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꿈결처럼 은은한 빛깔을 간직한 사찰, 봉정사 대웅전

이산저산구름 2009. 3. 17. 12:47

꿈결처럼 은은한 빛깔을 간직한 사찰, 봉정사 대웅전

                                              김경리


나는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홀로 떠났던 그 답사의 여정을 잊을 수가 없다. 혼자 떠나보는 답사는 처음이었기에 특별히 기억에 남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래도록 머무르며 바라본 그 곳의 정경들이 마치 그리운 시골집을 떠올릴 때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며 이따금씩 생각나기 때문이다.

봉정사를 찾은 것은 올 봄. 청주에서 봉정사가 위치한 경상북도의 안동까지 나 홀로 길을 떠나게 된 것은 사찰 단청을 조사하는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이들은 홀로 떠나는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나는 작은 우리 동네에서도 길을 잃어버릴 정도의 지독한 길치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낯선 곳을 혼자 찾아갈 때면 불안하고 겁이 난다. 안동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내 마음은 내내 불안했지만 안동 읍내에서 봉정사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장에서 봉정사로 가는 버스가 바로 있었다. 버스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아 인근 초등학교의 벤치에 앉아 가방에 싸간 김밥을 먹으며 봉정사에 대한 자료를 여유롭게 읽었다. 아, 햇살도 좋고, 바람도 불고. 봉정사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봉정사는 현재 남아있는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연대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극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업시간에도 봉정사의 주불전인 대웅전보다는 극락전의 시대적 특징과 가구구조를 중시하여 공부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장 만나기를 기대한 것은 조금은 생소한, 그래서 궁금하기도 한 봉정사 대웅전이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버스는 한참이나 들어갔다. 예전에는 포장조차 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이어서 답사 가는 이들이나 절을 찾는 불교 신자들이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나는 고생을 해도 그런 길이 답사지에 좋은 추억거리를 남겨줄 거라는 이상한 기대심리 때문에 그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도심에 가까워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찰보다는 산 속 깊숙이 있어 조금 헤매야 만날 수 있는 사찰, 평지 위에 지어진 평지가람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오르는 재미가 있는 산지가람이 좋다.

봉정사는 규모가 큰 산지가람은 아니었지만 안동시내에서 꽤 오래 들어간 산자락에 위치하였고 무엇보다 일주문을 들어서 숲길을 따라 주욱 걸어 오르는 느낌이 참 좋았다. 양옆의 길가로 들어선 그 푸르른 나무들이 뭔가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조금 숨이 차오를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나의 눈앞에 덕휘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진입한 방향의 서쪽에 위치하여 동선의 변화를 유도하며 사찰로 들어서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잡게 한다. 그리고 루를 살짝 가린 나뭇가지. 그것은 마치 어서 계단을 올라 들어오라는 손짓 같다.

아!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구나.

루를 오르며 양쪽으로 달린 색색깔의 연등과 '우리도 부처님 같이'라고 크게 쓰여진 현수막을 보고 그제야 사찰에 사람이 북적북적한 이유를 알아챘다. 덕휘루의 상부에 장식해 놓은 전구들은 부처님을 맞이하며 환히 밝혀놓은 마음들일까. 노란 전구 불빛들에 둘러싸인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의 네 가지 법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에는 스님과 보살들이 연등을 다느라 한참 분주한 중이다. 오늘따라 절을 찾은 이들도 많아 경내는 마치 축제장처럼 왁자지껄하다. 그 틈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봉정사 대웅전. 나는 연꽃 틈사이로 보이는 대웅전을 향하여 조심스레 다가갔다.

<사진1> 봉정사 대웅전 정면부의 단청.
사진에 보이는 부재는 부연과 부연개판이다.
2003년도에 새로 칠한 것이지만 오래되어 퇴색된 듯한
고색으로 단청하여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가 대웅전의 처마를 올려다보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우와-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올려다본 대웅전 서까래의 단청은 보수하면서 새로 칠한 단청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색이 진하지도, 퇴색되어 보이지도 않는 것이 불전의 전체적인 조화를 헤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었다. 그 자연스러운 빛깔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자니 대웅전의 단청이 한국단청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것이 꼭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단청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마부에 비해 그 아래 부재부분은 단청이 많이 탈락되어 문양이 매우 흐릿하게 보이는 상태여서 조금 아쉬웠는데 새로 칠한 부분과 커다란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서까래와 부연의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빛깔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청을 공부하지 않은 이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사찰에 온 어린 아이일지라도 누구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외부의 단청은 자연스럽고 꾸밈없이 아름다웠다. 나는 마루를 몇 번이나 오가며 처마를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았다.

<사진2>봉정사 대웅전 처마를 올려다 본 모습.
대웅전 정면의 단청문양과 측면의 단청문양이

다르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정면의 단청문양이 더 섬세하고 화려하다.


불전의 내부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서서 가볍게 예를 갖추고 그 자리에 서서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내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향할수록, 바깥 기둥에서 부처가 앉은 불단의 양 옆으로 향할수록 단청은 화려해졌다. 아니, 단순히 화려라고 하기보단 장엄莊嚴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쏟아져 내릴 듯이 수많은 꽃들이 보였는데 그 꽃 속에는 여섯 자의 알 수 없는 범어가 쓰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옴마니반메홈'이라는 불경구절로 '우주의 지혜와 자비가 우리의 마음에게 퍼진다'라는 축언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신 후 가부좌를 맺으시고 무량의처 삼매에 드시니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셨다. 이때 하늘이 만다라꽃과 마하만다라꽃과 만수사꽃과 마하만수사꽃을 비오듯이 내리어 부처님과 모든 대중에게 흩날렸다.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글귀 중 일부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마치고 삼매에 들었을 때 하늘에서 축복의 꽃비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사실 그 의미를 몰랐을 적엔 불전의 화려한 우물천장이 그저 종교적인 장엄을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을 뿐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나도 그 축복의 꽃비를 맞으며 일종의 감흥을 느낀다. 천장의 연잎들이 금방이라도 살아나와 나의 어깨 위로 톡!하고 떨어질 것만 같다.
대웅전 건물만 보았을 뿐인데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내부를 둘러보고 마루에 나와 보니 어느새 대웅전 앞마당에는 선홍빛의 연등이 한 가득이다. 나는 극락전과 고금당, 산신각을 서둘러 한 번 둘러보고는 덕휘루에 걸터앉아 남은 시간 동안 봉정사의 정경들을 바라보았다. 연등 위로 보이는 처마와 푸른 봄 하늘이 아름답다.

사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답사를 가면 어느 건물이든 그것이 몇 칸짜리이고 주심포인지 다포계인지 건물의 양식을 버릇처럼 따지게 되곤 한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답사를 가면 갈수록 깨닫게 되는 사실은 건물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겉모습보단 내면을 보아야 진정한 참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찰건물은 가람배치나 단청, 불상과 벽화, 탱화 등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읽어낼 때 그것을 비로소 이해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되도록 처음 가는 사찰에서는 양식을 보지 않고 공간적인 느낌이나 이야기들을 먼저 읽어보고자 한다. 이번 봉정사 답사는 대웅전의 단청양식을 보는 데에 치중하느라 전체를 넓게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속에서 감흥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진 답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덕휘루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길. 나는 한 번 더 뒤를 돌아 봉정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늦가을의 파란 하늘이 펼쳐진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꿈의 잔상처럼 은은하게 떠오르는 대웅전의 단청색.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 봉정사는 또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사진3> 봉정사 대웅전의 정면 모습.
<사진4> 연등과 푸른 봄하늘의 빛깔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