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이산저산구름 2010. 9. 14. 13:41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우리나라의 10번째 세계유산으로 하회와 양동마을이 등재되었습니다.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유산에는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122호), 병산서원(사전 260호) 양동마을(중요민속자료 189호), 독락당(보물 제413호) 및 옥산서원(사적 154호), 동강서원(경상북도 기념물 114호)이 포함됩니다.

 

ⓒ문화재청

하회마을의 전경(上), 양동마을의 전경(下)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단순히 '귀중한 가치가 있다'라는 말로 그 의미를 다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여행'이 국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외국인관광객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국인관광객 유치와 관광객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국가 이미지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세계유산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또,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빼놓을 순 없겠죠 . ^^

   

 

자, 그럼 이렇게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된 세계유산으로 하회와 양동마을이 등재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 그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뛰어난 보편적 가치(OUV)란??

 

  국가의 경꼐를 넘고 현재와 미래 세대의 모든 인류에 공통적으로 중요할 만큼 특별한 문화적 또는 자연적 중요성을 띠는 것으로 한 유산이 OUV를 갖는 것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완전성과 진정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해당 유산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보호 및 관리체계는 필수적이다.

구체적으로 OUV라 함은 등재신청의 핵심인 동시에 평가대상, 특정 유산이 등재되는 이유, 그리고 보호·보전·관리를 통해 유지될 필요가 있는 것을 뜻한다.

  

첫째,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특징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씨족마을의 고유한 공간 구성을 완전하게 보전

 씨족마을이란 성씨를 매개로 하는 부계 혈연집단이 대를 이어 한 곳에 정착하여 이루어진 정주 형태를 말합니다. 씨족마을에는 하나 혹은 두 성 성씨의 양반이 마을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의사결정에 주도권을 가지며 벼농사가 경제적인 기반이 됩니다.

 

하회는 주변지여긍로부터 새로운 정주지를 찾아 이주하면서 정착하게 되는 개척입향의 경우이고, 양동은 혼인으로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를 잡는 처가입향의 경우입니다.

 

 이 두 마을에서는 입향 이래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조선시대 명망 높은 씨족마을의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조선시대에 영남지방을 순찰하거나 여행하는 선비들의 0순위 방문지였을 정도로 당시에도 명성 있는 두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풍수 조건을 잘 갖춘 길지에 입지한 이상적인 마을 

 사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외견상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풍수의 길지에 입지했는데 하회의 경우 물이 마을을 섬처럼 둘러싸는 '연화부수형'의 터에,  양동의 경우 작은 골짜기가 여럿 나란히 있는 '勿'자형의 형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회마을 경우,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되었으며, 두 마을 모두 『조선의 풍수』에서 '삼남의 사대길지'에 포함되었습니다. 

ⓒ 문화재청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의 가옥과 건물들은 지형의 경사에 기대어 집의 자리를 잡고, 집에서 나라보이는 조망점을 풍수의 원칙에 따라 조정한 결과 건물과 자연이 일체화된 경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 구성은 '농경지-주거지-유보지'로 나타나고, 농경지는 생산공간, 거주지는 생활공간, 유보지는 의식공간이 됩니다. 

 

셋째, 역사적인 건축물들 

두 마을에는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있어 수백 년에 걸친 마을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의 종가인 양진당은 16세기, 양동마을의 종가인 서백당은 15세기에 건립되었습니다. 두 마을에 있는 가옥들은 조선시대 주거건축 변화와 함께 조선시대 유학의 영향으로 가옥 배치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교건축 중 하회의 병산서원과 양동의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의 대표적인 유교경관요소인 서원의 가장 뛰어난 사례로 이미 각각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넷째, 수 세대에 걸쳐 내려오는 전적, 고문서, 문집을 보관 

두 마을에는 조선시대의 족보가 남아있으며, 마을의 재산과 관련된 문서나 서신들도 남아있습니다. 

류성룡의 필사 원본인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체험적으로 기록한 귀중한 역사 자료로 하회마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양동마을에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매우 이른 시기의 증거로써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통감속편(通鑑續編)』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두 마을에는 엄청난 양의 전적과 문집이 있습니다. 

ⓒ 문화재청 

특히, 이 두 마을에서 보관되는 고문서의 경우 개인간에 서로 주고받은 간찰, 매매 등의 일상행활과 관련된 계약 문서, 혹은 관혼상제 관계 문서, 각종 분쟁에 관련된 소송문서, 재산상숙에 관한 문서, 관청에 대한 민의 청원서 등으로 모두 유일본이라는 점과 가공되지 않은 1차 사료라는 점에서 한국 향촌사회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다섯째,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무형유산 

하회와 양동마을의 집안에서는 전통방식의 관혼상제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도시와 농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통적 풍습을 두 마을에서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마을에는 4대조 봉사 외에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학덕이 높아 자손들이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도록 국가가 허락한 제사인 불천위 제사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유생들이 참가하는 서원 향사가 매년 봄가을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 문화재청 

 

또, 이 두 마을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놀이와 세시풍속으로 이어지는 민속놀이들이 있습니다. 하회의 경우 선유 줄불놀이가, 양동의 경우 줄다리기가 그 대표적인 민속놀이입니다. 이 놀이들은 마을공동체가 지연적 유대를 강화하는 구실을 하며, 혈연 중심의 제례문화가 지닌 한계를 보완해 주기도 합니다.

 

특히, 잘 알려진 하회마을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 연희되어온것으로 전통 연희의 원초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입니다. 

ⓒ 문화재청

하지만...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세계유산에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복합유산이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전에 ICOMOS와 IUCN이라는 곳에서 자문을 받습니다. 그 뒤 회의를 거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ICOMOS(국제기념물유적위원회)는 문화유산분야에 자문을 하고,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은 자연유산분야에 자문을 합니다.

복합유산의 경우 ICOMOS와 IUCN 두 곳 모두에서 자문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번에 등재된 하회와 양동마을은 문화유산에 해당하므로 ICOMOS에서 그 자문을 담당했습니다. ICOMOS의 자문 결과는 보류(Refer). 그 이유는 하회와 양동. 이 둘을 통합하는 관리체제의 부재에 있었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국내관련 전문가, 경상북도,안동시, 경주시 등 관련지자체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구성하고 2010년 4월말 안동에서 첫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활동과 노력이 반영되어 7월 말에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ICOMOS의 자문 결과에도 불구하고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등재'되었다는 것으로 모든 보존관리가 끝났으며 그 가치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ICOMOS가 권고했듯이 지속가능한 보존과 발전을 위해 마을과 주민의 수용 능력을 고려한 관광관리 계획을 수립 그리고 시행해야합니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마을별 중장기 보존관리 전략의 수립과 시행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합니다.비단 정부기관만의 노력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너무나 자랑스러운 5가지 가치를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 지역주민 그리고 시민단체 등 사회 전반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이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