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7세기 조선에 살고 있는 아둔한 선비 김득신이란 사람입니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그 후유증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늦었지요. 보통아이들은 대여섯 살이 되면 서당에 들어가 글공부를 시작했으나, 저는 열 살이 되어서야 글을 배웠습니다. 열심히 글을 읽었지만 머리에 지식으로는 쌓이지 않았습니다. 나이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글을 지어 아버지께 보였더니 ‘큰 그릇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란다’라고 하시면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제 친구들은 과거에 응시하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그즈음에 매월당 김시습 선배님은 다섯 살에 세종 임금님 앞에서 시를 지어 큰 칭찬을 받았고, 율곡 이이 선배님은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부지런히 고전을 찾아 십여 년을 읽었지만 소기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나이 삼십이 되었답니다. 어느 날 『중용(中庸)』을 읽다가 제20장에 이르러 드디어 제 인생을 바꿔놓은 귀중한 글귀를 만났습니다. 저같이 아둔한 사람을 위해 성인께서 일러주신 글귀로 여겼습니다. 이때부터 글을 읽은 횟수를 기록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고, 『중용』을 2만 번이나 읽었습니다. 이 책은 심오한 철학적 담론서이기 때문에 어려운 책이지만, 거듭 읽게 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중용』을 접한 뒤로 모든 책들이 쉽게 읽혀졌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책이나 글들을 골라 만번 이상 읽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시문을 익혀 마침내 문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요. 50대에 이르러 <龍湖(용호)>라는 시를 발표했더니, 효종께서 보시고 ‘당시(唐詩)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문단에서 이름을 알리게 되자 저는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과거에 응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이 59세, 남들은 인생을 정리할 시기에 저는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합격해 벼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습관은 계속되었고, 67세에 이르러 그동안 읽은 글의 편수와 횟수를 집계하여 <古文三十六首讀數記(고문삼십육수독수기)>라는 글을 지었습니다. 이 글에는 만 번 이상 읽은 문장만을 기록했는데, 사기의 <백이열전>은 무려 11만 1천 번을 읽었더군요. 40여 년에 걸쳐 꾸준히 독서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먼 미래의 청년들은 이러한 저를 어떻게 평가해 줄지는 알 수 없으나, 바라기는 ‘조선의 독서광’으로 남고 싶습니다. 인생을 정리하면서 제가 죽은 뒤 묘비명에 이런 글을 넣어 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나는 오늘 먼 미래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봄날의 태양은 청춘들의 편이니, 태양은 그대들을 지켜볼 것이다.’ 이 편지가 어느 시대 누구에 의해 개봉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이 저를 통해 되새겨 봤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타고난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용의 가르침인 ‘남보다 백배의 노력’을 실천하는 것이며, 셋째는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지적 역량을 확장해 목표를 이룬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저보다 못 할 리야 없겠지만, 목표에 비례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조급하게 성취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古文三十六首讀數記>를 읽고서 다산 정약용은 <金柏谷讀書辨(김백곡독서변)>이란 글을 지었는데, 그중 일부를 여기에 붙입니다. 글·여강 구자청(전통문화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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