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여행

삐딱하게 읽고 정확하게 쓰기-문학 기자 최재봉

이산저산구름 2013. 5. 7. 11:12

 

삐딱하게 읽고 정확하게 쓰기-문학 기자 최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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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이라는 이름은 문학 기자의 대명사다. 1992년 5월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한겨레신문사에서 문학을 담당하고 있다. 이건 꽤 드문 일이다.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각별했고, 그런 그를 조직이 받아들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부로 발령이 난다면 미련 없이 신문사를 그만두겠다는 그는, 취재 기자로 남기 위해 승진을 고사했다. 퇴임할 때까지 '현장'에 있고 싶다고 한다. 정년은 만 58세, 그러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삶과 업에 대해 기사를 쓴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뭐, 그런 걸…….”이라고 머뭇거리다 이렇게 겨우 덧붙였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가교 같은 역할을 했던 게 아닐지…….”

 

'한국 문학, 경박하다.' 그가 문화부 기자로서 처음 쓴 기사의 제목이다. 기자의 첫 등장으로서는 아마 전무후무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수한 파문과 필화'를 일으켰다고 회고하는 사람답게 의욕과 패기가 넘쳤던 시절이다. 그는 문단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고, 그걸 꼬집고 싶었다고 한다. 필요하면 비판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고발도 했다. 작가나 출판사 사장과 '얼굴 붉힐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악평》열린책들, 2011이란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엉터리 같은 책은 처음 본다.”와 같은 가차 없는 문장들이 모여 있는, 그야말로 악평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옹호하고 지지하는 문학은 어떤 문학일까. 문학관에 대해 물었다. “지성의 깊이가 모자란달까요. 사연과 내면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그런 감정과 감상은 이미 너무 많지 않나 싶어요. 거시적인 시야를 갖추고 운명이라는 주제를 자기 식으로 소화하는 작가가 아쉽습니다.” 그는 최인훈 선생을 꼽았다. 지성의 깊이와 감각적인 문장을 겸비한 작가라는 평가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학적인 부분도 예전보다는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인터뷰를 한 어떤 시인과의 일화를 말했다. 시가 좋은 것 같고 소개할 의무감을 느꼈지만 그에게는 그 시들이 어려웠다. 그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라고 시인에게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의 솔직함과 소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그의 허세 없는 애정의 증거이기도 하다.


 
“고은 선생의 산문을 보면
절묘한 비문들이 많잖아요?
남들이 쓰지 않는 자기만의
문장 같은 것들,
그런 걸 보면 참 반갑죠.”



 

영문학도였던 그는 한때 학생들을 가르치고 문학을 연구하는 삶을 살려고도 했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양철 지붕 위의 뜨거운 고양이》 등을 읽으며 희곡에 빠졌다. 토머스 울프의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 토머스 울프를 좋아하는 이유로 거론한 것은 좀 전에 당신이 한국 작가들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라고 말한 것과 같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그건 어릴 때의 일’이라고 변명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모순과 대면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 않나 싶다.
 
좋은 문장에 대해 물었다. 현역 최고참 문학 기자는 ‘과도하게 멋 부리는 것을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자기가 자기를 정리하지 못하는 기사문들도 종종 보인다는 말을 하면서 짧고, 정확하고, 명료한 문장을 쓰고 난 후에나 ‘문체의 시도’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시도를 할까. 다소 낯설더라도 순우리말을 일부러 쓰는 편이라고 한다. 다 아는 것, 쉬운 것,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만으로 기사를 쓰는 건 언어의 가능성을 줄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심화된 글쓰기인 ‘문학적인 비문’에 대해서 말했다. “고은 선생의 산문을 보면 정말 절묘한 비문들이 많잖아요? 남들이 쓰지 않는 자기만의 문장 같은 것들, 그런 걸 보면 참 반갑죠.” 좋은 글일수록 쉽게 전염되고 닮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일까요.”라고 말머리를 떼면서, 과거 자신의 엄격했던 태도와 날 선 글쓰기에 대해 “좀 과했던 것도 같아요.”라고 말했다. 좋은 문학에 대한 입장과 기준은 여전하지만, 기사를 쓰는 그의 태도는 변한 것도 같다. “문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사회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잖아요. 연민 같은 게 있어요. 그래도 문학인데, 귀한 거 아닌가 싶죠. 요즘은 ‘사랑하자’ 그럽니다.” 그는 약해진 것이다. 그가 여러 번 읽었다는 《도덕경》에 따르면 ‘강한 것이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지만.  
 

최재봉
1961년 경기도 양평 출생.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고, 1992년부터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 《거울나라의 작가들》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등을 썼고, 《악평》 《제목은 뭐로 하지?》 《에드거 스노 자서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_ 한사유
문학을 전공하고 문학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