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풍속화의 서막을 열다
조선 후기의 서민 풍속화는 의외로 사대부 화가가 그 서막을 열었다. 잘 알려진 윤두서(尹斗緖, 1668~1715)가 서민의 존재를 당당히 그림 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풍속화를 선도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짚신삼기>를 보자. 맨 상투를 튼 서민 남성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짚신삼기에 열중해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촌부村夫를 윤두서는 왜 화면 한 가운데에 앉혀놓은 것일까? 그의 <짚신삼기>가 그려지기 이전에는 신선, 도인, 처사와 같은 허구의 인물들이 그림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윤두서 자신도 한때 이 런 인물상을 그렸지만, 그가 <짚신삼기>에서 추구한 것은 땀 흘려 일하는 서민의 삶을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윤두서의 <짚신삼기>는 현실 속의 서민을 화면 위로 부각시킴으로써 조선 후기 서민 풍속화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 그림이다. 고상한 처사와 같은 인물이 자리 잡던 화폭에 <짚신삼기>처럼 현실적 인물이 들어간 점은 분명 새로운 변화다. 서민들의 일상을 친근하게 바라본 윤두서의 소탈한 시선이 새로운 풍속화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엄정한 현실, 소박한 일상
윤두서의 풍속화는 다음 세대의 전문 화가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화원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이 그린 <짚신삼기>는 앞서 본 윤두서의 그림과 좋은 비교의 대상이다. 김득신의 <짚신삼기>에는 현실적인 생활공간이 배경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촌가의 사립문과 울타리를 등진 중년의 남성이 짚신을 삼고 있다.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성은 생활력 강한 가장家長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의 왼편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이 손자의 응석을 받으며, 아들의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다. 삼대三代가 함께 그림에 등장한 것이다.
어제를 살았던 노인과 내일을 살아갈 주역인 어린 아이 앞에 놓인 엄정한 현실을 짚신을 삼는 소박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노인의 뒤편으로 보이는 논에는 모가 가득 심겼고, 사립문 위에는 호박이 영글었다. 단정하고 소박한 서민 집의 한 모퉁이가 이 그림에 정감을 더해준다. 김득신의 <짚신삼기>는 윤두서의 그림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코 소박함을 벗어나거나 미화시키지 않았다. 김득신은 거친 노동으로 삶을 일구어 온 평민 가장家長의 소탈한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윤두서로부터 비롯된 서민 풍속화의 전통은 화원 출신의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그림에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웠다. 잘 알려진 그의 그림 <점심>을 살펴보자. 일손을 멈추고 그늘 아래에 모여 점심을 나누는 장면이다. 하루 중 이보다 더 즐거울 때가 있을까? 땀을 식히며 밥과 찬을 마주한 이 남성들이야말로 김홍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서민들의 군상이다. 윗옷을 입은 사람, 걸친사람, 벗은 사람 등 제각기 다양한 모습이지만, 중복되는 형상은 찾을 수 없다.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노동은 삶의 근간이었고, 한 끼의 식사는 육신의 충전과 힘의 원천이었다. 밥그릇의 크기에 비해 찬은 거 의 보이지 않는 소박한 점심이지만 이들의 모습에는 어느 만찬도 부럽지 않은 소탈한 행복감이 화면에 가득하다. 김홍도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진솔한 표정, 해맑은 소탈함
이번에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김홍도의 그림 <서당>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솔직한 감정과 그것의 진솔한 표현이 풍속화의 미덕임을 설명해 주는 그림이다. <서당>은 약 300년 전 초등교육의 현장이다. 그림 속의 상황은 훈장님 앞에서 강독을 마치지 못한 아이가 종아리를 맞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는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훌쩍이며 발목의 대님을 풀고 있다. 이모습을 바라보는 학동들의 표정과 반응이 재미있다. 오른쪽 열 의 맨 위쪽에 갓을 쓴 아이는 입을 크게 벌려 호탕하게 웃고 있다. 그 아래쪽의 아이는 약간 측은한 시선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 귀뒤로 빗어 넘긴 머리매무새가 매우 단정하다. 그 옆의 세 번째 아이는 낙천적인 성격인지 곤경에 처한 친구의 모습에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그런데 그 왼편에 앉은 아이는 전혀 표정이 다르다. 눈동자가 동그랗게 상기된 것을 보면, 아마도 숙제를 하지 못해 언제 지목 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표정이다. 다분히 화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인물을 아주 정밀하게 그린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다. 뭉툭한 필치로 스케치하듯 쓱쓱 그려낸 것인데도 아이들의 해맑고 천진난만한 표정 하나하나가 잘 살아나 있다. 꾸밈없는 표정들이 전해주는 소탈함은 이러한 교육의 현장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따뜻한 정감, 소탈한 화법
이번에는 <서당> 속의 훈장 선생님을 다시 들여다보자. 사방건 아래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에 수염이 덥수룩한 시골 할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가늘게 뜬 실눈 위의 팔자눈썹에는 학동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훈장님의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하다. 채벌을 해서라도 올바로 가르치겠다는 훈장님의 깊은 애정을 표정으로 읽 게 한다. 마음이 짠한 훈장님의 눈썹과 눈물을 훔치는 아이의 팔자 눈썹에는 공감의 코드가 있다. 감정과 생각은 표정으로 드러나고, 그 표정에 꾸밈없는 진정성이 묻어날 때 우리는 이를 소탈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당>은 더욱 천진난만하고 정감이 넘치는 훈훈한 서당의 모습으로 읽힌다.
이번에는 그림의 화법을 살펴보자. 풍속화에 그려진 인물의 표정과 형태는 비교적 정확도를 요하지만, 세밀화처럼 다듬어 그리지는 않는다. 화가는 관찰에 집중하지만, 묘사는 더러 복잡한 부분들을 간략히 생략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잘 그려야겠다는 기교가 드러나면 오히려 어색해짐을 알기 때문이다. 선을 그어 형태를 규정하는 모필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지만, 공들여 그려야 할 부분에도 화가의 호흡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꾸밈없는 작화의 태도는 소박한 풍속화에 잘 어울리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이어지는 필치가 만들어내는 조형은 번잡하지 않고, 소박함의 본령을 추구하고 있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서민 풍속화에는 소탈함이라는 공통의 분모가 들어있다. 진솔한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군상에서 잔잔한 감정을 읽어내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화면 위로 드러낸 그림, 서민 풍속화만이 보여주는 소탈함의 미학이 아닐까. 그런 그림을 우리는 윤두서와 김홍도, 김득신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만나게 된다. 이러한 소탈함의 미학은 약 3백년 전의 빛바랜 풍속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는 21세기에도 소탈함은 여전히 한국인의 매력이자 한국미술의 고유한 미감으로 전해지고 있다.
글.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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