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정이품송을 찾아서

이산저산구름 2010. 5. 18. 15:33

     

 정이품송을 찾아서

                                               
  
         김 계 점




가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하늘은 드높아 사람의 맘까지 청아하고, 오색의 단풍이 그 깊이를 더해 가며 만산홍엽으로 채색되던 가을 날, 나에게 주어진 큰 과업이 하나 있어 눈 돌릴 여유가 없이 빠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닥친 한파에 곳곳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아~답사기, 마치 긴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가야하는데, 밀린 숙제를 하지 못한 아이마냥 조급증이 일었다. 그래서 주말에 이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옛날 세조임금의 행렬이 이 곳을 지났을 때는 장재리를 지나 말티재를 넘어서 그렇게 찾았을 길, 임금은 연을 타고, 왕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걸어서 또는 말을 타고 지났을 길을 나는 차를 타고 왔다. 속리산 품안으로 들어서면서 먼저 정부인송의 다소곳한 자태를 만났다. 산그늘이 일찍 드리워 알싸한 추위 속에 있었지만 더욱 꼿꼿하고 청정한 정부인송을 만나고, 삼가터널을 지나 해발 390미터 갈목재를 넘어가는데, 전날 내린 잔설 때문에 고갯길이 심상찮아 행여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운전을 하여 다다르니 법주사 가는 길목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나무 한 그루 주변의 산세가 매우 아름다워도 주위의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수려한 나무 한그루, 어릴 적에도 이 나무는 여기 있었다. 교과서에 등장하여, 정이품송을 공부했다. 무척 신기해하던 소나무를 그 옛날 만났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전설 속의 나무는 어떠했을까?

세조임금은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고, 피부병 걸린 임금은 온양온천에 피부병을 치료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가는 길, 세종의 한글창제와도 인연이 깊고 수양대군시절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혜각존자 신미대사를 만나려고 그 대사가 주석하는 복천사를 가길 위해 여길 지나게 되었다.

 

비록 피부병에 걸려 만사가 괴롭고, 꿈에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나 탁~ 침을 뱉은 장소에 피부병이 생기니, 조카 단종 임금에 대한 죄책감의 편린처럼 또는 자신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처럼 느껴져서 우울했을 세조임금이지만 임금이 타고 있는 연은 가지각색의 장식이 화려하여 그 높이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을 것이고, 늘어진 나뭇가지에 걸릴 듯 걸릴 듯 위태롭게 느껴지자 왕은 연 속에 앉아서 “어~ 연이 걸린다” 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이상도 하지, 나무가 왕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늘어진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사뿐히 들어올려져 임금의 어가가 지나도록 했다. 또한 한양으로 돌아갈 때는 비가 내리자, 나뭇가지를 오므려서 비를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왕은 우울한 기분을 걷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주는 그 신비로움에 들떴을 것이고, 신기한 경험은 피부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침내 왕은 자신을 알아준 생명체에 한없이 경이감(驚異感)을 느꼈고 왕이란 신분으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임금은 정이품이란 벼슬을 내렸다. 오늘날로 치면 장관급의 벼슬이다.

 

물론 조선왕조실록 같은 곳에 언급된 적이 없는 전설속의 사연이다. 아마 그 사연은 중국 진시황이 오대부 벼슬을 내린 소나무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그런 사연이 있다하여도 우리에겐 정이품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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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남쪽 가지가 부러져 처연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정이품송 보호를 위해 덧대어놓은 쇠지팡이에 의지하는

모습이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차에서 내리니 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오른손을 들어 손짓을 한다. 왼손은 처연하게도 부러져 내렸다. 가만히 다가서서 목례를 했다. 요즘 같으면 존경하는 장관이 아니면, 굳이 만나도 인사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옛날 사람보다 훨씬 벼슬 높은 나무에게 절은 당연지사가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보니 공연히 나무가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나무의 수령은 800년으로 세조 10년인 1464년 2월말에 이 길을 지났다하고, 그 때도 나뭇가지가 늘어진 것으로 보아 노송이었으니 이제는 호호 할아버지 나무이고,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받아 보호 속에 처음보다 더 큰 땅을 할애 받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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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이전, 반송의 제대로 모습을 보여주는

   정이품송..안내판속에 남아있었다>
 

오래 전, 사진속의 모습은 이등변 삼각형의 삿갓모양으로 활짝 펼친 좌우 대칭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려하기 그지없었는데, 세월 속에서 비바람 눈보라 이겨내던 그 성성하던 반송이 이제는 한쪽 몸이 부러져 정부인송의 생생함에 비하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서기는 팔백년을 지나도 꼿꼿하게 살아있다.

 

나무는 그동안 많은 수난을 당했다. 30년 전 속리산 진입로를 만들 당시, 인근도로와 높이를 맞춘다고 채워 넣은 복토층이 그동안 뿌리를 해치는 원인이 되어 나무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1980년에는 솔잎혹파리 등의 병충해로 시달리자, 방충망을 설치하여 솔잎혹파리로부터 보호 받았고, 1993년에는 강풍으로 서쪽가지가 허무하게 부러져버렸고, 늙어서인지 요즘은 더 수세가 약화되어 또 수술대에 오른다고 한다. 또 2000년대 초에는 시름시름 앓아서 사람들이 이제는 수명을 다했나 노심초사했는데, 기적같이 살아났다고 하니 사람도 저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활개를 치듯, 나무 역시 저를 알아주니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품어본다.

 

이제 상처난 부위를 도려내고 환부에 방부처리를 하여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인공수피를 씌우는 수술을 한다. 또한 복토층에 뿌리호흡을 돕기 위해 플라스틱 원형관을 넣고 배수로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말라죽은 잔가지 20여개도 제거하는 대대적인 수술이 문화재청과 보은군이 거금을 들여 올해 말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상당히 고무적인 생각이 들고 희망이 생기며, 또 한번 긴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소망을 품어본다.

 

그러나 늘 사람의 일이란 것이 자연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부여하는 생명은 과잉사랑으로 생명체를 더 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무의 입장에서 보다 세심하고 정성껏 어루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무는 14.5미터의 키와 4.7미터의 몸 둘레를 가졌으니 거구이다.

이 당당한 소나무에는 부인이 있다. 오는 길에 만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서원리에 정부인송이라 불리는 600년 된 소나무가 그의 내자인데, 수꽃을 암꽃과 만나게 하여 유전형질이 같은 후계목을 20년 전에 식재하여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

 

대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과나무 같은 경우도 지금은 그 후손나무가 명맥을 이어가면서 사람들의 눈에 최초의 사과나무 후손이라는 이름표로 남아 이전의 사과나무의 모습을 심어주기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수백 년 뒤에도 지금의 이 모습대로의 정이품송이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지만, 혹시라도 하는 걱정이 현실이 된다면, 역사 속에 존재하던 이 소나무가 후계를 통해서라도 오래 그 이름이 남겨지길 바라며, 후계나무가 더 빨리 자라고 늠름해지길 바란다.

 

송죽지절(松竹之節),송교지수(松喬之壽)란 말이 있다. 소나무는 대나무와 같이 강인한 절개를 상징하고, 인품이 뛰어나고 오래 사는 사람을 그리 일컫듯 소나무는 흔들림이 없는 긴 생명력이 소나무를 대표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니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란 확신은 들지만 맘 한 구석에 치켜드는 불안감은 이 아름다운 자태 앞에서 쓸데없는 기우라 해도 어쩔 수 없나보다. 이 나무가 주는 상징성은 우리에게 매우 큰 것이기 때문에......

 

발길을 돌리려 했으나, 눈길이 떠나질 않는다. 멀리 속리산의 정상이 빛바랜 청보라로 병풍처럼 배경이 되어주고, 옆자리 낮은 야산은 나지막한 소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어 진초록의 병풍이 되어준다.

 

정이품송은 사계절을 품고 있다. 이파리는 파릇하여 봄.여름의 싱그러움이 남아있고, 윗가지는 특유의 짙은 황토갈색으로 가을이 느껴지며, 가지의 절묘한 황토갈빛이 이파리와 보색대비를 이루어 그림을 감상할 때 보색을 사용하면 더 세련된 모습으로 느껴지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나무는 아래로 갈수록 흑갈빛 색감이 점점 짙어지다가 땅과 맞닿은 부분은 거의 잿빛이라 그 속에는 겨울이 느껴진다. 이렇게 정이품송은 사계를 한 몸에 품고 있으니 작은 우주에 비유하면 어떨까? 그렇게 사계를 담은 강한 생명력은 오늘도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추운 바람 속에 서있다.

 

껴입은 외투가 춥다. 팔을 엇갈리게 잡고 내 몸을 스스로 감싸 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본다.

 

문득 겨울나무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동요속의 겨울나무는 찾는 이가 없지만,

오늘도 이 벼슬 높은 나무를 찾아주는 사람은 많다.

관광버스 한대가 옆에 서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내려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잊혀진 추억의 한 귀퉁이에서 오래 전 이 곳이 배경이 된 나의 사진 한 컷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