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아이는 그 믿음을 갖고 긴 세월 굳건하게 살아간다

이산저산구름 2009. 4. 13. 20:29

 

아이는 그 믿음을 갖고 긴 세월 굳건하게 살아간다

 


“나는 열일곱 살.

미리 말해두는데, 난 공부를 못해.

하지만 세상에는 그것보다 멋지고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해.”

나는 공부를 못해 / 야마다 에이미


토끼와 거북이를 육지에서 한 번만 경주를 시키고

토끼를 자만과 태만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하거나

거북이를 근면과 겸손을 상징하는 동물로 간주하면 안 된다.

바다에서 경주를 시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어떤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은

거의가 이런 모순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이 그대를 과소평가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 유일의 존재다.
...
인간은 '알았다'에 의해서 어리석어지고

'느꼈다'에 의해서 성숙해지며

'깨우쳤다'에 의해서 자비로워진다.

그런데도 제도적 교육은  죽어라 하고 '알았다'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한다

이외수 / 하악하악 中 에서



한국학교의 교실에선 '등수'의 위계질서가

말 그대로 모든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반이 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문화자본을 상당히 물려받은 데다

적응력이 뛰어난 쪽은 '우승자' 라는 의식을 키우고

그렇지 못한 쪽은 '뒤처진 자' 라는 자괴감을 안고 사는 걸 연습한다.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사회적 범죄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평등지향성을 이런 수법으로 일찍부터 깔아뭉개고

성적이라는 자본을 열심히 축적하는 '작은 자본가' 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 집의 평수를 따지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화 과정은 아이를 너무 일찍 거세시키고,

결국 순응주의적 현실에 안주하여 뭔가 '다른' 것을 상상조차 못하게 만든다.

이런 성장 과정에도 굴하지 않고 '인간' 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영웅이다!

박노자의 만감일기 / 등수없는 학교의 추억 중에서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은 ‘거리 두기’이다.

무조건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강조하는 사람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토론도 불가능하다.

자기가 교장이기 때문에, 아니면 십대를 겪었기 때문에

십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십대가 있을 뿐이지

실제 눈앞에서 행동하고 변화하는 십대가 없다.

한 집단을 이해하려면 그들에게 짜여진 질문서를 들이밀기 전에

어떤 질문이 그들에게 말이 되는 질문인지를 파악해 내야 한다.

상대주의의 안경을 끼고 관찰을 하고,

상대의 신발을 신어 보려는 노력 속에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란 결코 ‘훈계’와는 다르다.

일단 청소년들을 ‘미성숙하고 관리해야만 할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이해 못하겠다”는 어른들의 투덜거림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 조한혜정


유교에서 공부란 우주의 근본을 생각"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거창할 필요도 없다

공부는 좋은 시민이 되기위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어떤 종류의 강압도 통하지 않는,

의견과 의견이 부딪히는 사회다.

"나만 옳다" 독단에 빠져 상대방의 개념과 논리에 귀를 닫고  있으면

민주주의는 기만과 독선에 병들게 된다.

무엇보다도 개념과 논리를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모르면 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서로 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장정일 / 공부중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좋은 엄마 노릇은

돈이나 학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

언제나 자녀를 위해 두 팔 벌려 기다리는 것,

그런 엄마가 곁에 있으면

아이는 그 믿음을 갖고 긴 세월 굳건하게 살아간다.

처음 그 믿음을 오래 간직하며....

엄마학교 / 서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