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시

살쾡이 한 마리 - 이은봉

이산저산구름 2012. 8. 22. 10:33



숙취의 느지막한 아침, 새하얀 수세식 양변기 위, 봉두난발의 살쾡이 한 마리, 쾡한 눈망울을 하고 멀뚱히 앉아 있다

양변기 뒤쪽
비눗물 자욱 너저분한 커다란 거울
숙취로 더럽혀진
어젯밤 죄…… 비추고 있다

새로 지은 원룸 아파트 안팎, 온통 캄캄하다 환하게 빛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아흐, 이 사람 각자 선생이라니!



― 「살쾡이 한 마리」 중에서 (『첫눈 아침』)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다른 생명체와 변별되는 특징은 수없이 많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는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고쳐 나가기 위해 인간이 행하는 첫 번째 심리적 기제는 반성과 성찰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고쳐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다른 생명체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은 그동안 영위해온 자기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남의 삶처럼 대상화시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상화시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남의 삶처럼 대상화시켜 바라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관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남의 삶처럼 대상화시켜 바라볼 때 반성과 성찰이 가능해지고, 반성과 성찰이 가능해질 때 자기 자신의 삶을 고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고쳐 나가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자기 자신의 품위를 높여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고쳐 나가는 방향이 어디고 무엇인지를 알면 이는 더욱 자명해집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풀고 펼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감추고 다듬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모으고 갈고 닦는 일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는 일차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단순합니다. 위에서 예시한 저의 졸시 「살쾡이 한 마리」가 바로 일상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에는 다소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논의가 요구된다는 얘기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의 서정적 주인공은 ‘살쾡이 한 마리’입니다. ‘살쾡이 한 마리’가 화자인 시인 자신을 객관화한 알레고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화자인 시인? 화자인 시인은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 이은봉 자신입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나 자신이 꾸리고 있는 삶의 내용, 반성과 성찰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가 좀 쑥스럽고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내 얘기를 남 애기처럼 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여기서 내 얘기를 남 애기처럼 하는 것은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실감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살쾡이 한 마리’는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 못 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먹이를 따라 떠돌아다니며 살 수밖에 없는 후기자본주의 시대, 이른바 노마드 시대에는 너무도 흔한 것이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저녁이 오고, 밤이 오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기 일쑤입니다.


술을 마실 때는, 술에 취했을 때는 좋지요. 하지만 술에 취해 숙소인 원룸 아파트의 침대에 함부로 부려져 있다가 아침에 깨었을 때는 참담해지지요. “숙취의 느지막한 아침, 새하얀 수세식 양변기 위”에 “쾡한 눈망울을 하고 멀뚱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영락없이 “봉두난발의 살쾡이 한 마리”이지요.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쓴 것이 이 시입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다시는 술 따위로 외로움을 달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지요. 술은 잠시 우리의 영혼을 마취시킬 뿐이지요. 그러니 “아흐, 이 사람 각자 선생이라니”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은봉 올림

이은봉
1953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했고, 1992년 숭실대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 문학』 제5집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데뷔했고,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에 참여해 연구조사분과 간사 등을 맡았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개편된 이후에는 감사, 이사 등을 맡았다. 2007년 한국작가회의로 개편된 이후 현재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삶의문학』, 『시와사회』, 『문학과비평』, 『문학마을』, 『시와사람』, 『시와상상』, 『불교문예』 등의 문예지 편집에 관여해 편집위원, 편집인, 주간 등으로 일했다. 현재는 계간 『시와시』 주간으로 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실천문학사), 『봄 여름 가을 겨울』(창작과비평),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신어림), 『무엇이 너를 키우니』(실천문학사),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창작과비평사), 『길은 당나귀를 타고』(실천문학사), 『책바위』(천년의시작)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실사구시의 시학』,『시와 리얼리즘』,『진실의 시학』,『시와 생태적 상상력』 등이 있다. 연구서 및 시론집으로 『한국현대시와 현실인식』,『화두 또는 호기심』 등이 있다. 한성기 문학상, 유심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