다. 갈기갈기 찢어진 부모의 마음, 한
사람만이라도 살아서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가슴이 쓰라리고 아팠다.
일찍 찾아온 봄, 벚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으나 왕벚나무꽃이 붉게 피어 순교자의 박해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붉은 꽃,
세월호에서 잃은 자식에게 바치는 마지막 붉은 꽃이 죽은 자식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순교자의 피가 묻은 주춧돌로 세워진 전동 성당 한
바퀴는 잠시 추모하는 맘으로 경건한 발걸음이 되었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