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0년 이후 45년 만에 허락한 길이기에 늦여름 무더위도 토왕성폭포를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을 막을 수 없었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해당하는 외설악에 위치한 토왕성폭포는 2011년 국립공원 100경으로 선정되고, 2013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96호로 지정되었지만, 낙석과 절벽 등의 위험 때문에 출입이 제한됐다. 그 후, 설악동 소공원에서 육담폭포, 비룡폭포로 이어지는 2.4㎞의 기존 탐방로를 약 400m 연장해 토왕성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산세가 험준한 탓에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 거대하고 원시적인 위엄은 원근감도 무시한 채 부족함 없이 전해져 온다.
비룡폭포에서 토왕성폭포에 이르는 990개의 계단은 오랫동안 산을 오른 등산객들에게도 버겁긴 마찬가지다. 400m라고 해서 얕잡아볼 게 아니다. 호기롭게 떠난 아빠들은 100여 m를 오르고 이내 항복의 흰 깃발을 흔들며, 비룡폭포에서 기다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웃지 못할 풍경도 연출됐다.
살아있는 자연 탐방로, 가족과 걷는 소공원 길
설악산 입구 소공원에서는 누구나 두 갈래 길을 맞닥뜨리게 된다. 왼쪽은 비룡폭포, 직진은 신흥사와 흔들바위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해 비룡폭포로 이어지는 길은 원만한 편이어서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은 편이다. 특히나 소공원은 설악산 자연학습 탐방로의 출발점이라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자연관찰 학습장이다. 비룡교를 건너자 다람쥐가 안내를 자처한다. 금강송, 자작나무, 개회나무 등 수십여 종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곳곳에는 설악산 동식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마련되어 있다.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될 만큼 설악산은 수려한 자연 자원을 품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 명성에 걸맞은 풍경이 등산객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젖어든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들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격을 만들면서 끝을 알 수 없는 숲의 깊이를 완성했다.
신비로운 육담폭포와 장쾌한 비룡폭포
비룡 평지길이 끝을 보이자 절벽을 따라 설치한 철재 데크가 이어졌다. 데크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쉽사리 내어주지 않던 설악산의 깊숙한 산세를 들춰볼 수 있다.
등산객을 맞는 첫 번째 폭포는 6개의 담(潭)이 물줄기를 따라 층층을 이루는 육담폭포다. 소담스럽게 흐르던 폭포가 모여 담(潭)이 되면 고요하고 깊은 색을 품는다. 마치 한여름의 녹음같기도 하고, 심해(深海)의 기품을 닮기도 했다. 육담폭포로 나 있는 길목의 또 하나 재미는 일명 출렁다리인 ‘구름다리’를 지나는 것이다. 1965년에 한 주민이 설치했던 구름다리는 노후되면서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1984년 철거됐다. 30년 만에 다시 복원된 구름다리는 길이 43m, 폭 1.5m의 현수교 형태로, 등산객에게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중년의 나이도 잊은 채 동심에 푹 빠진 사람들은 함께 온 지인과 가족을 놀리겠다는 심산으로 슬쩍슬쩍 구름다리를 흔드는 통에 여기저기 웃음 섞인 핀잔을 주고받는다.
30여 분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장쾌한 물줄기를 선보이는 비룡폭포에 발이 닿는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꽤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에 땀을 식히며 잠시 자리를 잡아본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의 비룡폭포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온다. 폭포 안에 살고 있는 용에게 처녀를 바쳐 가뭄을 해소하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내용이다. 용이 난 폭포란 뜻으로 ‘비룡폭포’라 이름 짓게 된 것이다. 물의 낙차가 빚는 폭포수 소리는 복잡했던 심신에 무아지경을 선물한다.
험준해도 다시 오를 토왕골의 절경
비룡폭포에서 에너지 충전을 마쳤다면 이제 토왕성폭포 전망대로 오를지 결단을 내릴 때이다. 화채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칠성봉을 끼고 돌아 떨어지는 토왕성폭포는 3단으로 이뤄져 있는데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로 총 길이 320m에 달한다. 수치로 아무리 가늠해본다 한들 직접 눈에 담기 전까지 그 규모를 체감하기 힘들 것이다.
일명 선광(禪光)폭포라고도 불리는 토왕성폭포는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설악산의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폭포의 모습은 연폭(連瀑)이라 하여,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되기로 소문난 전망대까지의 400m 여정에서는 등산객들만의 ‘다 왔어요’란 선의의 거짓말이 오고 간다. 그 말들을 지팡이 삼아 오르고 또 오르면 드디어 토왕성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나 오를 수는 있지만, 누구나 폭포의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웬만한 물의 양으로는 먼발치에서도 확인 가능한 물줄기를 만들 수 없는 것. 장마 직후에 찾으면 토왕성폭포의 웅장한 물줄기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력을 다해 정상에 올랐는데 폭포가 말라 있다 해도 실망은 말자. 오르는 내내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던 토왕골의 절경만으로도 헛걸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토왕골은 오랜 세월에 걸쳐 융기·풍화·침식·운반작용을 받아 폭포·바위 봉우리·담소·협곡 등의 독특한 화강암 지형이 발달해 경관이 매우 수려하기 때문이다.
육담폭포에서 비룡폭포, 그리고 토왕성폭포로 이어지는 이 길은 설악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탐방로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겨울철 빙벽등반대회 참가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접근이 허용됐던 토왕성폭포가 출입통제 지역에서 제외되면서 설악산 10대 명승➊ 가운데 용아장성과 만경대 2곳만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➊ 설악산 10대 명승 : 비룡폭포, 울산바위, 대승폭포, 십이선녀탕, 수렴동·구곡담 계곡, 비선대와 천불동, 공룡능선, 토왕성폭포, 용아장성, 내설악 만경대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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