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대 잉카의 숨결, 쿠스코

이산저산구름 2011. 5. 26. 16:40

세 개의 문명이 깃든 거리
도시와 외곽 곳곳에 잉카의 흔적들이 널려있다. 자갈이 바닥에 깔린 좁은 거리와 아래, 위의 형태가 판이하게 쌓여진 돌담들로 이루어져 있어 세 개의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건물에 세 가지의 건축양식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잉카 이전 시대에서는 커다란 돌을 자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배열하였던 것을 잉카 시대에 와서 매우 규칙적인 배열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담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 위에 조잡하게 쌓아올린 벽돌이 식민지시대의 것이다. 즉, 발코니가 있는 엷은 색의 커다란 식민지 풍 건물들은 단단하게 지어진 잉카 석조물 토대 위에 올려져 아래는 잉카건축물이 되고 그 위는 식민지시대 건물이 된 것이다. 이처럼 쿠스코는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잉카와 식민지시대의 건축물로 가득하여 마치 500년 전에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하다.

 

우기가 찾아온 계절이다. 하늘은 회색구름만 가득했지만 붉은 기와지붕의 도시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원래 쿠스코는 십자형상의 4방향 도시였다. 이를 따우안띤수유(Tahuantinsuyu)라고 불렀다. 오늘날 웅장한 대성당이 자리한 중앙광장에는 쿠스코시의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중앙광장은 도시의 신경중추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언덕 위에는 시가지를 굽어보듯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하얀 예수상이 보인다. 예수상이 있는 이 언덕 위에 잉카 석재기술의 걸작이라는 삭사이와망(Sacsaywaman) 유적지가 있다.

 

태양이 흘리는 눈물, 황금도시
대성당은 1560년 잉카의 비라꼬차 신전을 허물고 세운 것으로 무려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들여 1654년에 완성되었다. 육중한 외관이지만 내부는 섬세하게 장식된 은세공으로 만든 제단과 화가 반 다이크(Van Dyck)와 쿠스코파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원주민 피부색인 검은 예수상이 있다. 성당 앞에는 검고 긴 머리채를 색색의 끈으로 엮어 한 갈래 또는 두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리고 머리쓰개를 하거나 작은 모자를 쓰고 때에 절어있는, 원색의 전통의상으로 성장한 원주민여인네들이 아이를 업거나 알파카를 끌고 나와 “우나 포또 운 솔!(사진 한 장 1솔)”을 외치며 관광객을 잡는다. 모델이 되어 주고 푼돈을 받는 것이다. 


쿠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잉카 벽은 종교예술박물관을 끼고 있는 아뚠루미욕(Hatunrumiyoc) 골목길이다. 양쪽 벽은 마치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돌들이 다양한 각도로 연결되어 1mm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물려 있다. 얇은 종잇장조차 들어가지 않는 다각형의 돌 블록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지름 115m인 하나의 바위를 12각으로 다듬어 물린 유명한 ‘12각 돌’이다. 잉카의 달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12각은 각각의 달을 가리킨다.


남쪽으로 나 있는 주도로 아베니다 솔을 따라 내려가면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성당이 있다. 그러나 이 성당은 원래 잉카의 태양신전인 꼬리깐차(Coricancha)를 허물고 그 위에 지었다. 아직도 검은 색 바위들을 마치 두부모처럼 반듯반듯하게 잘라 반들반들하게 잘 다듬어 쌓아올린 잉카의 훌륭한 토대와 단단한 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1650년과 1950년 발생한 두 번의 큰 지진으로 스페인이 지은 성당건물은 크게 파괴되었지만 신전은 멀쩡하게 견뎌내었다. 이는 잉카 건축술의 특수한 설계 때문인데 요철로 다듬어 연결한 다각형의 돌 블록 짜 맞추기로 서로 견고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500년도 더 전에,  철로 만든 도구를 몰랐던 당시에도 이처럼 대지진에 대비 하였다 하니 놀랍기만 하다. 끄떡없는 견고한 건물을 만든 건축술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잉카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꼬리깐차의 문과 지붕에는 한 장에 2kg 나가는 순금 판이 700장 이상이나 덮여있었고, 순금으로 만든 옥수수가 심어진 사각형 안뜰 중앙에 지금도 남아있는 팔각형 회색 주춧돌에도 55kg 순금을 씌웠다. 따라서 스페인 이 침략할 당시 신전 전체는 태양처럼 눈부신 황금빛으로 위용을 뿜어내듯 번쩍였다고 한다. 그 찬란한 광경을 목격한 스페인군들이 ‘태양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불렀다는 황금도시 쿠스코.


잉카는 태양과 달, 금성, 별들, 그리고 천둥과 번개를 숭배하였다. 그 중의 가장 위대한 신 태양을 위한 성소로서 최고의 예술로 표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 신전이다. 일부 복원된 신전 내부에 들어가니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시원하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벽은 단단한 화강암을 잘라 다듬어서 깨끗하게 연마한 돌 블록으로 정확하게 맞물려 있고 활처럼 굽은 아치가 있어 전체적으로 기품 있고 우아하다. 현대의 어느 멋진 빌딩 못지않게 세련되고 훌륭한 건축미를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철기도구도 없이 만들었다니.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쿠스코인들이 벌이고 있는 뿌리 찾기 사업의 하나로 세워진 거대한 황금동상탑이 있다. 동상은 쿠스코의 실제 건설자로 정복왕인 9대 잉카 빠차쿠떽(Pachakutec)왕이다. 33m 높이의 탑 내부에 있는 달팽이집 같은 계단을 오르면 12m의 빠차쿠떽 동상이 서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거칠게 부는 바람 사이로 쿠스코를 둘러싼 갈색 민둥산에는 산을 도화지 삼아 커다랗게 그려놓은 페루국기의 문장과 ‘페루여 영원하라’는 글귀가 보인다. 산을 대형광고판처럼 이용하는 기발한 발상은 나스카라인의 전통일까.

 

 

 삭사이와망
유적지들 중에는 실제로 보지 않고는 그 규모의 거대함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잉카성벽 ‘삭사이와망’이 단연 백미다. 고대남미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크다는 삭사이와망은 15세기 후반에 빠차쿠떽이 건설하고 또빡 유빵뀌(Topac Upanqui) 대에 완성되었다. 10대 잉카 또빡 유빵뀌는 그리스의 알렉산더나 몽고의 칭기즈칸 또는 광개토대왕처럼 정복과 회유로 영토를 확장하여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3층 계단으로 쌓은 거대한 성벽은 높이 약 18m, 길이 총 500m 이상으로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날카로운 톱날처럼 보인다. 지그재그로 돌출된 66개의 벽은 하나의 크기가 무려 8.53m이고, 무게는 100톤에서 361톤에 이르며 소형차 500대의 무게를 가진 거대한 바위들로 줄지어 층을 이룬다. 또한 다양한 각도로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고도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마치 거인의 계단처럼 보이는 성벽의 바위들은 10km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온 것이다. 안데스화강암, 반암, 석회암 등 야물고 단단한 바위들을 강철, 수레바퀴나 마차도 없이 채석에서 운반까지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자르고 운반하였다. 스페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중남미문명에서는 철기와 바퀴를 쓸 줄 몰랐던 것이다.
500년 전, 이곳에서 잉카와 스페인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잉카인들이 죽어 시신들이 널렸었다. 그때부터 삭사이와망 즉, ‘매의 둥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병전에 익숙한 잉카인들이 천하무적 화승총 앞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환영이 보이는 듯하다. 수로와 저수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꼭대기 광장에 오르니 붉은빛 쿠스코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살아있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는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건물 증·개축이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정부와 시민들 스스로 뿌리 찾기 프로젝트를 수행해 역사보존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이처럼 시간이 멈춘 듯한 옛 도시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반면 외곽으로는 늘어나는 관광객 등에 따른 수요를 위한 발전으로 규모가 커지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만나는 쿠스코 시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잉카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문명은 사라졌지만 그 자취와 자부심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쿠스코는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가는 전설의 도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잉카의 수도로 만날 수 있었다. 오늘날 쿠스코는 보존과 발전이라는 상이한 두 과제를 조화롭게 풀어가는 본보기로 거듭나고 있다. 
 

글|사진ㆍ정지은 중남미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