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는 개와 비슷하나 개도 물고기도 아닌 동물
조선초기의 유학자 정약전(1758~1816)이 1814년 전남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조사하고 지은 『자산어보』 해수편 올눌수獸에 따르면 “개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크고, 털이 뻣뻣하며, 검푸른색과 황백색의 점으로 이루어진 무늬가 있다. 눈은 고양이를 닮았고, 꼬리는 당나귀, 발은 개와 비슷하다. 물에서 나오면 제대로 걷지 못해 항상 물 속에서 헤엄쳐 다니지만 잠 잘 때는 물 밖으로 나와 잔다.”고 점박이물범을 묘사하였다. 또한 물범을 일명 해표海豹라고도 하는데 고려 중기 문신 김부식이 1145년 저술한 삼국사기 신라 본기 성덕왕 29년(서기 730년)을 보면 “봄 2월에 왕족 지만을 보내 당나라에 해표가죽 10장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허준의 동의보감 권4 탕액편을 보면 올눌수에서 얻어진 올눌제臍는 음위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점박이물범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남해에 있었고, 점박이물범 가죽은 매우 귀한 진상품이었으며, 올눌수 생식기는 주요 약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올눌수가 현재의 점박이물범이 맞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일본의 『한화대자전』이나 『광사원』을 보면 그 해답은 분명하다. 즉, 일본 아이누족이 물개를 우네우(uneu) 또는 온네프(onnep)라 부르던 말이 중국으로 건너가 ‘uona’로 불려지다 wana로 바뀌고 이는 발음이 비슷한 한자 올눌로 차음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올눌은 ‘물개’를 지칭한 것인데 물범이 물개로 잘못 알려졌고 또한 우리나라에도 잘못 전해져 물범과 물개를 혼동하여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옥편이나 자전을 보면 올은 해구-올, 눌은 물개-눌이라 적고 있다는 점에서 물개와 물범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물개를 일본에서는 한자로 올눌이라 쓰고 옷토(otto)라 발음하며, 이들의 생식기를 올눌제臍 즉, 옷토세이(Ottosei)라하며 올눌을 개구狗자를 써 바다개 - 해구海狗 즉, 물개라고 부르고, 점박이물범은 참깨胡麻 같은 점斑이 많은 물범海豹이라 하여 호마반해표(胡痲斑海豹, Gomafu azarashi)라고 구분하여 부르는 점은 이를 더욱 신빙성 있게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물개를 ‘옷토’라고 하여야 옳지만 옷토의 생식기인 올눌제臍가 세간에 너무나 많이 잘 알려지다 보니 이제는 아예 옷토의 생식기인 ‘옷토세이’가 ‘물개’라는 이름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물개의 생식기인 올눌제 일명 해구신海狗腎이 몸에 좋다고 소문나고, 한의서에서도 물범과 물개를 혼동하여 물개의 생식기가 좋은 것처럼 물범의 생식기도 좋은 것으로 잘못 적음에 따라 물개 아닌 물범이 남획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물론 울눌제라는 용어의 어원에 대하여 금년 5월 일본에서 발행된 행우杏雨 13권 389쪽에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유입된 용어라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자신의 이름조차 확실치 않던 점박이물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에 분포하는 점박이물범은 학명이 Phoca largha이며, 일본에 주로 분포하는 물개는 북태평양과 베링해 및 오오츠크해 연안에 분포하는 북방물개(Northern fur seal)인 키다옷도세이(kita ottosei)인 학명 Callorhinus ursinus라는 점에서 분류학상 이들은 전혀 다른 종이다. 중국에서는 점박이물범을 점박이가 있는 바다물범이라하여 무늬 반斑, 바다 해海, 표범 표豹를 써 반해표斑海豹라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산어보나 본초강목에 기재된 올눌수는 몸에 얼룩덜룩한 표범과 같은 무늬가 있다고 기록한 점에서 점박이물범이 틀림없으며 이런 무늬가 없는 물개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더구나 사할린 부근이나 오오츠크해에 사는 물개가 일부 남하하여 동해에서 발견되는 일이 간혹 있지만 전라도 남해까지 남하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 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기록된 올눌수는 분명히 중국에서 잘못 기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탓에 야기된 사실로 추정된다. 지금은 물범을 ‘점박이물범’이라고 통칭하지만 2007년 12월 26일 당시만 하여도 이들은 한글 이름조차 확실치 않았다. 즉, 물범들을 점박이물범, 잔점박이물범, 점박이바다표범, 물범, 물개 등으로 사람마다 학자마다, 신문, 잡지, 방송 등이 제각각으로 불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물범이 유전자분석 결과 Phoca largha이고 영어명이 spotted(점) seal(물범)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영어명칭의 의미를 살리고 물범의 외관상 이미지를 쉽게 연상할 수 있게 개명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당시까지 물범(Phoca vitulina largha)이라고 되어 있던 천연기념물 명칭을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점박이물범’으로 개명하고 2008년 4월 15일 문화재청에서 정식으로 고시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에 비해 대폭 줄어든 점박이물범 개체 수
점박이물범은 현재 동해, 남해, 서해 전역에 분포하는 것이 확인되지만 동해나 남해에 출현하는 개체 수는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 서해 백령도 물범바위, 연봉바위, 두무진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백령도 이들 세 곳에 분포하는 개체 수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국립환경연구원, 녹색연합이 각각 조사한 결과를 종합하면 대체로 매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40년대 초반 중국 라오뚱만에는 8,00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있었으나 1980년대에는 2,300마리로 줄었다고 한 보고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서해에도 점박이물범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던 점박이물범은 과연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첫째는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중국 랴오둥만에서 먹이가 풍부한 백령도로 봄에 와서 여름을 지내고 늦가을에 다시 북한 해역을 거쳐 랴오둥만으로 돌아가 떠다니는 얼음인 유빙 위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에 따른 환경오염으로 랴오둥만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유빙이 줄어듦에 따라 번식기에 물범들이 번식처를 잃어버려 백령도로 내려올 개체 수 자체가 감소한 것에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서 국내적으로 보면 백령도 두무진에서 관광유람선이 점박이물범 가까이까지 접근할 정도로 운행되고 있고, 점박이물범들이 노니는 물범바위나 연봉바위에서 낚시나 해산물 채취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점박이물범들이 여기에서 쉴 곳을 잃고 위해도 느껴 아예 백령도를 포기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의 주장처럼 백령도 인근에 백상아리의 출몰이 잦아 이들에 쫓긴 물범들이 인근의 무인도나 백령도 이외의 다른 섬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백령도는 까나리 액젖이 너무나도 유명한데 까나리나 멸치를 잡기 위한 그물과 점박이물범 서식지 주변에 설치된 통발도 물범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범의 효율적 보호와 관리는 어민 생업을 먼저 고려해야 풀릴 문제
물고기도 아니고 개도 아닌 날렵한 모습의 점박이 멋쟁이,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우리나라가 자랑할 만한 귀중한 자연자원이다. 물론 중국의 랴오뚱만에서 매년 내려오지 않는다면 다시 논할 이유도 없지만 이들은 분명 우리의 소중한 천연자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잘 보호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그것은 국토해양부나 녹색연합이 제안한 ‘점박이물범 서식지 보호구 지정’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백령도 어민들과 이 지역을 ‘점박이물범을 위주로 한 해양생태관광 시범지구’로 운영하기 위해 시범사업까지도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으로 점박이물범은 문화재청, 국토해양부, 환경부가 각각 ‘문화재보호법’,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하여 관리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효율적인 점박이물범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서는 이들 3개 기관이 상호 긴밀하게 협조하고 협의하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점박이물범의 보호와 관리는 매일 직접 점박이물범들과 부딪히는 어민과 결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과 협의는 필수다. 왜냐하면 어민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점박이물범의 보호와 관리가 어로행위를 방해하여 생업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이들과 함께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점박이물범도 사람도 결코 편치 못할 것이다. 인간과 점박이물범은 자연과 생업을 사이에 두고 서로 공존해야 될 입장이지 경쟁관계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 이흥식 전 문화재위원 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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