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늦어서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좀 더 서둘러 보려고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다며 걱정 어린 말을 덧붙이자 앉아 있던 여러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뜻을 표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속도에 늘 따라가야 할까요? 자기 속도대로 살 수는 없을까요?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속도, 세상살이에 가장 올바른 속도라는 게 존재할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어떤 학생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떤 학생들은 작은 충격을 받은 듯 눈빛을 빛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무척 바쁩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다를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하지요. 이런 푸념이 마냥 엄살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하루 일정을 적어 놓은 학생들의 수첩이나 휴대 전화 일정표는 해야 할 일의 목록으로 넘쳐 나기 때문입니다. 강의 시간과 과제 수행, 조별 모임이나 아르바이트 외에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배워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미리 학점을 채워 놓느라고 계절 학기를 이수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졸업할 무렵을 대비해 각종 자격증 시험과 토익, 토플 시험 준비에 돌입하기도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생들은 대부분 '시간 관리'의 귀재들입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단련이 되어서인지 시간을 쪼개 쓰는 일에 익숙합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가서 또 다른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곤 하던 생활에 워낙 오래전부터 길들여진 탓입니다. 축구, 피아노, 바이올린, 생태 체험 학습, 역사 기행, 심지어 줄넘기 교습까지 학생들이 경험한 방과 후 활동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잠깐이라도 쉬거나,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더욱 아껴 쓰면 그만큼 더욱 바빠질 뿐 시간적인 여유는 더 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학생들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왜 힘든지 알지도 못하고 물을 힘도 없습니다. 이 '피로 청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에게 자기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찾아서 그 속도대로 살아 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들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강의를 하다 보면 때때로 학생들이 가르치는 사람보다 현실을 더 잘 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의 속도에 자신을 맞춰 가야 한다는 사실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모두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잊은 채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열심히 뛰는 것은 내 옆에서 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남이 친 장단에 궁둥이춤 춘다'라고 했습니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거나 '숭어가 뛰면 망둥이가 뛴다'는 말도 모두 줏대 없는 삶의 태도를 비웃는 말들입니다. '남이 장에 간다 하니 무릎에 망건 씌운다'는 말이나 '남이 장에 간다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는 말도 자기 자신의 준비나 상황에 상관없이 무조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들입니다. 오죽하면 '남이 은장도를 차니 나는 식칼을 낀다'는 말도 나왔겠습니까?
하지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속도나 태도에 상관없이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것을 용납하기는 하는 걸까요? 우리 모두 '남이야 낮잠을 자든 말든', '남이야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건 말건' 제 식대로 살아가는 줏대 있는 삶을 꿈꿉니다. '피로 청년'들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만의 여유로운 대학 생활을 꿈꾸었을 겁니다. 그들의 부모들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자라도록 남다른 육아 방식을 고집했을 겁니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보다 옆집 아이 엄마가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새 자신의 자녀가 '남다르기'보다는 '남들과 다르지 않게' 자랄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게 되었겠지요. '모난 돌이 정 맞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이미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 둔 말들이지요. 그래서 늘 자기 눈높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기 자신을 늘 다른 사람의 눈으로 평가하지요. 스스로에 대한 자기 평가보다 다른 이들의 평가를 앞세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매순간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지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피로가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쌓이는 것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된 삶을 사는 것, 그것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피로감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학생들의 피로감을 마주하면서 더 깊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남의 설움에 제 설움을 덧짐 지운'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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