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금속활자장, 임인호 보유자

이산저산구름 2011. 3. 15. 11:42

 

 

금속활자 : 금속활자장

“서적이 대량으로 출판되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이용해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금속활자와 같은 전통 인쇄술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속활자장 임인호 보유자의 이야기처럼, 일 년을 꼬박 매진하여도 책 한 권 펴내기 힘든 옛 인쇄방식은 뭇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독일 구텐베르크의‘42행行성서聖書’보다 78년이 앞서고, 중국의‘춘추번로春秋繁露’보다 145년 빨리 탄생한 것으로 밝혀진 직지의 존재.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직지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01년 9월)되면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인쇄술에 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금속활자 주조술鑄造術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아는 이는 드물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유형유산有形有産에 편중되어 온 까닭이다.

 

 

 

과학과 느림의 미학美學사이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두 가지 기법. 활자 하나하나를 밀랍으로 만드는‘밀랍 주조기법蜜蠟鑄造機法’과 모래로 주물틀을 만드는‘주물사주조기법鑄物沙鑄造機法’은 공예기술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담고있다. 목판인쇄술에 비하여 빠르고 대량인쇄가 가능한 금속활자의 발명은, 지식습득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정보혁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오늘날 인쇄기술의 여건 속에서는 금속활자 주조술을 습득하는 데에 느림의 실천이 요구된다.“500여 개의 활자를 만들어서 찍어내면 겨우 종이 한면이 인쇄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고는 꾸준히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수개월 배우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각기 다른 4만 자 이상의 활자를 주조하여 인쇄하기까지 일 년을 몰두해야 비로소 책 한 권이 엮어지는 셈이니 들이는 품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작업이다 보니 성미가 급한 사람은 포기하기 쉽다.


1㎝ 남짓한 나무토막이나 밀랍에 한 획씩 글자를 새겨 어미자語尾字를 만드는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청동 쇳물을 주형틀[거푸집]에 부어서 활자로 만들어 내는 작업의 일부는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200도의 고온에서 청동을 녹여내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전통방식에 익숙한 터라 기계를 이용해서는 솜씨를 발휘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아마도 그는 선조들이 일궈낸 방식과 다르게 편리함을 쫓아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스승과 제자, 옛 방식을 고수하다

임인호 보유자를 금속활자의 세계로 이끈 고故오국진 명예보유자. 서예의 대가이기도 했던 그는, 서각書閣을 업으로 삼고 있던청년 임인호의 솜씨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오자誤字가 나거나 글씨를 몰랐을 때, 그리고 필획筆劃이 시원찮으면 바로 그만두고 나가라고 하셨어요. 당신 스스로가 제작과정에서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강철 같은 성정과 옛것에 대한 애착이 서로 닮은 스승과 제자에게 있어서 밀랍을 이용한 금속활자 주조법은 풀어야 할 과제였다. 하나의 주형틀을 통해 열 개의 금속활자가 온전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율이 맞지 않는 주형틀은 열을 견디지 못해 깨지기 일쑤였고, 겨우 네 글자 정도만 인쇄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률이 낮았다. 모래와 황토의 황금비율을 찾기 위해 씨름하기를 6년. 오랜 진통 끝에 밀랍주조법을 완성시킨 그날의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는 200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보유자(2009년)가 되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올곧은 가르침을, 제자는 스승의 뒤를 잇게 됨으로써 가르침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통문화로 세계를 품는 지혜

2006년부터 국가의 지원으로 금속활자본의 복원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통문화로 세계를 품는 지혜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직지直指’도 그 의 손을 통해 복원이 한창이다. 복원된 작품들은 국내외 전시를 통해 금속활자 주조술의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보여 주고 있다.

“독일을 비롯하여 러시아 등 해외에서 금속활자 제작을 시연하면, 제작 과정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예요. 직지의 존재만 알았지 금속활자기술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금속활자 복원의 필요성에 대해 묻곤 한다. “ 은 먹과 종이, 장인의 기술이 어우러져 천 년이 흘러도 끊이지 않는 우리의 인쇄문화예요. 책이 흔하다 보니 중요성이 퇴색되어가는 듯한데, 지금의 인쇄기술이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인쇄를 통해 발달되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금속활자 복원에 매진해 온 세월이 아니기에 그의 열정은 더욱 값지다. 그가 품어낸 활자가 알알이 모여책으로 엮어질 때마다‘금속활자의 왕국’이 되살아나고 있다. 

글·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