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봉착한 한국 교육
해방이후 한국사회 역동적인 성장의 원동력은 교육의 힘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과열된 경쟁교육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막고 있다. 교육은 출세와 발전의 도구적 가치만 중시되었고, 이에 기인한 경쟁 일변도의 사회에서 오늘날 학생과 교사와 학교가 신음하고 있다.
어느 특목고에서 성적이 전국 상위 1%안에 드는 3학년 학생이 입시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사건(경기신문 2008.6.19)은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한다. 현실은 잠시 풍랑이 일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과도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클리츠(J. E. Stiglitz)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경제 성장 잠재력의 장애가 된다.’는 말을 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성장과 분배는 대칭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성장론자들은 이른바 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까지 영향을 미쳐 전체 국가적인 경기부양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낙수효과落水效果’를 들먹이며 성장을 통해 더 큰 분배를 가져온다고 하였지만 현실에선 성과를 보이지 않았다. 교육도 과도한 경쟁이 가져오는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SBS에서 주관한 ‘경쟁의 딜레마-공존의 신생태계를 찾아서’(2011.11.2 제9차 미래한국리포트, SBS)라는 제목 하에 ‘무한경쟁 한국교육, 정작 경쟁력은 있는가?’의 소주제가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95%이상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소위 3~5%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학벌 경쟁으로 전 국민이 오랜 기간 삶의 스트레스에, 열등감에 시달리며, OECD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도한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한 미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실제 교육 문제의 중심은 사람이다. 교사와 학생으로 대변하는 지금의 사제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사제관계는
비오는 거리에서 스승을 만난 위당爲堂정인보가 젖어서 질퍽한 땅바닥에 앞뒤 가리지 않고 엎드려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권위를 강조하는 교사들은 이런 모습을 그리워하겠지만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낯선 광경일 것이다. 현재 교사들의 인식변화는 교육의 소비자로서 학생을 바라보며 전통적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자 볼노오(O. F. Bollnow)는 ‘만남이 교육에 선행한다.’고 했다. 이는 교육 이전에 ‘교사’와 ‘학생’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가에 따라 교육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즉 교사가 학생에게 감동의 마음으로 끌릴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학부모들이 교육이 잘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자녀가 교사를 존경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사제 간의 인격적 만남은 질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데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요조건이다. 인성교육을 배제한 지식교육은 그 효과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식을 탐욕추구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불량시민’을 양성할 위험성이 높다. 인성 및 윤리가 미약한 전문가 교육은 명백한 의료과실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책임회피와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의료인이 양성되거나 법률적 지식을 활용하여 탈법을 연구하는 데 앞장서는 법조인을 등장케 한다.
한국교육, 희망과 실망의 몸짓들
옛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교사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수업하러 복도를 오가면서 실내에서 휴지를 줍는 것부터 시작하여 교사들의 희생, 헌신, 봉사 등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정신들이 지금도 요구된다. 또한 무엇보다 교사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높이 날아올라 먼창공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바라보며 지혜롭게 조언하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도록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세대는 생소하겠지만 70년대 유명한 남성듀엣가수 ‘서수남, 하청일’이 있다. 오랫동안 한사람은 크고 다른 한사람은 작은 키로 알려져 있었다. 사실은 서수남씨가 장신長身이어서 당시 표준보다 큰 키였던 하청일씨가 상대적으로 작게 보였을 뿐이다. 학생들을 개개인의 특성으로 파악해야지 비교하기 시작하면 편견으로 잘못바라볼 위험이 있다.
교사를 꿈꾸는 교생들이 실습기간에 매우 소극적이거나 힘들여 업무를 배우려 하지 않는 모습들이 일부 눈에 띈다. 교직도 직업으로서의 안정성, 신붓감으로 최고라는 여성 직업인으로서의 선호도로만 작용할 뿐 교사로서의 소명감, 희생, 헌신, 봉사, 성실, 적극성 등이 적어진다면 문제가 있다.
자녀가 하나인 경우가 많아 귀하게만 성장한 학생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교육적 동기유발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학습주제와 장場이 마련되면 학생들은 조별 발표에 협력하여 활기차게 수업에 참여한다. 또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시험대비 핵심요약을 위해 친구들과의 협동학습이 늘고 있다. 아직은 미숙하고 자신의 필요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50대 후반의 중년 교사들이 오랜만에 고1 담임업무를 맡게 되었다. 수십 년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노하우(know-how)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으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로 인해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시에 청년 시절 가졌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이 다시 생성됨을 이야기 한다. 그들의 어려움은 최근 담임을 연임한 교사들의 조언과 격려로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교육적 경험들을 교사 전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접근이 뒷받침 된다면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지도의 어려움이 잘 해결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살 충동의 가능성에 대한 심리적 조사에 따른 학생 및 학부모 상담, 전문가 안내 등이 있다. 학생들을 옛날처럼 교사 한사람의 소신과 교육 철학으로 교육을 시키기에는 어려워진 환경이다. 분야별로 전문가 집단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잦은 간섭과 지시를 하거나,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즉흥적으로 땜질식 처방이 난무할 경우 교사는 쉽게 피로해지며 당혹스러워진다. 경쟁체제에서 부모들이 자기 자녀만 생각하는 이기적 생각과 태도로 인해 교사들이 감정적 상해를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문제 학생의 부모들은 이전과 다른 교육적 환경은 감안하지 않고 교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한다. 이로 인해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는 대다수 학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된다.
금년도 서울 공립 중등학교 교사임용고사에서 채용 규모가 작년보다 대폭 늘었다고 한다. 이는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중년의 교사들이 예년보다 많이 교단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둘러싼 교육적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 사회전체가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교육에 관심을 표방해야 한다. 과열된 경쟁 논리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공감하고,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각각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대화, 타협, 양보, 주체적인 참여 기회의 제공 및 책임부여, 공정성에 기반한 성과급 개선(예를 들면 획일적인 1년 단위의 성과급보다는 분야별로 학생지도, 자기계발, 행정업무 부문 등의 우수자 포상) 등의 여건이 마련되어 이러한 기제機制에 익숙해 질 때 훨씬 더 교육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리라고 본다.
글. 곽해룡 (명지고등학교 교사, 연구교과부장) 사진. 연합콘텐츠, 병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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