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여행

이중섭, 식민지 시대에 더욱 빛난 한글 이름

이산저산구름 2013. 3. 27. 12:51
'유화'를 그리는 화가를 우리는 흔히 '서양화가'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림 그리기를 마치고 이름을 어떻게 적을까? 대부분 영문자로 이름을 쓴다. 이런 말을 고교생인 딸에게 하니, "자기 나름 아닐까?"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무의식 중에 뭔가 있어 보이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라고 덧붙인다. 과연 서양화니까 그린 사람 이름도 서양식으로 적는 것일까?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영문으로, 광복 뒤에는 한글로만 이름을 적은 화가가 있다. 광복 뒤 외국에서 열린 숱한 전시회에서도 늘 전시할 기회가 많았지만 한 번도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화가는 박수근이다. 또 다른 어떤 화가는 자신의 이름을 줄곧 영문자로 썼지만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인의 발음으로, 그 후에는 미국식 표기로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들을 우리의 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필자로서는 마음이 평탄할 수 없다.

이런 착잡한 상태를 벌써 오래전에 극복한 이가 있었다. '서양화가'가 아닌, '유화가' 이중섭이다. 이중섭은 이름난 우리의 화가 중 한 명으로 필자가 평전도 쓰고, 청소년은 물론 유아용 책까지 두루 만든 바 있다. 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이룩한 미술가로서 그를 존중한다. 그는 결코 현실을 벗어난 예술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실로 진실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우리글과 말에 남다른 조예를 지닌 인물이다. 과연 이런 것들이 모두 진실인가? 지금부터 따져 보자!
엽서에 그림만 그려 보낸 것은 1940년 연말부터 시작했고, 1941년 한 해 동안 70장가량이 된다. 첫 엽서의 서명은 썼다가 지운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그림부터는 내내 한글로 쓴 이름이 보인다.
먼저 이중섭의 그림을 보자. 엽서의 빈 면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아래쪽 구석에 적은 것은 자신의 이름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글자를 이루는 자모음을 위에서 아래로 놓이게 적지 않고 자모음을 가로로 풀어 적었다. 'ㄷㅜㅇㅅㅓㅂ'. 'ㅈ'이 아니라 'ㄷ'인 것은 잘못 적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평안도 고향 말로 적은 것이다.광복을 기점으로 박수근이 영문자에서 한글로 바꾼 것처럼, 이중섭도 'ㄷ'을 'ㅈ'으로 바꾼다 그런 다음 그 아래에 줄을 긋고는 그림이 그려진 연도를 숫자로 적었다. '194X'라 적혀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1940년대를 앞뒤로 나누었을 때 앞마디의 '19'다. 이 시대라면 우리의 말과 글을 송두리째 앗기고 심지어 이름마저도 일본식으로 강요되었던 때다. 이중섭이 태어났을 때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났다는 이미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지 6년이 지났을 때고, 그가 살아간 대부분의 시간은 일본의 식민 지배기였다. 학교에서도 1학년을 제외한1학년은 일본인 교사가 아닌 우리 동족 교사가 가르쳤다 모든 교육이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학교 안에서의 모든 대화는 일본말로 하도록 강요받았다. 하물며 일본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리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졸업한 그는 학교를 모두 마치고 화가 활동을 할 때까지 공공연히 한글로 이름을 썼다. 위에서 언급한 그림엽서는 자신이 사랑하게 된 일본 여성에게 띄운 것으로, 그 엽서 속 그림에까지 한글로 이름을 썼다. 그 당시 이런 모습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중섭은 모아쓰기를 하지 않고 'ㄷㅜㅇㅅㅓㅂ'이라고 풀어쓰기를 했을까?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풀어 썼을 때 그림과 잘 어우러져 보기 좋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 한 가지는 한글 풀어쓰기가 당시 한글 운동의 하나로 벌어졌던 것도 꼽을 수 있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도 그 운동에 몰두한 적이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우리 문화를 서양식으로, 나아가 숫제 버리고 서양의 것을 도입하자는 흐름이 분명 있었다. 이중섭도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동양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요사이 들어 '한국화'라고 부르는 그림에는 아무도 영문자로 이름을 적지 않는다. 대부분 한자로 적는다. 그리고 드물게 한글로 적은 것이 보인다. 동양화건, 서양화건, 아니 어떤 그림이건 한글로 이름을 쓰는 화가를 찾기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일이 비단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영문자로 한껏 멋을 부려 이른바 '싸인'바른 표기는 '사인'이다을 하고, 심지어 영어식 이름을 따로 만들어 명함까지 만들어 돌리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 그 칼바람 속에서도 당당하게 한글로 이름을 쓴 이중섭의 태도가 새삼 돋보인다.
글·자료_ 최석태
부산에서 나고 자람. 부산대학교에서 그리기, 판화, 조각 등 미술 실기를 했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서울미술관  큐레이터, 《계간미술》과 《월간미술》, 《월간중앙》 기자를 거쳐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며, 지은 책으로는《이중섭 평전》2000,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2001, 《조선의 풍속을 그린 천재 화가 김홍도》2001, 《정선의 세계로》2007 등과 만화에 대한 전시를 다수 기획하고,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