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여러가지 밥-모내기를 하다가 먹는 '못밥', 들에서 먹는 '들밥'

이산저산구름 2012. 7. 25. 15:20

들일을 하다가 들에서 먹는 밥이 '들밥'인데, 특히 모내기를 하다가 들에서 먹는 밥은 '못밥'이라고 합니다. 모내기는 두레를 꾸려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두레에 참여한 사람들이 차례로 지어 공동으로 먹는 밥을 '두레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먹을 수 있게 그릇에 담은 밥은 '모둠밥'이라고 합니다.

나는 때로는 어느 항구의 선술집들이 늘어선 선창을 거닐기도 하고, 때로는 광산의 갱 속에서 땀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햇살마저도 숨을 죽이며 내리는 시골의 논두렁에 걸터앉아 들밥을 먹기도 했다.
<노명석, 사육>


농민들 밥 먹는 인심이란 어디서나 그렇듯, 여기서도 마치 농사 때 두레꾼 못밥 먹듯 곁다리로 나온 동네 사람들이 백 명도 넘었다. <송기숙, 녹두장군>

일을 하다 보면 금방 배가 꺼지므로 끼니 외에도 참참이 먹을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음식을 가리켜 '곁두리'라고 합니다. '새참' 또는 '참밥'도 비슷한 말입니다. 새벽에 일 나가서 아침과 점심 사이에는 '아침참'을 먹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는 '낮참'을 먹습니다. 저녁을 전후로 해서 쉬는 동안에는 '저녁참'을 먹습니다. '밤참' 또는 '야참'은 저녁을 먹고 나서 한밤중에 차려 먹는 음식을 말하는데, 꼭 일을 해야 먹는 것은 아닙니다. 밤참처럼 끼니때가 한참 지난 뒤에 차리는 밥을 가리켜 '한밥'이라고 합니다.

가을일에는 손톱 발톱도 먹는 것이고 아침 저녁 곁두리까지 다섯 때를 먹어도 뱃구레는 늘 장대 빠진 차일인 것이 가을 식성인데······. <송기숙, 암태도>

안방에서는 밤참들을 먹는지 집안 식구들이 몰려 앉아서 수선거리고, 부엌에서는 등잔불이 껌벅거리는 속에 삼봉이가 아궁이 속으로 기어 들어갈 듯이, 다붙어 앉아서 무엇을 꺼떡거리고 있는 것이, 반쯤 지친 문 사이로 보인다. <염상섭, 무화과>

이렇게 일꾼들 먹이려고 짓는 밥을 '일밥'이라고 하고, 특히 품을 사서 쓰고 먹이는 밥은 '품밥'이라고 합니다. 일도 하지 않고 거저먹는 '공밥空-'과는 그 맛이 다르겠지요. 공밥만 먹어 버릇하면 훗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밥'이나 빌어먹을지도 모릅니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고 동냥밥도 얻어먹지 못하여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보면 죄를 지어 결국엔 '옥밥'을 먹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옥밥을 '콩밥'이라고도 하는 까닭은, 예전에 교도소에서 죄수들에게 먹이던 밥에 콩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거지나 죄수가 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할 도리를 다하지 않고 무엇이든 쉽게 얻으려고 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겁니다. 밥값은 하며 살아야겠지요.

일 년내 품밥 들여서 농사지은 것이 죄다 물에 씻기고 말았으니 그 손해는 차치하고라도 장차 이해 겨울을 어떻게 살며 내년 농사를 어떻게 짓겠느냐 말입지요. <이기영, 고향>

갈 밭이 없으니 삼이라도 삼아야지, 그저 놀기만 하고 공밥만 먹어서야 쓰겠나. <김용식, 고려 백정의 사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더럽고 괴로운 데가 옥인 모양으로, 사람이 먹는 것 중에 가장 맛없는 밥이 옥밥이었다. 배는 늘 고팠다. <이광수, 꿈>
글_ 이대성
이대성
현재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온 겨레가 함께 볼 수 있는 국어사전 편찬과 우리말 다듬기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