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마음을 아끼고 정신을 다스리다

이산저산구름 2011. 4. 13. 14:38

 

그가 바로 인흥서원과 명심보감 목판본을 지키는 추계 추씨 24대 종손 추연섭 옹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원을 지키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역사와 문화 길잡이를 자청하는 추연섭 옹, 그리고 인흥서원과 명심보감 알리기에 빠져있는 또 한 사람의 문화재 지킴이 김종택 교장선생님과 함께 한 명심보감의 시간은, 문자 그대로 마음을 밝히는明心보배로운 거울같았다.


인터뷰라 생각마시고 평소 서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하듯이 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더니 추연섭 옹은“아, 그렇습니까! 따라 오이소!”하며 휘적휘적 걸어 서원 앞 안내게시판 앞에 선다. 그리고는 한글과 영문으로 구성된 게시판의 내용을 영어로 막힘없이 읽어내려가며 해석을 덧붙이고 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서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설명한다. 올해 89세의 노인장으로서는 대단한 활약이다. 1987년 교장으로 정년퇴임 후 1988년부터 지금까지 24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원과 명심보감 판본을 지켜왔다는 얘기다.

 


사명감과 자부심 없이는 어림없을 일이다.“명심보감이라 카는기 도덕 아입니까, 부모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결국엔 옳은 사람이 되라 그기거든요. 나야 추씨 종손으로 여기도 내 집이니까네 지킨다꼬 하지만 김종택 교장선생님은 옳은 마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니 정말 대단하시고 고맙지요.”

 

추연섭 옹의 동반자, 문화재 지킴이 김종택 선생님. 대구 송일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2004년 문화재 지킴이를 자원,2005년 위촉을 계기로 맺어진 인흥서원과 추연섭 옹과의 인연이어느덧 7년째다.

 

“명심보감은 고려 충렬왕 때 문신 노당 추적秋適선생께서 공자를 비롯한 여러 현인들의 금언과 명구를 편저한 책입니다. 천자문에 버금가는 교육책이지요. 중간에 유실되고 없어진 판본을 후손인추세문 선생께서 1869년 다시 만드신 것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도 보급되어 있고 영문으로도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책입니까. 이런 좋은 책의 판본을 지키는 일을하고 있으니 제가 더 영광이지요.”

김종택 선생은 재활용품을 수거해 판 돈으로 국화 화분을 사 서원곳곳에 비치하고, 명심보감 본문을 알기 쉽게 풀어 쓴 명심보감 소식지를 매월 발행해 무료로 배포하는가 하면, 일요일 아침이면 문화재 지킴이를 해 보고 싶어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서원을 청소하고 서원 근처 환경을 살핀다고.“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40여 년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지요.

 

추연섭 어르신이 서원과 명심보감에 관해서는 저보다 훨씬 학식이 뛰어나시니까 그 가치에 대한 서술은 어르신께 맡기고, 저는 그저 서원과 주변의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인흥서원과 명심보감 판본을 알리는 일에 힘을 쓰고 싶습니다. 이제 퇴직하면 서원 근처에 꽃을 많이 심으려고 합니다. 서원까지 오는 길 따라 국화가 죽피어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 마음이 더 즐겁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전승하려는 것은 인흥서원이나 명심보감 목판본이 아니다. 현존하는 유산에 배어있는 선조들의 정신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고, 알아준다고 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명예는 뭇사람들의 평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에서 얻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옳게, 바르게, 착하게 살면 된다는 두 문화재 지킴이의 모습이 이미 명심보감의 말씀과 닮아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 역시 계승하고 지켜나가야 할 또 하나의 문화재임을 알 수 있었다. 

글·정성숙 사진·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