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전문가의 말 25 - 당신이 몰랐던 고전의 낯선 얼굴

이산저산구름 2014. 2. 24. 05:48

당신이 몰랐던 고전의 낯선 얼굴 경기대학교 국문과 교수 이정원
 고전을 알리기 위한 발걸음
 이정원 교수는 ‘한글, 이야기와 만나다’, ‘한글, 장터를 점령하다’라는 주제로 지난 2년간 디지털 한글 박물관 특별 기획전을 총괄했다. 특히 활자본 고전소설을 주제로 한 ‘한글, 장터를 점령하다’는 고전소설을 통해 근대 문화사의 단면을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시 기획을 통해서, 본인의 저서를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고전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한글 국보 보물 특별전2006년을 시작으로 매년 대중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는 특별 전시회가 열립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자료와 손쉬운 해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옛한글 편지 특별전2007, 한글 음식 조리서전2008, 외국어 학습서 특별전2009, 옛사전 특별전2010, 국어 교과서 한 세기 특별전2011, 한글 고전소설 특별전2012, 2013. 각 전시회는 대학 수업용으로 활용해도 될 만큼 체계적이고 전문적입니다. 저는 준비 기간이 짧아 완벽하게 만들진 못했지만 우리 고전도 외국 못지않게 훌륭한 자산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고전古典,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의 사전적인 의미이다. 그러나 이정원 교수는 고전이 모범적이어서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처럼 인식되지만, 그 시대 인물들의 고민은 현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그의 책 《전을 범하다》에 실린 장끼전부제_차마 말하지 못한 어미의 사생활은 조선 후기 여성을 물론 현대 여성들도 공감할 대목이다. 이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작품이 시대를 관통해 사랑을 받는 것처럼 우리 고전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당신이 몰랐던 고전의 낯선 얼굴 경기대학교 국문과 교수 이정원


 홍길동을 의심해 보자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즐어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 백석의 〈고야古夜〉 중에서-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조마구’는 설화 제목이자 괴물의 이름이다. 전형적인 복수극인 조마구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의 도덕의 세례를 따르지 않는다. 제도적인 가장이 아닌 새로운 가장이 되는 변이變異를 나타내는 것. 이정원 교수는 홍길동전 또한 같은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햄릿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 대한 복수와 숙부를 받아들인 어머니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프로이트Freud, Sigmund,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전형이죠. 숨겨진 욕망을 이뤄준 건 숙부와 어머니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홍길동도 비슷한 맥락의 인물입니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존재하지만 사회학적인 아버지는 갖지 못했죠.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승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인물입니다. 훗날 활빈당으로 임금에게 병조판서라는 벼슬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바라던 아버지의 인정을 임금을 통해 받게 됩니다. 홍길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율도국을 세워서 자신이 나라의 아버지가 되죠. 하지만 병조판서 벼슬을 받고 그만둔 활빈당의 반정부 활동은 과연 얼마나 정의로웠을까요? 평화로웠던 땅을 침략해 전쟁으로 율도국을 얻은 것은 진정한 영웅일까요?
햄릿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라면 홍길동전은 생물학적, 사회적 아버지가 다를 때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타협해 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나이 들어 왕이 된 그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둡니다. 자신이 서자라서 괴로웠던 삶을 아들에게 물려준 거죠. 서자란, 신분에 의해 개인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충분조건을 제한당하는 굴레입니다. 홍길동전은 자신이 처했던 사회인으로서의 존재론적인 고민을 아들에게 물려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심청전의 역사는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의 형태는 수도 없이 바뀌었다. 내용이 다른 책만 해도 수십여 종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제대로 된 심청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고전은 늘 교과서에서 짤막하게 실려 있고, 그마저 시험 문제로 치부되어 문학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일리아드Iliad,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하는 그리스 최고ㆍ최대의 영웅 서사시를 라틴어로 외울 수 있다고 합니다. 때때로 상황에 맞는 대목을 읊는다고 하죠. 현실은 복잡해서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늘 올바르게 이해하기가 어렵죠. 그것은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인데 고전은 삶의 안내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현재는 없고 남들이 지목하는 괜찮은 미래를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 탐색하고 자생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일리아드와 같은 고전을 즐길 수 있는 아이가 페이스북facebook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청이 아버지가 새 부인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청이가 임당수에 몸을 던진 건 정말 효심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심청전을 놓고 고민하고 토의하는 문화가 조성되길, 그래서 고전에서 삶의 지혜를 얻길 바라본다. 
탈북 청소년들은 꿈을 안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편견과 차별 의식을 갖지 않고 그들을 온전히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글, 다양한 방법으로 확산되어야

현재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에게 한글의 정의와 발전 방향에 대해 물었다.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문자입니다.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고, 어떤 언어도 쓸 수 있죠. 문자의 민주화는 정보의 민주화를 낳고 부당한 권력과 권위를 깨치는 데 기여했습니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활자로 찍힌 문자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종교 개혁이 일어났죠. 하지만 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인터넷 주소는 알파벳으로 소통되죠. 한글로 된 고급 정보가 없으면 한국어도 사멸하지 않을까요? 언어의 사멸은 민족의 와해를 가져올 것이고, 보배로운 문화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한 예로 디지털 한글 박물관은 단순히 옛 문헌의 창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한글 보존과 확산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전시 주제를 잡아야 하고, 일하시는 분들이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정원 교수는 한글과 관련한 사업이 더욱 다채롭게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외국인을 위해 한글 자모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소개하는 간단한 쪽지를 만들어 공항에 배포하면 어떨까 하는 신선한 제안도 잊지 않았다.

 

서사 여행자 이정원 교수, 과거에서 현재를 발견하는 그의 노력이 멈추지 않길 바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본다.


이정원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스로 서사 여행자라 칭하며 고전소설 연구자로 살고 있다. 판소리 문학의 수용미학적 연구로 석사논문을, 애정 전기소설의 소설시학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다. 

글_ 김지혜 / 사진_ 김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