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

나무를 만나러 길을 나서다 물푸레나무

이산저산구름 2009. 10. 13. 15:21

나무를 만나러 길을 나서다 물푸레나무




나무가 있는 풍경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이었다. 어제도 나무들은 온몸으로 폭우를 홀로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비탈진 면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매일 나무를 찾아 길을 나서는 그.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온 다음날 쏟아지는 맑은 햇살을 맞으며 나무를 찾아 나선다. 새로운 나무를 찾아 나서는 길은 정해지지 않았다. 가다가 길을 잃어도 좋고, 길이 없는 곳을 그저 홀로 가도 좋다. 길이 있는 풍경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으므로 그는 그저 행복할 뿐이다.

이미 알고 지낸 노거수들을 찾아 가는 길은 정든 고향을 방문하듯 애틋함이 가득하다. 오래된 나무들이 있는 풍경엔 오래된 사람들의 숨소리가 남아있다. 그는 노거수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졌던 그 때를 상상해보곤 한다. 집 앞 오래된 감나무 아래 대청마루 위에서 할아버지가 풀어 놓으시는 이야기보따리에 귀를 쫑긋 세운 어린 아이처럼 노거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의 행복이다.

“노거수는 저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예요. 아직 밝은 눈으로 나무를 볼 수 있는 것, 튼튼한 다리로 나무를 찾아다닐 수 있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나무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조금은 생소한 ‘나무칼럼니스트’. 그가 사는 방식은 조금 더 다르다. 그는 세상에 온갖 일과 사람들 속에 묻혀 하루하루를 분주히 사는 도시인들에게 그들 주변에, 이 세상에 ‘나무’도 함께 살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사람처럼 직립한 생명체인 나무. 사람과 나무가 마주 대할 때 비로소 생각이라는 것이 나왔다는 말처럼 그는 나무와 마주대할 때면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어쩌면 나무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제 말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여기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 한 사람이 있다.

화성 물푸레나무

그가 화성 물푸레나무를 처음 만났던 때는 2002년이었다. 물푸레나무 여행을 시작해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파주 무건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86호로 지정되어있는 물푸레나무가 있었는데 물푸레나무로서는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고 당시로서는 연수도 가장 오래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보다, 더 오래 살고 더 큰 나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물푸레나무만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여행 중에 드디어 만났던 나무. 우거진 풀숲 사이로 꽁꽁 숨겨져 있던 물푸레나무를 찾은 일은 진귀한 보물 그 이상을 발견한 것 같은 환희가 있었다.

“화성 물푸레나무를 보자마자, ‘다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기존의 물푸레나무와는 다른 남성적이고 근육질적인 모습. 이것이 진정 우리나라의 물푸레나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약 350년의 세월을 같은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물푸레나무. 그 나무는 한국전쟁 이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각종 제사를 지냈던 신앙의 중심에 있었던 나무였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마을 사람들은 흩어졌고 이전의 마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물푸레나무는 그저 억세게 우거진 숲 가운데 방치되고 말았다.

“나무를 볼 때 나무의 줄기를 봐요. 사람들은 이 나무를 왜 심었을까. 나무줄기 앞에 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냈던 모습들을 떠올려 봐요. 노거수를 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역사를 본다는 이야기와도 같아요.”

우리네 품성을 닮은 강인한 물푸레나무를 만난 것은 어쩌면 나무와 오랜 시간을 보낸 그에게 나무들이 보내준 어떤 강한 이끌림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는 화성 물푸레나무를 발견하고는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물푸레나무이기에 당연한 생각이었다. 새로운 것만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고 그것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그. 그의 노력은 오랜 시간 끝에 결실을 맺었다. 화성의 물푸레나무가 2006년 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이 되었던 것이다.

“나무를 만나면서 나무가 주는 행복만을 받았어요.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된 것은 제가 나무에게 받은 행복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거였죠.”

그는 이제 화성의 물푸레나무 앞에 서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버려졌던 우직한 나무가 굳었던 얼굴을 펴고 자신 앞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맨 처음엔 고규홍의 물푸레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를 위한 물푸레나무가 되어 물푸레나무와 그에게 더 행복한 일이 되었다.



또다시 나무를 찾아서 
 “도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가 그 생명을 위협 받고 있어요. 화재에도 원자폭탄에도 견뎠던 그 강한 은행나무가 도시의 매연과 자신의 아래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들은 견디기 힘들어 하죠. 은행나무도 견디지 못한 세상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정말 끔찍한 곳이에요.”

그가 나무를 찾는 이유는 나무가 잘 사는 곳에서 우리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무가 온갖 비, 바람, 폭풍 등의 고통스러운 것들을 견뎠기에 푸르른 아름다움이 있는 것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모진 세월을 겪고도 우리 곁에 여전히 있어주는 나무를 찾아 오늘도, 내일도 길을 나선다.  

 
글·김진희  
사진·최재만, 고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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