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 정호경 신부를 다시 만나다

이산저산구름 2014. 3. 13. 12:49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 정호경 신부를 다시 만나다



 

우리시대, 귀감을 얻다


멘토가 유행하기 전,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은 스승이나 귀감이었다. 귀감(龜鑑)이란 말은 어려운 한자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나 행동이 찾기 어려워진 탓에 쓰임도 줄었을 것이다. 스승이라는 말이 소원해진 것도 사표의 실종과 연관 있을 것이다.

정호경 신부가 선종한 지 두해가 되어가는 즈음,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일구어 왔던 그의 삶의 이야기가 평전으로 우리에게 왔다. 귀감과 스승이라는 말에 제대로 어울리는 삶의 여정이 담담하게 담겼다.

낮은 곳에서 생활공동체를 일구었던 진짜 신부, 농민들의 운동을 이끌고 조직했던 투사 신부, 그리고 스스로 농부가 되었던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

정호경 신부에 대한 첫 평전인 이 책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더불어 산다는 것, 예수를 따른다는 것, 제대로 노동하며 제대로 말하며 사는 것, 진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다 고개 숙이게 된다. 물에 비추어 자신을 살피는 거울보기, 그러다 찬물에 번쩍 세수를 하고 싶어진다. 

입으로는 나라를 들었다 났다 하면서도 정작 삶에선 겉멋 들어 비움과 결기를 잃은 사람들, 남 탓하며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정호경 신부의 삶은 얼음장 깨치는 소리다. 또 예수를 믿되 예수의 삶과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 나무랄 데 없는 종교인이되 공동체를 잊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호경 신부의 삶은 머릿속까지 찌릿한 회초리다. 소탈해서 더 커 보이는 여여한 귀감이다.

 

농민과 같이 춤추고, 짓밟히고, 갇히고, 결국 농부가 되었던 사제


그는 ‘노동하는 예수’를 따랐던 신부다. 탄탄한 영성이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실천으로 피어나는지를 증언하는 참 종교인의 모범이기도 하다. 그는 천주교 안동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며 ‘서럽고 한 맺힌 형제들인’ 농민들의 삶으로 기꺼이 막걸리와 함께 걸어 들어갔다. 농민운동 조직인 가톨릭농민회를 만드는데 그보다 헌신적인 사람은 없었다. 10년을 넘게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 활동하며 농민들의 투쟁에 그리고 농민 생활공동체운동의 버팀목이자 지도자였다.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에 참여하고, 1977년 안동교구 사제단의 긴급조치 해제 요구 기도회를 주도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이어 1979년 8월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원이었던 오원춘씨 납치사건에 항의하다 두 번째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농민사목’이라는 새로운 영토에 씨를 뿌리며 이론적으로나 실천적 모범으로나 그는 진정한 목자였다. 천주교가 갈라진 손마디 농부들의 친근한 벗이 된 데는 그의 헌신적인 발품과 소탈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 오래 ‘입품, 글품’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땀 흘러 일하는 ‘일품’으로 살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밝히고 남은 생 20여년을 농사꾼으로 살았다. 1992년부터 봉화군 비나리 마을에서 4년에 걸쳐 집을 손수 짓고 2천평이 넘는 땅에 유기농 농사를 지었다. 틈나는 대로 성경구절을 목판에 새기는 작업을 해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도 내고, <반야심경>, <장자>, <우파니샤드> 등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다양한 경전들을 손수 해설하며 책을 내기도 했다. 

몸 저 눕기 전 묵상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 도보순례를 떠나기 전 11개 항목의 유서를 정리하였다. 자신의 은행통장 비밀번호와 함께 남은 돈의 용처까지 일러두며 온전한 ‘비움’이 되어 떠났다. 그의 유서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모든 생명이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일하며 정을 나누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경쟁의 문명은 공멸입니다. 상생의 문명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습니다.”우리 시대가 다 덤벼들어 끌어안고 가야할 간절한 화두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만들다

 

정호경 신부는 농민들과 함께 진정한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이 책의 부록에 실은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농민사목>과 <생활공동체운동-인간, 사회의 동시적 해방을 위하여>는 정호경 신부의 생각이 잘 나타난 글들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새롭고 놀랍다.  

그가 소망한 것은 구원이었다. 그는 사제였고 응당 종교적 구원을 추구했으되,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고, 교회와 교회밖 세상을 아우르고, 개개인의 굴레와 세상의 죄를 동시에 구원하기를 원했다.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를 하면서 비신자를 거리낌 없이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 제도교회의 거창함에 날선 비판과 함께 진정한 공동체 모범으로 공소공동체 활성화를 호소한 것은 그런 뜻이었다. 

생활공동체운동을 설파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장애로 소유욕·지배욕·복수심·죄책감 등과 같은 내 안의 굴레와, 독점과 억압의 구조악 같은 세상의 죄, 이런 이중굴레와 대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원과 해방을 위해서는 이러한 안팎의 이중굴레를 깨고 ‘밥 제대로 먹기 나눔’과 ‘말 제대로 하기 섬김’을“스스로, 함께,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우리들 숙제로 남겨져 있다. 그는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되지만, 누룩처럼 확산되게” 생활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한 공동체운동의 선구자였다. 


이 책은 민주화운동에 혼신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평전을 기획 지원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이 책의 ‘기획’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명시한 이유다. 표지그림은 정호경 신부와 인연이 깊었던 이철수 화백이 고심 끝에 골라 보낸 그림을 썼다. 책이 나오는데 정호경 신부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애쓴 천주교 안동교구 관계자들, 가톨릭농민회 여러분들의 도움이 컸다. 화보로 실린 사진들도 이 분들이 간추려 주었다.  


한상봉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신국판, 양장, 320p, 16,000원 


2013. 12. 24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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