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절집이라 불리우는 전남 승주 조계산 아래 선암사 (仙巖寺)
특히 봄이 아름답다는 선암사에는 선암매(仙巖梅)라 불리우는 수백년 넘은 古梅花가 있다해서 때맞춰 다녀왔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선암사라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을 가진 선암사는 백제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창건하였으며 잦은 화재때문에 사찰명을 해천사(海川寺)라하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이라 하였다가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선암사는 (승려들이 결혼할 수 있는) 태고종의 총본산이며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이다.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이 참선수행하는 禪院과 교육기관인 講院, 계율전문교육기관인 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조계종에 5대 총림(조계, 영축, 가야, 덕숭, 고불총림)이 있고, 태고종에 태고총림이 있다고 한다.
선암사로 들어가노라면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흙길을 걸어 들어가게 되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건 우측의 부도밭이다.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줄지어 서있는데 대부분의 부도는 원형(구형)을 받치고 있는 비슷한 모양이나 유독 화산대사 부도는 사자 4마리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모양이라서 눈길을 끌고 있으며, 그 옆에 선 비석 하나는 19세기 큰스님으로 추앙받던 상월스님의 부도인데 그것만 비뚤어지게 세워져 있는 바, 후학들을 사랑했던 상월스님을 기려 제자를 가르치던 강원(講院)을 향해 부도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산대사 부도와 상월스님 비석...>

부도탑을 지나면 왼쪽계곡에 걸려있는 아치형 돌다리...
국내에서 가장 예쁜 돌다리라고 평가받는 보물 400호 승선교(昇仙橋)를 만나게 된다.
선암사는 이 승선교가 너무 유명하지만 사실은 절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노라면 이 다리를 건널 일이 없다.
(예전에는 모르지만) 지금은 계곡 오른쪽으로 진입로가 잘 나있고 승선교를 건너려면 일부러 계곡을 건너 갔다가 다시 건너와야 하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탐방객은 역시 아치형 다리로 놓여진 아랫쪽 다리를 건너서 최근 수리복구를 끝내 깔끔해진 승선교를 밟아 건너거나, 다리 아래로 내려가 냇물에서 승선교의 아치형 사이로 뒷편의 강선루(강선루)까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승선교는 1713년 호암화상이 6년 만에 완공하였는데 기저부가 자연암반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며, 홍예(虹預)는 하단부부터 곡선인 반원형으로, 승선교가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그 원형 안에 뒷편의 강선루가 자리하고 있어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다리이다.
<승선교... 아치 사이로 보이는 강선루....>

<승선교 홍예석 중간 아래에는 龍頭가 박혀있어 신비롭다... 9번째 용, 즉 九龍이라고 한다>

승선교 바로 지나 있는 강선루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에서 흘러와 큰 개울과 합쳐지는 작은 시냇물위에 다리가 놓여져 있고, 그 위로 2층 누각을 세운 특이한 형태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작은 다리도 선원교(仙源橋)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다.
<선원교 위에 서 있는 2층 누각.... 강선루>

승선교와 강선루의 아름다움에 취해 절집으로 들어서다보면 타원형의 둥근 연못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삼인당(三印塘)이다.
신라 862년(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하며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의 삼법인으로서 불교 사상을 나타낸 것이며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삼인당 연못...>

<연못가에 세워진 석상하나... 원숭이 얼굴이 보인다.>

삼인당 연못을 지나면 오르막 계단이 시작되는데 그 초입에 일주문이 서 있고 일주문 안쪽에 걸린 현판 기록에서는 산 이름을 청량산, 절 이름을 해천사로 바꾸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일주문 가기 직전 왼쪽 숲속에는 풀에 가려 잘 안보이는 下馬碑가 있는데 무심코 지나면 놓치기 쉽다.
<하마비....>

<일주문.... 문옆에 담장이 이어진것도 특이하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곧장 범종루로 이어지며 일주문과 종루 사이에 통상 배치되는 천왕문, 금강문, 인왕문 등이 없다.
이는 선암사의 3無에 기인하는데, 첫째는 조계산 주봉이 장군봉인데 장군이 지켜주므로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하며, 둘째는 사찰 대웅전 기둥마다 명언절귀를 적어놓은 주련(柱聯)이 없는데 이는 깨달으면 말이 필요없고, 굳이 입을 열어봐야 틀리기때문이라고 한다.
세번째는 대웅전 가운데 문인 어간문(御間門)이 없는데 다른 절은 주지나 원로스님등의 특별한 사람이 출입토록 하지만 선암사에서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통과할수 있기에 아예 안 만들었다고한다.
절집 안으로 들어서면 대웅전 앞 마당에 2개의 석탑이 보인다.
보물 제395호인 선암사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에 동쪽과 서쪽에 서 있는데 둘 다 4.3m이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아마도 같은 시기에 같은 사람의 솜씨로 세워 진 듯 하다.
<3층 석탑....>

<대웅전 앞마당에는 다소 불규칙한 배치로 당간지주 3짝이 박혀 있다.....>

이 대웅전 현판은 조선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했던 안동 김씨 김조순이 친필로 써주었다고 하는데 대웅전이라는 글씨 앞에 '김조순 書'라는 두인(頭印;글씨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있다는데 원래 두인은 임금만이 할 수 있는데 김조순이 했다는 것은 당시 김조순의 세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선암사 고매화를 보고픈 발길은 대웅전을 세세히 둘러볼 새도 없이 발길을 재촉해 절 뒷편의 마지막 건물쯤 되는 무우전과 각황전의 돌담길로 향하였으니, 작년에도 찾아 왔었으나 때를 놓쳐 이미 매화는 지고 화사한 벚꽃만 보고 갔던 필자로서는 올해는 기필코 매화를 보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다행이 올해는 제대로 찾아온 듯... 각황전 돌담장길에는 고고한 기품의 고매화가 가득 피어 길손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른 봄이면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양의 매화마을은 사실상 일본에서 수입된 개량종 매화로서 열매인 매실을 많이 얻기위한 농업용이라고 할 수 있는바, 이곳 선암사 매화는 우리 토종매화로서 적어도 400년 이상된 고매화(古梅花)이다.
옛 선비들의 지조와 기개에 빗대어 인용되던 매화, 묵향 짙은 수묵화에 등장하는 기품 있는 옛 매화. 함부로 살찌지도 않고 번성하지도 않으면서, 늙어서는 구불구불 오래된 가지 끝에서 향기를 품어 운치 있게 꽃을 피우는 우리의 토종 매화, 梅蘭菊竹으로 일컬어지며 늙었으되 향이 짙고, 소박하되 정갈한 그런 토종 매화가 나를 반겨준다.
까만 고목나무는 비틀어져 부서질듯... 혹시 죽은 나무가 아닐까 싶을 몸체에서 매화가 피어 났다.
오래전부터 운치 있는 토종 매화는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는바 이곳 선암사의 400년도 넘은 늙은 매화는 절집의 이름을 따서 ‘선암매’로 불리운다. 둥치에는 초록 이끼가 가득 끼었지만, 절집의 정신을 닮아서인지 유독 꽃이 깨끗하다.
<무우전과 각황전의 운치있는 돌담길과 고매화...>




선암사 고매화를 때를 놓치지 않고 만난 기쁨을 간직하고 나머지 이곳저곳 절집들의 얕은 담 너머로 보이는 매화들을 둘러보며 한바퀴 돌아내려오려니 절집이 아니라 어디 북촌마을쯤을 돌아보는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친숙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편안한 마음은 선암사의 뒷간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목조건물로서는 그 규모가 동양 최고 라는 선암사의 뒷간... 용변을 보고 승선교쯤 내려와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깊이와 크기가 대단하다 하여 便意도 없이 들어가 둘러 보았다.
丁자 형태로 지어져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용으로 나누어져 있는 2층형태의 건물로 통풍이 잘 되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재래식 화장실이지만 나오는 입구에 손 씻으라는 배려인듯 돌확에 물을 받아놓게끔 해놓았다.
<선암사 뒷간.... [ㅅ간뒤]라 씌여 있다.>

<용변후 손 씻는 ?>

봄을 맞아 남녘의 꽃소식을 찾아 섬진강으로 내려가기를 벌써 몇차례...
섬진강에서 조금더 서쪽으로 들어가니 승주군 조계산 남쪽에 선암사가 고매화를 품고 있었다.
선암사에서 북쪽의 송광사까지 넘어가는 길목도 한번쯤 넘어가기에 좋은 길이다.
또한 선암사에서 곡성 - 구례 - 하동으로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남도길은 해마다 봄이면 화사한 꽃길이 되어 많은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푸짐한 남도 인심에 취해 하루쯤 묵어가면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