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의 깊은 가치
선조들이 남긴 문화의 결정체로 각 시대를 거쳐 온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만 온전한 가치를 지닌다. 문화재가 제자리를 떠나게 되면 한갓 골동품적인 가치로만 치부하게 되고 자기 자리를 되찾게 되면 우리 문화의 실상을 밝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러나 국외에 있는 문화재 모두를 환수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환수만이 능사도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쌓인 한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 프랑스와 일본의 한국문화재 반환에 관한 낭보가 연거푸 날아들었다. 2010년 11월 12일 서울에서의 한•불 정상회담과 11월 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문화재의 반환을 약속받았다. 프랑스와는 17년간 끌어오던 외규장각도서 반환(물론 조건은 붙어있지만)이 확정되었고, 일본과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대출도서와 조선왕조의궤 등 조선총독부시절에 유출되어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한국 고서를 돌려받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그동안 주장해 왔던 상호 대여나 교환 등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임대 형식으로 돌려준다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해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하여 가지고 간 340책 가운데 조선왕조의궤 191종 297책을 돌려받게 되었다. 이 가운데 어람용 의궤가 289책이고 분상용 의궤 5책, 형지안 2책, 등록 1책 등이 있다. 이 어람용 의궤는 현재 규장각에도 148책 밖에 없다. 의궤는 당대 최고 수준의 재료와 기술자에 의해 제작된 기록물임과 동시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이 책들은 왕실에서 치룬 모든 의식 절차에 대한 기록이며, 사용된 물품과 동원된 사람들과 인부의 노임 등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사항까지 기록되어 있어 조선왕조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보고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토목, 사회, 경제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993년부터 이어져 온 프랑스의 외규장각 조선왕조의궤 반환 문제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우리나라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국외에 유출된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선왕조의궤에 대한 관심으로 마침내 조선왕조의궤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문화재 환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무리 우리가 돌려받고 싶어도 상대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화재 환수는 상대국에게 꾸준하게 신뢰를 구축하면서 접근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다.
일본 궁내청의 반환대상 한국고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 통치 자료로 참고하기 위해 반출해 갔던 책과 1922년 조선총독부가 기증한 책 등 모두 150종 1205책이다.
이토 히로부미 반출도서는 상당수의 희귀자료가 포함되어 있고 역사 문화사적인 가치가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통감부 때 반출된 도서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쁜 것이다. 이것은 과거 일본과는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선왕조의궤 환수위원회가 요청한 조선왕조의궤가 포함되어 있다. ‘경연’ 도장이 찍힌 도서나 ‘제실도서’가 반환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우리 측이 제시한 입증논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측이 정한 반환기준 즉, ‘일제 때 조선총독부를 경유해 반출된 도서에 한정한다’는 지난해 8월 일본 총리의 담화내용에 의해서 제외된 것이다.
국외 문화재, 실태 파악의 선행이 중요
문화재 환수는 먼저 환수대상의 실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외전적조사연구회 등에서 조사한 목록이 있으나 아직 조사하지 못한 곳이 많다. 국외 유출문화재는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등으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기에 유출된 것이라서 그 유출 경위가 불확실한 것이 많다. 아무리 약탈문화재일 가능성이 높은 것도 근거가 없으면 반환을 위한 외교적인 교섭이 성립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금년에 반환받을 대상은 박병선 박사와 국외전적조사연구회에서 이미 오래전에 실태조사가 이루어져 반환대상임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뚜렷하게 있었고 약탈된 문화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 확정되기까지 17년이란 세월이 소요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작년에 반환이 확정되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협의가 필요하였고 문화재청과 시민단체, 외교부 등의 역할이 있었다. 많은 협의와 연구로 이어지는 노력이 있었기에, 외규장각 도서가 한걸음 더 우리에게 가까워지게 되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킬 수 있는 건강한 시각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지녔던 높은 안목으로 창출한 전통문화의 결정체이다. 국외에 있는 한국문화재를 보다 열린 자세로 보고 객관화시켜보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도 의연하게 국가의 품격品格을 고려하면서 문화재 반환 교섭을 해야 할 것이다. 모든 문화재 환수는 소유자가 반환해 주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소유자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에 국가 간 외교적인 협상의 몫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치 않다. 초기에는 움쩍도 않는다. 그러다가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고 여론을 위한 언론의 역할이 필요하고 정치인들의 관심으로 외교적인 현안으로 등재되어야 외교 교섭을 하게 된다. 최근에 상당수의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 그리고 기록유산으로 등록되고 있다. 이제 우리 문화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문화재가 세계인류공동의 유산이라는 섣부른 논리에 동참하여 양보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명분이 약한 문화재 반환에 매달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다만 국외에 있는 수많은 한국문화재에 대해서 실태조사를 하여 학술자료로 활용하고 당해국에서 문화재의 위상을 제고시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선양하는 문화첨병 역할을 맡기는 것이 훨씬 국익에 부합된다. 이제 국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정확한 실태 파악이 선행되어 학술적인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각계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아우르고 국외문화재 조사와 연구 그리고 활용할 수 있는 기관설립(국외문화재 재단)이 필요하다.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상대국에게 한국의 역사 문화를 이해시킬 수 있는 보고일 뿐 아니라 국내에 없는 희귀 자료도 많이 있다. 금년 상반기로 예정된 양국에서의 문화재 반환이 원활하게 타결되기를 염원하면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대표적인 문화재를 우리 전문가의 안목으로 살펴보는 일은 매우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글 / 사진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사진 / (주)눌와 (옛 사람들의 삶과 꿈, 수난의 문화재, 문화재청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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