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치맥, 최고였다

이산저산구름 2016. 9. 30. 08:43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치맥, 최고였다

[퇴직 후 걸은 산티아고] 스물다섯번째날, 스물여섯번째날.

베가 데 발카르세 24Km, 알토 데 포이오 21.8Km

[오마이뉴스이홍로 기자]

 

 

카카벨로스의 숙소는 최상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감자와 요구르트로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숙소가 시내 외곽에 있어 마을을 바로 벗어났다. 오르막 길을 올라서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끝없는 포도밭이다.  앞서 가던 여성 순례객이 길을 걷다가 되돌아 나온다.

"길이 잘못 되었나요?"
"아니오, 알베르게에 선글라스를 놓고 왔어요."

2km 정도 왔는데 되돌아 갔다 오려면 힘들겠다. 그래도 순례길에서 선글라스가 없으면 안된다. 포도밭 길을 천천히 걷는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상쾌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작은 마을을 지난다. 시골 마을에는 빈 집이 있어 반쯤 무너진 곳도 있다. 호젓한 포도밭 길을 걷고 있는데 왼쪽 언덕에 하얀집이 아름답게 보인다.

완만한 언덕길을 계속 걷다 보니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마을이 보인다. 이 곳은 인구 5천 명이 사는 마을이다. 언덕 아래에 아름다운 성당과 주택들이 초원과 어울려 참 아름답다. 순례길 옆에 있는 성은 마르케세스 성으로 15세기에 지어졌고, 1808년 전쟁 중에 망루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우린 성 바로 앞에 있는 바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쉬었다.

 

 카카벨로스의 성당 겸 알베르게
ⓒ 이홍로
 순례길 옆의 포도밭
ⓒ 이홍로
 포도밭 언덕 위의 하얀집
ⓒ 이홍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성

ⓒ 이홍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성당

ⓒ 이홍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치맥, 최고였다

바르에서 잠시 쉬었다가 언덕을 내려와 시내로 접어든다. 오래된 골목에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고, 한 가게에서는 할아버지가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큰 성당 앞 광장에는 반짝 시장이 열렸다. 순례길을 걸으며 이러한 반짝 시장을 여러번 만났다. 시장을 천천히 구경하며 걷고 있는데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이 끝나는 곳에 앉아 친구를 기다린다. 늦게 나타난 친구가 무얼 사 들고 온다.

"너 어제 치킨 먹고 싶다고 했지?"
"치킨 파는 곳이 있어 한 마리 사왔다."
"7.5유로 줬는데 아주 크다."
"잘 됐다."
"캔 맥주 사 가지고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먹자."

아름다운 부르비아 강을 건너 마을을 벗어나니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개인 주택으로 통하는 길로 순례길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우린 여기에 치킨과 맥주를 펼쳐 놓고 오랜만에 통닭 다리를 들고 맛있게 먹었다. 맥주에 통닭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걷기가 힘들다. 음식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마을의 스레기통을 찾아 걷는데 동네 할머니가 순례길은 반대쪽이라고 알려 준다. "쓰레기를 버리려구요"하니 "내가 버려 줄게"하시며 쓰레기 봉투를 가져 가신다. "그라시아스" 인사를 하고 다시 걷는다.

도로 옆 길을 걷는데 태양은 뜨겁고 배는 불러 평소보다 힘이 든다. 땀은 비 오듯 흘러 내린다. 왼쪽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잠시 쉰다.

우리 앞에는 80대 노인이 혼자 걷고 있다. 그 분은 천천히 쉬지 않고 걷는다. 우리는 1시간 정도 걷다가 10분 정도 쉰다.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걷기 때문에 우리가 쉬는 사이에 우리를 앞지르신다. 작은 마을 입구 바르에서 맥주와 빵을 먹으며 쉬었다. 여기서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청년은 여자 친구에게 매우 친절하다. 연인끼리 이 길을 걸으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까? 이 커플은 순례길을 마치고 피니스테라 해안에 갈 때까지 여러번 만났다.

오늘 걷는 길은  베가 데 발카르세까지 24Km이다. 계속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고 태양까지 뜨거워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오후 2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널고 나서 알베르게 앞에서 쉬면서 캔맥주 한 잔을 마시니 기운이 난다. 조용하던 마을에 기타 소리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에 만났던 한국인 청년이 오고 있다.

우린 오후 5시가 넘어 마트에 가서 삼겹살과 쌀, 상추 등을 사 가지고 와서 밥을 해 먹었다. 고기 양이 많아 한국인 청년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청년은 스페인에 1년동안 어학 연수를 왔고 어학 연수를 마친 뒤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여행을 하였고 쿠바를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앞으로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나이는 45세인데 아직 미혼이라고 한다.

저녁 식사 후 일찍 자려고 하였으나 심하게 코를 고는 사람이 있어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내가 챙겨 준 귀마개를 하고 자려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뒤척이다 보니 새벽이 되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반짝 시장

ⓒ 이홍로

 

 부르비아강가의 주택들

ⓒ 이홍로

 

 베가 데 발카르세 마을 풍경

ⓒ 이홍로

 

스물여섯번째날,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걷다

베가 데 발카르세 알베르게에서 잠을 설쳤지만 공기가 좋은 곳에서 쉬어서인지 몸은 상쾌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김치국을 끓여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을 말아 먹고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으니 마을 길로 들어섰다. 아침 햇살이 숲을 비추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아름다운 숲을 지나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작은 마트가 있고 알베르게도 있다. 친구와 나는 "이런 곳에서 하루 쉬면 참 좋겠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아침 이슬이 초목에 영롱한 구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곳도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 숲길은 마치 한국의 등산로처럼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우리 앞에는 브라질의 장인과 사위가 걷고 있다. 사위는 먼저 언덕을 올라가 쉼터에서 장인을 기다린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숲길에는 쇠똥이 널려있다. 냄새도 엄청 심하다. 힘든 산행을 한동안 하다 보니 산 위에 마을이 나타났다. 바르에서 맥주와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쉬는 동안 바르 앞에 있는 작은 농장을 잠시 구경하였다. 젊은이가 농장에 있다가 구경을 해도 좋은지 물으니 안내를 해준다. 우리나라의 텃밭인데 각종 야채를 잘 기르고 있다.  아담한 집도 보기 좋았는데 가족들이 직접 지은 집이라고 한다.

순례길은 계속 오르막길이다. 해발 1300m 이상의 고원 지대를 걷는다. 힘들게 오르지만 오를수록 눈 앞에 펼쳐지는 경치도 장관이다.

 

 루이텔란마을 풍경

ⓒ 이홍로

 

 루이텔란 마을 풍경

ⓒ 이홍로

 

 라파바의 바르

ⓒ 이홍로

 

 오세브레이로를 오르는 길

ⓒ 이홍로

 

 1,300m 고원을 걷는 순례길

ⓒ 이홍로

 

 갈리시아 지방의 순례길 풍경

ⓒ 이홍로

 

오세브레이로의 기적

1300m 고지를 오르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 높은 산 위에도 여러 마을이 있다. 산 정상에 오세브레이로 마을이 있다. 이 곳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성당 중에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오세브레이로의 기적이 전해진다. 그 내용은 이렇다.

"독실하나 가난한 소작농 한 사람이 눈보라가 치는 날 목숨을 걸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 성당을 찾았다. 오만한 사제는 멸시의 눈초리를 숨기지 않으며 이 농부에게 빵과 포도주를 건넸다. 그 순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였다." 

성당 앞 바르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빵과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다. 친구와 나는 빵과 맥주를 먹으며 쉬었다. 브라질에서 온 한 친구는 이 곳 알베르게에서 묵는다고 한다. 우린 잠시 쉬었다가 산타마리아 데 포이오로 출발한다.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산 아래 곳곳에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스페인은 그 넓은 땅이 있는데도 이 깊은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갈리시아 지역이다. 갈리시아 지역은 대서양에서 서풍이 불어 오는데 비가 자주 오고 안개가 끼기도 하는 날씨가 불안정한 지역이다.

 

 1,330고지의 마을 오세브레이로

ⓒ 이홍로

 

 오세브레이로의 자전거 순례자들

ⓒ 이홍로

 

 순례자들이 만든 십자가

ⓒ 이홍로

 

 산 위의 마을

ⓒ 이홍로

 

 순례자 동상이 있는 고개

ⓒ 이홍로

 

산을 오르내리며 순례길을 계속하여 걷는다. 친구와 나는 힘들다며 알베르게가 나오면 묵기로 했다. 한동안 걷다 보니 순례자 기념비가 나왔다. 순례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간다. 산을 내려가 만난 마을이 오스피탈 데 라 콘덴사 마을이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 알베르게가 시골의 작은 집이다. 아직 관리자도 나와 있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 3Km를 더 걸어 산타 마리아 데 포이오에서 묵기로 하고 계속하여 걷는다. 우리 앞에 두 여인이 힘들게 걷고 있다. 힘들게 포이오 고개를 오르며 뒤를 돌아 보니 그 경치가 참 아름답다. 고개를 올라 서니 바르겸 알베르게가 나왔다. 침대를 정하고 바르에서 맥주와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이 곳은 해발 1300m로 여기서 바라 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자전거로 순례길을 달리는 사람들도 여기 바르에서 쉬었다 간다.  여긴 마을이 없고 길 건너에 바르 겸 사설 알베르게가 있고 마을은 없다. 산책할 곳도 마땅이 없어 쉼터에서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내 침대 옆에는 80세 할아버지가 쉬고 있다.  "나이 드셨는데 이 힘든 길을 걸으십니다"라고 말을 걸으니 하루에 15Km 정도 걷고 쉬신다고 한다. 이제 산티아고까지 150Km 남았다. 6일 만 더 걸으면 순례길을 마치게 된다. 이 순례길을 마치고 나면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