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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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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으면 안됩니다”
2004년 05월 15일 (토) 10:01:07 평화뉴스 pnnews@pn.or.kr
   
▲ 안동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목성동성당에 선 김헌택(48)씨.
 

유난히 ‘바람'이 많았던 17대 총선을 마친 김헌택(48)씨는 “세상이 그리 쉽게 변하진 않는 것 같네요”라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고등학교 교사인 김씨는,‘대통령 탄핵’이 터지자 ‘탄핵 무효’를 주장하며 촛불집회와 단식투쟁을 벌였고, 더 나은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안동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후보 토론회도 가졌다. 그러나, 결국 선거법에 걸린 후보마저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고, 안동지역도 ‘한나라당 싹쓸이’라는 결과로 바람 잘날 없던 총선을 마쳐야 했다.

사회운동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길이며, 더구나 그것을 10년 이상 하는 사람은 각 지역마다 손에 꼽을만하다. 김헌택. 안동지역에서 왠만큼 활동한 사람이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특히, 김씨는, 교육운동에서 시작해 평화와 통일운동, 인권운동과 야학까지, 무려 20년을 안동에서만 활동했다. 하지만, 거창한 ‘대표’ 간판은 어디에도 없고, 대부분 ‘사무국’이나 ‘집행위원’정도의 고민하고 발로 뛰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활동은 더 의미있고, ‘지역의 일꾼’으로 꼽을 만한지도 모른다. 최근 안동의 한 성당에서 그를 만나 20년의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80년대 교육운동으로 첫 발, “참교육을 위한 초심을 잃으면 안되는데...”

경주가 고향인 김씨는, 대학을 마치고 지난 ’84년 사립학교인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안동이란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참교육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던 김씨는, 이듬 해 ’85년에 <안동 YMCA교사회>를 통해 교육운동을 시작했다. “그땐 전교조니 뭐니 이런 말도 없었죠. 그저 참교육에 대한 열정만 갖고 조심스럽게 활동했죠. 그야말로 암울했던 80년대 아닙니까...”

당시 <안동 YMCA 교사회>는 교사 15명이 전국 YMCA 교사 단체들과 연계하며 참교육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86년 5월에 ‘교육 민주화 선언’을 한 뒤 몇몇 교사들이 해직되기도 했지만, 김씨를 비롯한 교사들은 민주화운동이 일었던 ’87년에 대구경북교사협의회를 만들어 보다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김씨는 이때 ‘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그 해 말 정식으로 새 회장을 뽑을 때까지 조직의 체계를 잡는데 힘을 쏟았다. 결국 이 조직은 전교조로 발전하게 되는데, 김씨는 지난 ’93년에 전교조 경북지부 부지부장을, ’93년부터 ’99년 6월까지 사립위원장을 맡아, 어려웠던 ‘비합법시대’ 교육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전교조는 오랜 비합법시대를 끝내고 지난 ’99년 7월에 합법화됐고, 그때부터는 특별한 감투를 쓰지 않은 채 조합원의 역할만 하고 있다. 예전과 지금의 전교조를 보면 어떤지 물었다.
“솔직히, 안타까움이 있지요. 참교육을 위한 초심을 잃으면 안되는데... 그때는 참교육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헌신했는데, 지금은 정파나 단체 이익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김씨는 그만큼, 전교조 비합법시대의 순수한 열정이 아쉽다고 했다.

정의, 평화, 통일운동에 야학까지...“계속 부딪쳐 봐야죠. 허허...”

학생들은 김헌택씨를 ‘거리의 교사’라고 부른다. 수업 중에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안동 도심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나 집회 때 더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만큼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99년부터 천주교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을, 이듬 해 2000년부터는 안동 <마리스타> 야간학교의 교감을 각각 맡고 있다. 특히, 지난 ’77년에 설립된 <마리스타> 야간학교는, 초등 1반(한글반)에서 고등반(대입 검정고시반)까지 100여명이 공부하고 있는데, 연령층도 10대 청소년들부터 80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김씨에게 이 야간학교는 이미 또 하나의 교육현장이다.

   
김씨는 또, 지난 ’99년 12월에 2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경북북부지역 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크고 작은 행사와 집회를 통해 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16대 총선이 치러진 2000년에는 '2000 총선안동연대' 집행위원을 맡아 ‘12. 12’쿠데타를 주도한 특정 후보에 대해 낙선운동을 펴기도 했다.

이어, 지난 해 7월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안동시민모임> 창립에 참여해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50여명의 시민들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 해 10월부터 10주 동안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안동시민학교]를 처음으로 열었고, 17대 총선을 앞둔 지난 4월 13일에는 대구경북의 장기수 할아버지 7명을 모시고 장기수들의 삶을 다룬 기록영화 ‘송환’을 상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에게 가장 큰 아쉬움은 역시 이번 17대 총선이다.
김씨는 <천주교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안동지역 신부와 스님, 목사들과 함께 농성을 하기도 했고, 안동지역 14개 단체로 구성된 <열린 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의 집행위원으로 '안동지역 총선 후보자 초청 정책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안동 역시 일당 싹쓸이로 끝이 나고 말았다.
특히, 모 후보는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까지 받았지만, 결국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차떼기, 탄핵, 선거법, 무엇을 내세워도 좀처럼 뚫리지 않는 이 지역의 두터운 벽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것 같네요...”

김씨는 스스로를 ‘어눌하고 실수투성이’라고 말한다. 또, 이런 인터뷰와 삶의 소개가 자신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며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 20년 동안 사회운동을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또, 많이 지칠 법도 한데 김씨는 여전히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부딪쳐 봐야죠.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허허...”
한 지역 일꾼이 살아온 그루터기. 김씨의 넉넉한 웃음에서 그루터기의 새 희망이 느껴진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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