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피어나는 동백꽃의 아름다움
겨울의 끝자락,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각자만의 봄맞이를 준비하는 동안 동백은 홀로 무채색 풍경을 뚫고 붉음을 피워냈다. 동백(冬柏)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겨울에 피어 더욱 돋보이는 꽃이다. 향기는 없지만 그 빛으로 동박새를 불러 꿀을 주며 새를 유인한다. 동백나무는 사계절 내내 탐스러운 잎의 푸름을 자랑한다. 윤기가 흐르면서 광택이 진한 잎사귀 사이로 동백꽃이 피면 싱그러움은 극대화된다. 이미 온천지가 봄빛이다. 동백꽃은 이름이 다양한데 봄에 피는 것은 춘백(春柏)이라 하며, 붉음을 강조할 때는 학정홍(鶴頂紅)이라고 부른다.
동백꽃은 총 3번 핀다는 말이 있다. 먼저 나뭇가지에서 피고, 땅에 떨어져서 한 번 더 피고, 꽃을 본 사람의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피기 때문이다. 꽃송이가 바닥에 떨어져도 다른 꽃과는 다르게 1주 이상 시들지 않고 모습을 유지한다고 하니 그것도 신비롭다. 그래서인지 동백꽃을 담은 사진들에는 낙화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또 하나, 여행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떨어진 동백꽃으로 하트를 만들어 놓는다. 싱싱한 붉음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모양이다.
동백꽃은 만나기가 어렵지, 한번 본 이들은 모두 마음을 빼앗겼다. 이 때문에 이규보, 신숙주, 윤선도 등 과거 문인들의 작품에서도 동백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 아울러 민요에서도 동백을 만나볼 수 있다. 대부분은 성삼문의
<설중동백(雪中冬栢)>과 대동소이한 주제를 품고 있다.
눈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동백꽃을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에 비유하고 있으며, 그 고아한 아리따움은 매화보다 낫다고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의 봉래는 배경이 된 이야기가 있다. 진(秦)나라 시황이 사람들에게 불로초와 동백기름을 구해오라는 명을 내리며 불로초의 산지 봉래산으로 보냈다는 전설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제주에는 동백나무가 많으니 성삼문은 제주를 봉래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 것이다. 동백을 다룬 문학작품이 많지 않은 이유는 주로 남해안이나 서해안에 집중해서 자라기 때문에 접하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옥룡사 동백나무 숲을 거닐다
광양의 옥룡사에는 6천 3백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수령은 100년 이상, 높이는 6~10m 정도나 되어, 나무 사이 산책로를 걷고 있노라면 기분 좋은 자연 그늘이 드리워진다. 2월 말부터 3월까지 동백꽃이 만개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마음 안에 봄을 품게 된다. 동백나무는 수명이 다하면 바로 옆에 또 다른 나무가 자라는 습성이 있어 옥룡사 동백나무 숲이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숲은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천국이지만 여간해서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울음소리만 나무 사이에서 울림을 가질 뿐이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1878년 화재로 소실된 옥룡사와 관련이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통일신라 말에 지었던 옥룡사는 선각국사 도선이 약 35년간 머무르며 수백 명의 인재를 육성하고 입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옥룡사에는 창건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절을 세운 곳에는 본래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사람들을 괴롭히자 도선은 도술로 여덟 마리를 쫓고 나머지 한 마리인 백룡은 눈을 멀게 하여 내쫓은 뒤 터를 다지려는데 습지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웃 마을에 알 수 없는 눈병이 유행했고, 절터에 있는 연못에 숯을 가져다 부으면 눈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돌아 결국 연못을 메우고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도선은 백 백(白)자가 들어가는 사람을 절에 들이지 말라는 말을 남겼는데 300년 후 백룡이라는 거사가 이름을 감추고 들어와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도선이 옥룡사를 창건할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바로 동백나무였다. 사찰지 주변으로 동백나무가 넓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은 물론 학술적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높아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글‧최은서 사진‧비니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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