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닮은 소쇄원의 꽃담은 시들지 않는다
이 종 근
전남 담양 소쇄원(명승 제40호) 입구의 대숲은 ‘죽향의 고향’답게 그림자조차 집어 삼킬 만큼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는 담양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데 8할은 대잎이 가져다주는 바람 소리라고 믿고 있다. 댓잎의 사각거리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자란 담양인은 누구에게나 문학적인 감흥이 있는 것 같다. 그 사이로 산산이 부서지는 아침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황홀하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선비 소쇄공 양산보(1503년-1557년)선생이 기묘사화로 스승이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해 자연 속에 파묻혀 살기 위해 만든 정원이다.
소쇄공, 나는 선비처럼 살았는가, 앞으로 당당한 선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역시 벼슬길에 올리면 출사(出仕)요,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살면 처사(處士)요, 거사(居士)로 처신함은 애시당초 걸어가야할, 똑 떨어지는 교과서 같은 루트였다.
그는 아마도 시시각각 내려 앉는 눈꺼풀을 차마 이길 수 없으면 세수를 한 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것이다. 잠시 후에 이어지는 순서는 소리내어 문장읽기-.
잠은 어느 새 사라지고 청정한 마음이 되어 고금을 오가며 장자도 되고 노자도 됐으리라. 때론 ‘맹자’의 빈틈없는 논리에 세상의 병폐를 생각해봄은 물론 ‘통감’을 보면서 끊고 맺는 이치를, 때론 ‘고문진보’를 읽으면서 시속의 떼를 벗겨내기도 했겠다.
토석담과 담벽(꽃담)에 새겨져 있는 글씨 ‘오곡문(五曲門)’, ‘애양단(愛陽壇)’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원(園)이 운치를 더하고 있는데, 울창한 죽림과 배롱나무, 느티나무 정자 등과 어우러져 시나브로 ‘하늘 닮은 선비의 마음’도 멀잖다.
대봉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동쪽 담에는 ‘애양단’이라고 새겨진 글씨 판이 박혀 있다. ‘효경’에 보면 부모님의 은혜를 추운 겨울날 끝없이 따스하게 비춰주는 햇빛에 비유하면서, 자식들은 그 은혜를 갚는다면서 겨우 손가락 하나 크기만한 보리싹만큼 비치고는 효도를 다했다고 하는 세태를 비난한다. ‘효경’에는 겨울날 따뜻한 햇볕을 따라가는 병아리가 해를 사랑하는 것처럼 항상 부모님을 생각하라고 한다. 이때 ‘애일(愛日)’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쇄공은 추운 겨울날에도 따스한 햇볕을 쬐며 쉬기에 너무 좋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효경’의 부모 공경하기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같은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날 일(日)’자를 대신해 ‘볕 양(陽)’자로 바꾸어 사용했다.
애양단 가운데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담장 아래로 흐르는 계류가 넓적한 암반을 다섯 번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오곡문이다. 주목되는 시설은 오곡문 아래쪽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여 시공한 기와를 입힌 자연석과 흙으로만 쌓은 토석담이다. 돌을 섞어 흙담을 쌓고 기와를 얹으며 쭉 이어 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넓적한 바위를 걸쳐 다리를 놓은 후, 그 위에 담을 올렸다. 오곡문은 냇물이 담 아래로 흐르게 한 설치물로, 담 아래 터진 구멍으로 다섯 굽이를 이룬다는 뜻이다. 꽃담은 가르쳐준다. 사람을 위한 문이 아닌, 물을 위한 문이라고.
매대(매화나무 화단) 뒷담에는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라는 글씨 판이 박혀 있다. ‘소쇄옹 양산보의 조촐한 집’이라는 뜻으로 소쇄원의 문패이지만 글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벼슬을 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 있는 선비, ‘처사’란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의를 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맹세코 날개를 펴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재된 꽃담이 아닐까.
서슬 시퍼런 권력의 칼날에도 무릎 꿇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고, 댓잎의 이슬처럼 고고하게 세속의 모든 그리움, 그 안에 묻어두고 꿈을 싹틔우며 하루하루를 함께 한다는 변화의 다짐, 새끼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지 않고 담장에 새김으로 대신했다.
숱한 인고의 시간은 기본을 청아로이 다듬게 하는 주춧돌이 되고, 거센 비바람과 싸우다가 꽃보다 키 작은 대나무 바자울이 됐네. 속은 새??만 숯검댕이처럼 타 들어가는 한편 두엄과 같이 썩어가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처사'와 '조촐한 집(廬)'의 의미, 푸른 댓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에메랄드빛처럼 곱기만 하다.
‘싸아악~ 싸아악’ 선비의 바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어디선가, 어느센가 들려온다. 소쇄공, 그는 시경속의 내용 좋은 시를 줄줄줄 외우면서, 달달달 읊조리면서 나홀로 ‘녹록(綠綠)’한 삶을 영위한다고 장담했지만 어느 하루도 호락호락 ‘녹록(錄錄)’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500여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건만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간 한 선비의 체취가 여름날에 뿌려지는 소나기처럼 흠뻑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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