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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나의 스승이었다

사과나무가 나의 스승이었다 19세기 미국의 대중적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도 뛰어난 감성으로 멋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불행한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다가 사망했으며, 두 번째 아내는 집에 화재가 발생해 화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롱펠로의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는데, 어느 날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숱한 역경과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시를 남길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롱펠로는 정원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과나무가 바로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사과나무는 보는 것처럼 수령이 오래된 고목인데 해마다 단..

사불삼거(四不三拒)

사불삼거(四不三拒)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내며 '전설의 아전’이라고도 불리던 김수팽은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에 얽힌 네 가지의 일화를 통해 각각의 교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일화로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바둑판을 확 쓸어버리고는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나 결재부터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에 호조판서는 죄를 묻지 않고 결재를 해 줬다고 합니다. 또 어느 날은 김수팽이 숙직하던 날,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 금을 요청했습니다. 왕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고서야 돈을 내주었는데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일화로는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

비단옷과 삼베 두루마기

비단옷과 삼베 두루마기 조선 숙종 때 뛰어난 학자로 명성 높은 '김유'는 평소 청빈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이 잠잘 방 한 칸 없어 비좁은 처마 아래에서 식구들이 잠을 자야 했는데 그가 평안감사로 나가 있는 동안 아버지 몰래 아들들이 처마를 몇 칸 달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바로 그 처마를 쳐내었다고 합니다. 그는 대제학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대제학은 국가의 문한(文翰)을 총괄하는 지위로 문과 출신 중에서도 학문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임명하는 자리로 권위와 명망이 높아 관료의 최고 영예였습니다. 대제학의 자리에 오른 날 그는 가족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몸담게 된 대제학의 자리는 누구보다 청빈하고 겸손해야 하는 자리요. 그러니 잊지 말고 앞으로는 더욱 몸가짐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