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괴산 김기응가옥을 찾아

이산저산구름 2010. 1. 20. 00:32

괴산 김기응가옥을 찾아 

                                       안금자

 
기후온난화로 인하여 봄을 만끽 할 사이도 없이 초여름 기온의 날씨는 화창하지만 답사 가기에는 한낮의 더위와 자외선 때문에 모자와 양산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오늘은 괴산지역 향교와 홍범식고택을 둘러 우리나라 고가옥의 대표라 부를 만큼 고가의 배치나 형식 등 평지에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괴산군 율원리에 있는 중요민속 자료136호 김기응가옥을 답사지로 결정하고 일행들과 떠났다.


즐거운 여정을 떠나는 길손을 축하하듯 차창 밖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아카시아 향기가 달리는 창틈으로 스며 들어왔다. 꼭 찾아보고 싶었던 고가중에 하나였던 김기응 가옥은 평소 많은 사람들이 옛 고가중에 으뜸이라고 고건축 전문 향토사학자들에게 익히 들어서 늘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한곳이었다.


괴산을 향하여 달리는 차도 주변 산천에는 푸르른 신록으로 산과들이 아름다운 풍광으로 수채화로 붓질해 놓고 있었으며, 아카시아 향기에 취했는지 차도를 넘나드는 이름 모를 새들도 소프라노 톤으로 향기를 머금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몇 해 전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단축된 거리는 생각보다 이른 도착이 예상되었다. 괴산읍을 지나 괴강을 휘감아 도는 칠성면 김기응 고가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율원리 동네는 아늑하고 조용해서 혹여 잠자는 아기가 깰까봐 살금살금 숨소리 죽이며 조심해야하는 평화로운 마을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미선나무 자생지라는 큰 입석이 다른 마을과는 달리 무엇인가 율원리 마을만의 귀하고 독특함을 지닌 마을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선나무 자생지라는 입석 우측 마을길로 들어가니 괴산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집터 앞에 넓은 들이 펼쳐져있어 조망이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마을 앞에는 마을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군자산의 넓고 듬직한 산봉우리가 이 마을이 그저 평범한 농촌이 아니라는 듯 마을 전체를 보호하며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꼭 찾고 싶었던 김기응 고가에 도착하니 동안 답사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사대부의 솟을대문처럼 기세등등하게 큰 위엄이 있게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고택의 주인이 자애로움과 인정이 넘쳐나는 기품이 있는 주인이었을 거라는 품격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솟을 대문에서 들어가면 정겨운 모습의 담장속의 중간채 모습>  


김기응 고택 뒷산에는 약간 높은 평지에 가까운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나무가 울창하지는 안았지만 적당히 집 뒷산으로 하여금 김기응 고택을 한 품격 높여주고 있었다. 언젠가 고건축가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집을 뒤로 뒷산의 나무를 잘 보존한 것은 풍수적 의미가 강하며 , 집의 풍수적 환경을 보전하고자 뒷산을 의미가 있는 곳으로 나무를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김기응 고택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잘 배치돼 있고 , 대지가 평지인 듯 하면서 평지가 아닌 뒷동산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전체적으로 평안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대문 안에 들어서니 종부가 마당에서 우리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데 들어오란다. 종부의 안색을 살피니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답사 객들에게 이제는 두 손 들고 "당신들 맘대로 들어오던지 말든지 해라"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못 들어오게 한다고 안 들어 올 사람들 아니니 차라리 어서 들어오라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그런 종부의 얼굴을 살피니 갑자기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도때도없이 찾아오는 답사 객들 때문에 사생활에 많은 침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만 했다. 일단 말보다는 거의 눈 표정으로 들어오라는 종부의 말에 솟을 대문에 들어서니 다른 고가와는 달리 다층 구조로 사랑채 옆의 중문과 안 행랑채에 있는 문을 지나야만 안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옥의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앞에서부터 대문채와 행랑채·사랑채·안채가 순서대로 배치되었고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길게 늘어선 행랑채는 좌우가 ㄱ 자로 꺾여 둘러싸고 있는데 마구간·곳간·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른 고가보다 가옥구조가 좀 복잡했다. 함께한 문화원장님의 말씀에 가옥이 복잡한 이유는 조선 후기에 들어 심화된 남녀유별의 닫힌 생활을 반영한 것이란다.

안채로 들어가는 미로와 같은 동선의 비밀스러움, 그리고 그 비밀을 재미하게 풀어주는 여러 문과 작은 마당에서 전통의 우리 한옥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과 비밀을 풀어가는 미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마당을 연결하는 비밀문같은 다양함과 각 마당의 독특한 특징은 다른 주택에서 느끼는 건물의 화려함과 비교되었고 조선후기의 또 다른 고가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
바깥마당 광채로 광의 크기가 꽤나 크다>


                
<
사랑채에서 바라다볼수 있게한 광채 벽의 아름다운 겹곡무늬>
 
건물 사이에는 내담을 쌓아 공간을 구분을 하였고 크고 작은 공간들이 여러 대문들과 연결되어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미로 같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니 사랑채 뒤편이 보였다. 그곳에서 보니 안채와 행랑채의 간격이 넓지 않아 답답했다. 독특한 것은 사랑채에서 마주 보이는 행랑채 담을 민가에서 흔히 보지 않던 꽃담으로 보기 드물게 아름다웠다.

드디어 가장 안쪽인 여자들만이 사는 안채로 들어가니 부드럽고 친밀한 안채가 눈에 들어왔다. 아녀자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던 부엌, 그리고 늘 윤이 나도록 닦았을 대청마루를 보니 여인들의 버선발이 떠올랐다.


      
<
중요민속자료136호 괴산 김기응 가옥 안채로 부녀자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사뿐 사뿐 거닐던 아녀자들 모습과 담장 밖의 출입을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을 다듬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답답한 심정을 달랬을 생각을 하니 옛 여인들의 고단한 일상이 떠올랐다.

 문화원장님은 안채의 대청마루에 걸터앉으시며 앞의 광채 용마루 위를 가리키셨다. 바깥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아녀자들이 용마루 앞에 보이는 괴산의 명산 군자산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털어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문득 원장님이 아침에 들렀던 홍범식고택에서 안채가 훤히 트여 앞이 보이면 아녀자가 바깥이 궁금하여 바람이 난다는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여자도 사람인데 어찌하여 문밖의 세상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대청마루에 앉아보니 약간의 경사 때문에 집 안 가득 햇볕이 골고루 들어오고 있었다. 따듯하고 화목한 온기가 가득 스민 안채에서 나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 나오며 사랑채를 보니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과 비학루(飛鶴樓)라는 편액 보였다. 혹여 틀릴까 문화원장님께 여쭤보니 물고기가 바다 가운데에서 뛰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란다. 인재가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펴는 모습을 의미한다.


김기응고가는 은은한 향기가 곳곳에 배여 있는 곳으로 가옥의 배치를 보면, 앞에서부터 대문채와 행랑채·사랑채·안채가 순서대로 배치되었으며,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길게 늘어선 행랑채는 좌우가 ㄱ자로 꺾여 바깥마당을 둘러싸고 있는데 마구간·곳간·부엌 등이 배치되었고, 다른 고가보다는 신비스럽게 찾아가야하는 미로 같은 곳이 많았다. 또한 뒤꼍 정원에는 갖가지 꽃들을 심어 고가의 아름다운 심성을 나타내 주듯 함박꽃,난초등 꽃향기가 담밖으로 굴뚝의 연기타고 온 동네 꽃향기로 쫙 ~ 깔아주는듯 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김기응 고가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서 바라다 뵈는 건너 산 아래 밭에 함박꽃밭 단지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것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끝을 모르게 김기응고가의 아름다움과 배치, 동선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문화원장님의 말씀에 크게 위엄 있지 않은 듯 하면서도 좀 구조가 복잡하다 싶을 정도인 이 고가를 그토록 아름답게 찬사하는 이유를 답사를 거의 마치면서 깨 닳게 되었다.

평범한듯하면서도 내면에 기품이 있고 각기 거주하는 주인에 따라 알맞도록 건축에 소소한 곳까지 세밀하게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크고 위엄 있게 보이는 고가보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이곳에 거주하는 곳의 주인들의 세심함을 배려해 지은 인정과 화목함을 가득 담고 있는 편안한 집이야" 이것이 내가 김기응 고가에서 얻은 답사 결과였다.

 이번 고가답사에서 고가로부터 품겨 나오는 옛 조상들의 슬기와 화목, 안정감, 평화스러움이 가득 배어났다. 하루쯤 이곳에서 아녀자로 살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줄곧 이곳을 지키며 살고 있는 종부는 끝까지 우리가 가는대로 따라다니기에 그동안 방문했던 분들이 어떤 모습을 남겼기에 경계하는 모습으로 끝까지 따라다니며 함께 하시는 걸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기응 고가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종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고가를 나왔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김기응 고가 답사에서 우리 고건축미의 아름다움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구보존 방법과 더욱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우리민족 가옥의 전통미를 배우고 깨 닳는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깊이 심는 뜻 깊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