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넉넉해져도 각박하게 느끼는 건 욕심 때문

이산저산구름 2007. 10. 9. 13:00
넉넉해져도 각박하게 느끼는 건 욕심 때문
  
 
  •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맑은 바람 
    마지막 선비를 찾아서 [5] 경북 안동 배승환옹                   
    안동 이한수 기자
    •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란 대형 입간판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서 마지막 선비로 꼽힌 사람은 3~4명이 있었다. 그중에서 지역의 성균관(成均館)이라 할 수 있는 안동향교(鄕校)와 안동대 한문학 전공 교수들은 배승환(裵昇煥·82)씨를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부끄럽습니다. 그저 문리(文理)를 얻어 남의 글을 알아볼 정도입니다.” 그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용헌(庸軒) 이용구(李龍九) 선생과 하은(霞隱) 김일대(金日大) 선생은 선비라 할 만하지만, 이제는 도맥(道脈)이 끊어졌다. 선비 고장의 유습(遺習)을 지켜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동을 선비의 고장이라 하는 이유는 뭔가요.

      “퇴계(退溪·이황) 선생 이후 명현달사(名賢達士)가 많았습니다. 큰선비들이 이어져 도학(道學)을 전수해 왔습니다.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 서애(西厓) 유성룡(1542~1607), 갈암(葛庵) 이현일(1627~1704), 밀암(密庵) 이재(1657~1730), 대산(大山) 이상정(1711~1781), 정재(定齋) 유치명(1777~1861), 서산(西山) 김흥락(1827~1899), 서파(西坡) 유필영(1841~1924) 등입니다. 나의 13대조인 임연재(臨淵齋·배삼익)가 퇴계 문하였고, 취헌(翠軒)이라 호를 한 아버지(배하식)가 서파 선생의 문인이었습니다.”
    • ▲ 안동 선비 배승환씨는 인터뷰 장소인‘흥해배씨종약소’사무실에서“20리 떨어져 있다”는 안동 향교까지 사진 촬영을 위해 흔쾌히 동행했다. 그는“현 안동시청 자리에 있었다가 6·25 때 무너진 향교를 20년 전 재건할 때 터잡고 집 짓는 일에 다 간여했다”고 했다. /안동=이한수 기자
    • ―선비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버지께 글을 배울 때 (아버지는) ‘자기 수양을 옳게 해서 남에게 떳떳하라’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자기 능력으로 추진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민주적으로 하는 사람이 선비입니다.” 그는 “민주적이라는 말과 선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선비의 본정신은 민주적이다. 상놈이라고 상대를 괄시하는 것은 선비의 본정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요즘도 글을 읽으십니까.

      “제자백가(諸子百家) 잡서를 주로 읽습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도 봅니다. 문중 문집도 보지요. 몇 년 전 종중(흥해 배씨) 회장을 지내고, 요즘은 집이나 지키고 있습니다.”

      ―글을 배우러 오는 사람이 많습니까.

      “대여섯 찾아옵니다. 예전엔 향교에서 사서(四書)와 시경(詩經)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직장을 퇴직한 사람들입니다. 안동대학에서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글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면요.

      “‘논어(論語)’에 ‘입즉효 출즉제 근이신(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범애중이친인(汎愛衆而親仁),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餘力 則而學問)’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 어른을 공경하는 것 같은, 자기 할 일을 다한 후에 힘이 남아 있으면 공부하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할지라도 배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는 말이 나옵니다. 요즘은 배운다는 게 자기 출세를 위한 것이지, 자기 몸을 닦으려고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글을 배우면 실천해야 하는데 지금은 겉껍데기만 배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추석에 집집마다 차례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유교 예절이 좀 복잡한 것 같습니다.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단축한 것입니다. 술잔을 올릴 때 초헌(初獻·첫 번째 술잔)은 아들의 대표인 종손이 합니다. 아헌(亞獻·두 번째 술잔)은 여자의 대표인 주부(主婦)가 합니다. 종헌(終獻·마지막 술잔)은 친척 중 연장자나 절친했던 사람이 합니다. 아들들이 모두 술잔을 올리고, 여자들이 모두 술잔을 올리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단축해서 만든 것입니다. 요즘은 아들이 다섯이면 모두 술잔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건 예(禮)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할 바가 못 됩니다.”

      ―여자가 두 번째로 술잔을 올린다 하셨는데, 원래 여자는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유교가 교(驕·교만)가 나서 그러기도 했는데 본디 예는 그렇지 않습니다.”

      ―곧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정치의 계절입니다.

      “위정이덕(爲政以德·덕으로 정치를 함)인데 요즘은 그렇지 못합니다. 덕을 가지고 있으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에워싸듯 옹립할 것인데 지금은 저 잘한다고만 떠듭니다. 세상이 또 그렇습니다. 저 잘났다고 해야 추앙하고, 겸손하면 오히려 멸시합니다. 우리네 생각에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의식주는 예전보다 넉넉해졌는데 살기는 더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욕심을 내서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은 없었습니다. 도의심(道義心)이 추락한 까닭에 자기 생활이 불만스러운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문란해지니까 더 잘살아야 하고, 더 돈 벌어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도의와 윤리가 회복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녀를 한 명만 낳는 요즘 세태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식을 하나만 낳아서 화단에 꽃 가꾸듯 합니다. 어른을 어른으로 여길 줄 모르게 만듭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 낳아서 잘 키운다고 하는데, 어떻게 잘 키웁니까? 낳을 수 있는 대로 낳고 자연적으로 육성을 해야 합니다. 퇴계는 여섯째인데 (하나씩만 낳으면) 앞으로는 퇴계 같은 인물이 안 나올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