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차별과 편견을 낳는 말들 10 - 이래도 내 글을 안 읽는다고? 더 험악하게 말해 봐?

이산저산구름 2013. 12. 5. 10:33

더 험악하게 말해 봐?
 

나막말 씨는 자칭 인터넷 논객입니다. 그가 토론방에 글을 올리면 칭찬 또는 야유 댓글이 수없이 달립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려도 흐뭇해합니다. 자신의 글에 관심을 많이 가져 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지요.

 

나막말 씨는 인터넷에서 주목받는 논객의 비결을 잘 압니다. 분초 단위로 쌓이는 그 많은 글들 중에서 자신의 글이 선택받으려면 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선 제목부터 눈에 띄게 적어야 하죠. 물론 글도 자극적으로 써야 합니다. 점잖게 쓰면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가 즐겨 쓰는 표현들을 살펴 볼까요? 정부의 세금 정책을 비판하려면 제목에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을 넣습니다. 정치권을 비판하자면 '야합, 흥정, 술책, 농단, 어릿광대 놀음' 등의 말을 동원합니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는 '가격 파괴, 슈퍼 추경, 슈퍼 쪽박, 국가 파산 위기, 시장 침략'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밖에도 그의 글을 보면 '혈세 낭비'세금 낭비, '주가 폭락'주가 급락, '금융 공황'금융 혼란, '인사 태풍' 또는 '인사 회오리'대규모 인사, '막가파식 행정'행정 문제점, '메가톤급 파장'큰 파장 등의 표현이 자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나막말 씨만의 일일까요?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이런 표현이 수없이 많습니다. 듣는 사람도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그 언어가 몸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항생제를 한 번 사용하면 다음에는 더 강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듯, 언어도 자극적인 표현들에 내성이 생기면 더 자극적인 표현을 구사하게 됩니다. '투기 바람'이 '투기 열풍'으로 바뀌고, 다시 '투기 회오리'로 번졌다가 급기야 '투기 광풍'까지 휘몰아치는 것입니다.

 

특히 전쟁에 비유하는 말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부패와의 전쟁, 기만전술, 핵폭탄 발언, 시한폭탄, 메가톤급 파장…….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는 그만큼 안정적입니다. 구성원의 삶도 여유롭습니다.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는 불안합니다. 남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부드러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용어부터 순화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말을 하는데 침 뱉을 사람은 없습니다.

 

출처_<이런 말에 그런 뜻이?>국립국어원, 한국어문기자협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