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안동 문화

선비의 마을, 안동 하회(河回) - 길어온 글

이산저산구름 2007. 5. 4. 17:15

선비의 마을, 안동 하회(河回)  

 북 안동은 ‘선비 정신’으로 상징되고 있는 유교 문화의 본고장이다.
당시 한양하고 거리가 먼 이곳이 어떻게 선비의 고장으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당쟁이 가장 치열하던 조선 중기 이후 정권에 밀려난 남인들이
오랜 세월 이 곳에서 은든하면서 학문에 정진하여왔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 유산과 전통을 소중히 여겨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곳은 성리학의 거두 이황을 비롯하여 징비록(懲毖錄, 임진왜란 야사(野史))을

저술한 명재상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1607),
그리고 ‘청포도’로 유명한 민족 시인 이육사를 배출하였다.
특히, 풍천면(豊川面) 하회리(河回里)는 지금도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취와 선비 정신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마을은 풍산 류씨(豊山柳氏)가 대대로 가문을 이어오는 전형적인 동족마을로서
낙동강의 흐름이 마을의 동·남·서 3방형을 감싸 돌아 흐른다.
즉 산은 물을 얼싸안고 물(花川 - 꽃내)은 산을 휘감아 흘러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상을 이룬다.
그래서 <하회마을>그러기도 하고,<물도리동>이라는 별칭도 있다.


류씨가 자리잡기 이전에는 허씨(許氏), 안씨(安氏) 등이 유력한 씨족이었는데,
풍산 류씨가 기반을 확고히 한 것은 유학자였던 문경공 겸암 류운룡(柳雲龍) 선생과
그의 동생이자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때로 여겨진다.
현재, 하회마을에는 조선 전기 이래의 사대부집에서부터 하층 계급의 가람집에 이르기까지
300 ~ 500년 된 130 여 호의 크고 작은 고가(古家)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은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하회탈을 빼 놓을 수 없다.
하회탈과 병산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이며, 하회 별신굿 탈놀이 때 쓰인다.
원래는 12개였으나, 지금은 초랭이, 양반, 백정탈 등 몇몇만 보존되어
병산탈 2개와 함께 9개가 국보 121호로 지정되어있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된 안동양진당(安東養眞堂;보물 306호)은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인 류운용의 종가댁 사랑채이다.
그 밖에 충효당(忠孝堂;보물 414호)을 비롯하여 하회북촌댁(河回北村宅;중요민속자료 84호),
하회원지정사(河回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85호), 하회류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중요민속자료 87호),
하회옥연정사(河回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88호), 하회겸암정사(河回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89호),
하회남촌댁(河回南村宅;중요민속자료 90호), 하회주일재(河回主一齋;중요민속자료 91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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