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길 8 - 백제의 혼이 녹아 있는 곳, 산성

이산저산구름 2014. 12. 16. 09:56

 

475년 백제는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긴다. 이때부터 계족산에서 식장산, 만인산으로 이어지는 현 대전광역시 동편 경계선이 백제의 최전방 요충지였다. 이곳이 신라에 뚫릴 경우 곧장 대전을 지나 공주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백제는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해야 했다. 반대로 신라 입장에선 이곳만 뚫으면 공주까지 직행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점령하고 싶은 곳이었다.
이렇게 치열했던 역사적 배경은 이 경계선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산성으로도 가늠해볼 수 있다. 대전에서는 50여 개(48개 발굴 조사 마침)의 산성이 발견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이 경계선 인근에 남아 있다. 치열했던 전장의 흔적과 백제군의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 백제의 혼을 좇아 산성으로 떠나본다.


 

- 대전 계족산성
백제의 마지막 불씨가 스러지던

 

 

산성도시라 부르는 대전. 그중에서도 대전 계족산성(사적 제355호)은 대전광역시를 대표하는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전 소재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삼국사기>에서도 거론하는 등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계족산성까지는 대개 황톳길 따라 오른다. 계족산 황톳길이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진 덕분이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 장동산림욕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발한다. 황토가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니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맨발로 걸어도 좋을 듯하다. 황톳길 따라 50분 가량 걸어가면 계족산성에 도착한다.
황톳길 대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동 임도길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황톳길도 좋긴 하나, 추동 임도길은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대전 동구 추동 상추마을에서 출발해 절고개 삼거리를 거쳐 계족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절고개 삼거리부터 계족산성까지는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더욱이 임도길엔 사람이많지 않아 때묻지 않은 자연이 온몸에 스미는 기분이다. 멀리 대청호도 보인다.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계족산성 남문터를 만난다.
남문터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계족산성을 왜 대전 대표 산성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대전 소재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큰 계족산성은 그둘레가 무려 1307m에 달한다. 산성 형태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성내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 형상이다. 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견고하게 축조했는데, 하나는 자연석을 이용한 내탁(內托)기법으로 서벽과 동벽이 이에 해당한다. 동벽과 북벽은 협축(夾築)기법으로 축조했다.

성내에는 건물지 6개와 우물지 2개소가 확인되었다. 또 남문지에서 약 7m 떨어진 봉우리에 봉수대와 저수지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중심으로 1998년부터 발굴 조사를 했는데, 출토품 대부분은 기와 조각, 토기 조각 등이 주류를 이뤘으며, 이외에 청자, 백자 조각 등이었다. 이를 통해 계족산성이 조선 시대까지 제 역할을 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한 바퀴를 걸어보았다. 동쪽으로는 대청호가, 서쪽으로 대전 시내가 훤히 보인다. 대전 시내가 보이는 서쪽 언덕에 앉아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신라군이 당시 백제부흥운동(백제 멸망 이후 4년 간에 걸쳐 백제의 왕족 유신(遺臣) 유민들이 백제를 다시 일으키려 한 운동)을 펴던 군사의 요충지 옹산성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전투로 백제부흥군이 수천 명이나 희생되었단다. 이 기록에 나타나는 옹산성이 바로 계족산성이라고 한다.
이 역사 기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백제부흥군은 당시 백제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백제 중앙정부가 붕괴했음에도, 마지막까지 백제를 지키고자 했던 부흥군의 충절. 그 마지막 불씨가 바로 이곳에서 스러져갔던 것이다. 코끝이 찡하다. 안타깝게 죽어간 백제군의 넋. 계족산성 어귀에 사무쳐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 노고산성
핏물이 골짜기를 이루던

 

 

노고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9호)은 대전광역시 동구 직동 찬샘마을 뒷산 해발 250m에 있다. 산성 오르는 길은 대전시에서 지정한 대청호반길 제3-1코스 ‘노고산성 해맞이길’(찬샘마을-쇠점고개-노고산성-찬샘정-찬샘마을)에 해당한다.
코스는 찬샘마을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버스를 타도 좋고, 자가 차량이 있으면 마을에 잠시 주차해도 관계없다. 노고산성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보문산이나 계족산과 달리 인적이 드문 산이다 보니 길이 다소 거칠다. 어쩌면 이게 노고산성 길만의 특색인지도 모른다. 중간에 풀을 헤치며 지나야 할 때도 있고, 또 아주 종종 거미줄에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자연 자체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 코스다. 반대로 우거진 숲이 부담스럽다면 11~4월 사이에 오를 것을 권한다.
찬샘마을회관부터 30~40분 가량 쉼 없이 오르면 정상 직전, 산성이 보인다. 노고산성은 산 정상 부분을 둘러쌓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남북을 장축으로 한 타원형이다. 성 둘레는 약 300m인데, 아쉽게도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져 서벽과 남벽 일부만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했고, 남벽 일부는 거친 돌을 사용해 조잡하게 쌓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백제 성왕(聖王, ?~554) 맏아들이 성주(城主)로 있었을 만큼, 노고산성이 최전방이었던 거지. 백제군과 신라군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지, 백제군, 신라군 할 것 없이 매일 군사들이 죽었던 모양이야. 군사들 피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올 정도였다고 하니까. 그래서 원래는 마을 이름이 피골이야. 핏물이 골짜기를 이뤘다고….”
전 마을회장이었던 변대섭 씨는 이같이 말했다. 마을 이름을 ‘피골’이라고 지었을 만큼 치열했던 전투. 애잔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 커다란 바위 몇 덩이가 보인다. 이 바위는 마을에서 ‘할미 바위’라고 부른다. 변대섭 씨는 “산성 쌓을 때 마을 할머니들이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다더라.”라고 했다.
그래서 산성 이름을 노고(老姑)산성이라 하고, 근처에 있는 큰 바위를 할미 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할미 바위’를 지나면 바로 정상이다. 사실 노고산성은 산성 자체보다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그림처럼 펼쳐진 대청호는 말 그대로 예술이다. 정상은 동쪽을 향해 트였는데, 이것이 이 길을 ‘노고산성 해맞이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아침 일찍 노고산성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멋스럽게 떠오르는 해맞이 광경을 볼 수 있다.
찬샘마을은 TV 프로그램 <1박 2일>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농촌체험마을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각종 농촌체험프로그램과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이왕 노고산성에 오를 계획이면 1박 2일 코스로 찬샘마을에서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즐긴 후 숙박하고, 다음날 새벽에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보문산성
각 산성 연결하던 전략 요충지

 

 

비가 온 직후, 산 공기는 무겁지만 청아하다. 보문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0호)에 오르던 날이 딱 그랬다. 마침 비가 막 그친 후여서 청아한 공기를 마시며 오를 수 있었다.
보문산성 오르는 길은 크게 세 갈래인데, 보통은 보문산 야외음악당을 거쳐 오른다. 산성까지는 처음부터 걸어갈 수도 있고, 자가 차량을 이용해 야외음악당까지 이동한 후, 거기서부터 걸어갈수도 있다. 보문산 입구에서 출발하면 산성까지 대략 1시간 내외, 야외음악당에서 출발하면 30분 가량 걸린다.
완만한 경사길이 산성까지 이어진다. 또 오르는 길에 약수터가 두 곳이나 있어 잠시 목을 축이며 쉴 수 있다.
산성은 정상인 시루봉(457.6m)에 못 미쳐 있다. 산세로 보면 시루봉에서 갈라져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봉우리(지봉, 406m)에 위치한다. 선선한 바람에 떠밀리듯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겨우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이다.
보문산성은 1991년, 대전 소재 산성 중 최초로 복원했다고 한다. 산성 형태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동남-북서 방향을 장축으로 한 긴 타원형이다. 성체는 대부분 화강암계 자연할석인데, 동북벽 급경사면은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했다. 성벽 중 동벽은 층수 13단으로 높이 2.5m인데 기초석부터 4단은 수직으로 쌓았고, 5단부터는 조금씩 물려 쌓은 형태이다. 산성에서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서남벽은 16단 층수로 높이 3.42m다. 동남벽은 5단 층수로 높이는 1m에 조금 못미친다. 특이한 건 동남벽 밖에 외황(外隍, 성벽 밖에 둘러 판 도랑)을 설치했었다는 점이다.
성벽을 잠시 바라보다 서문지를 통과해 성안으로 들어가 본다. 굵직굵직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던 이중 성벽 흔적으로, 옹성(甕城)이라고 한다. 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장대루가 보인다.
계단을 타고 장대루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대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한밭종합운동장이 보이고, 멀리는 한국철도공사 쌍둥이 빌딩도 보인다. 탁 트인 대전 전경에 끌려 야간산행으로 보문산성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깜깜한 밤에 장대루에서 바라보는 대전 야경도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한다.
장대루에서는 북동쪽으로 계족산-식장산 능선에 자리한 산성들도 보인다. 또 남쪽으로는 비파산성도 보인다. 군사적 요충지보다는 각 산성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위급한 상황을 주고받았을 먼 옛날을 떠올리며 잠시 대전 전경을 바라본다.
숨을 고르고 장대루에서 내려온다. 성곽 안쪽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다 보니, 곳곳에 들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꽃잎에 맺힌 빗방울이 마치 이슬 같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