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내 마음 속 신앙 왕소나무 신목을 찾아서

이산저산구름 2010. 3. 23. 08:56

 

내 마음 속 신앙 왕소나무 신목을 찾아서 

                                               
           김 향 민


 가끔 마음이 동할 때 어디론가 일상에서 복잡했던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려고 잠시 떠날 때가 있다. 그 누구에게도 풀어 놓을 수 없는 가슴을 후련하게 비워낼 수 있는 곳이 내 마음의 믿음을 주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든든한 자연 숭앙의 굳은 힘을 주는 神木이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일 년에 두어 번쯤 찾아가 가슴의 답답함을 토해 내는 곳이요. 힘을 얻는 곳이다. 이미 겨울로 들어선 해가 짧아진 오후 3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지만 괴산 청천면 삼송리 왕소나무을 찾아 떠났다.

 

 망설였던 조금 전 집에서와는 달리 시내를 벗어나니 가슴에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탁했던 가슴을 열어준다. "그래 집에서 가슴 졸이고 답답해하며 망설이지 말고 진작 떠났어야하는데" 라며 달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산과 들의 풍광들에 의해 이미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 찾아가고 있는 곳은 삼송리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신목으로 삼고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했던 수령이 600백년이 넘은 왕소나무다. 온 몸을 힘 있게 꼬아 용트림하며 하늘로 비상하는 삼송리 왕소나무을 보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미원을 지나고 청천면으로 차를 꺾어 도니 화양동 이정표가 시야로 들어온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는데도 떠날 때 늦을까 조급해했던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높다란 어두운 산 그림자가 달리는 도로를 덥고 있지만 ,왕소나무을 향한 믿음 때문인지 어스름 해지는 저녁이 가까워오는데도 두렵지 않다.

 

 들녘은 엊그제까지 황금물결을 이루던 곡식들이 부지런한 농부들의 손에 거두어지고 황량함마저 느껴진다. 가끔 드문드문 실하게 자라지 못해 주인 농부의 손에 뽑히지 못하고 남아있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 배추들이 힘없이 쳐져 그나마 황량한 밭들의 조금 남은 부분이 농부들의 고단하고 수고한 일상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부지런히 달리니 어느덧 옛부터 소나무가 많아 솔맹이.솔뫼라는 송면리 마을 다리를 지나친다. 문득 얼마 전 이곳에 수령이 100년 넘은 소나무 연리지가 발견된 되어 화제가 되었다가 많은 사람들이 찾다보니 죽어가고 있어 보호수에서 해제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던 곳을 지나면서 잠시 차를 세웠다.

 

 멀리서 연리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연리지가 발견되고 그 후 많은 사람들 찾아오고 바로 옆에는 식당과 집이 새로이 지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차라리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자연스레 자라고 있을 것을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황폐한 땅에 맨 처음 정착해서 토양을 안정시키는 수종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바로 소나무로 민족의 암흑기 일제시대 때도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던 나무로 그 험한 세월을 뚫고 지내왔던 소나무가 지구 온난화로 한 해에만 100만 그루가 말라 죽는다고 하는데 연리지 소나무가 고사하면서 우리에게 소나무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서나 보는 것처럼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시야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 어느덧 삼송리 왕소나무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지난봄 신문에서 왕소나무을 보호해주던 함께 자라던 주변의 소나무 세 그루를 잘라냈다는 마음 아픈 소식을 접하고도 찾지 못해 안타까워했었는데 이기적인 사람은 오늘 내 마음이 답답하여 힘을 얻고자 찾았다.
 

 천연기념물 290호로 수령이 6백년이 넘은 가슴둘레가 4.91m의 거대한 왕소나무는 삼송리 마을을 지켜주는듯 마을 위쪽에서 삼송리 마을을 보호하듯 자리하고 있다. 왕소나무를 중심으로 오순도순 대가족이 화목하게 자라는 소나무 군락을 보는 모습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왕소나무는 이 지역사회 주민의 정신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으로 그곳의 역사를 줄 기속 나이테에 담아놓은 천연기념물이요. 고귀한 문화재다. 용트림하며 힘차게 비상하는 왕소나무을 보니, 그숱한 세상 온갖 풍상을 다 이겨냈기에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 보이고 자랑스럽다. 줄기차게 비상하는 왕소나무를 보니 세상의 어떤 두려움과 어려움도 이겨낼 것 같다.

 

 수 백 년의 풍상을 겪어온 가슴 아픈 상징으로 남은 가슴패인 소나무의 심장을 시멘트로 땜질을 했지만 기세가 아직 당당하다. 이런 왕소나무을 보면 누구라도 살아있는 문화재라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전에 문화재 답사때 다녀온 단종의 유배시 설화를 간직한 한이 서린 영월의 청령 포에서 본 거목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단종의 유배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진, 청령포의 관음송을 보았을 때는 수령이 6백년에 30m에 달하는 거목이지만 마음이 아파 쓰리게 보았었다.

 

 언제인가 답사를 갔을 때 누군가 그랬다.

"수백 년을 지켜온 거목들은 살아있는 문화재다" 라고...삼송리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초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동제 (洞祭)를 지내며 새해의 안녕으로 풍작(豊作)과 행운(幸運)을 기원했던 삼송리 마을을 지켜주는 왕소나무와 일전에 마음 아파하며 다녀왔던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관음송과 이곳 삼송리 왕소나무는 6백여 년의 세월의 역사를 지켜보고 살아온 살아있는 역사요. 문화재다.

 

 이미 태양은 서녘으로 기우러졌지만 알싸한 공기와 함께 소나무 군락에서 퍼져나오는 향긋한 피톤치드 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자극한다. 삼송리 왕소나무 주변은 우리나라 소나무의 대표 격으로 잘 알려진 1464년 세조가 속리산 정이품송 소나무 아래를 지날 때 가지를 스스로 쳐들어 그행차을 도왔다 고해서 '정이품송이란 벼슬을 내려주었다는" 속리산 자락 뒤편 문장대를 바라보고 있다. 유난히도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곳으로 지난 추석 무렵에 kg당 1백만 원이 넘었다는 자연산 송이 버섯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같이 하는 소나무로 사람이 태어날 때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았고, 우리민족의 나무로 또한 묘지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묘지를 보호하고 죽은 자의 영혼과 명복을 빌고 이승의 일에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는 기원을 담아 왕릉 둘레에 도래솔로 소나무를 심었다 고한다.

 

 도래솔은 일반서민의 묘에도 조상을 공경하는 덕목으로 소나무를 심는 도래솔을 가로막는 풍속은 없었으며, 도래솔은 심은 묘소의 영역은 사유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나무는 사계절 푸르고 오래 사는 십장생으로, 김정희의 '세한도와 18세기 김홍도의 선인송하취생도(仙人松下 吹笙圖)와 신윤복의 송정아회(松亭雅會)등등 소나무는 다양한 곳에서 우리민족의 함께하고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다.

 

 꿈틀거리며 비상하는 왕소나무을 어루만져 보기도하고 주변에 상생하는 소나무들에게도 미소로 인사를 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고 11월의 이른 겨울 칼바람이 돌아 갈 길을 재촉한다. 다시 한 번 믿음직한 왕소나무와 그들 군락에 영원토록 건강하게 살아있는 문화재로 영원히 남아달라고 작별인사을 했다. 지금까지 온갖 풍상을 지키며 꿋꿋하고 용감하게 지켜왔듯이 힘차게 비상하라고~~~

 

 사랑하고 아끼리라 ~~ 왕소나무여 ~~보고 싶어도 너무 자주 찾지 않으리라.

건강하고 오래도록 씩씩하게 자라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주민의 고달픈 삶의 애환도 들어주고 안녕과 풍요, 그리고 그곳의 역사를 나이테에 아름답게 수놓아 주기를 바라며 장수하기를 빌며 어둑해지는 왕소나무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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