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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옛건물(금강산의 역사와 문화 11)

이산저산구름 2010. 10. 19. 16:34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11)

금강산의 옛건물


오늘 남아있는 금강산지구의 옛건물은 모두가 불교관계의 절간 건물이다.


▲ 금강산 신계사
4세기말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봉건국가의 장려정책으로 전국에 수많은 절간들이 건설되였다. 절간들은 처음에 주로 도시들과 주민지역에 많이 건설되던 것이 불교내부의 모순과 불교교파의 분화 특히 현실사회생활과 멀리 리탈할 것을 요구하는 선종교파의 영향으로 심심산골에까지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천하명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금강산도 여기에서 례외로 될수 없었다.


금강산에 절간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5~6세기경부터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절간건설의 이른시기에 해당된다. 20세기중엽까지 금강산 4대절간으로 불리우던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 유점사는 6~9세기 사이에 이미 상당히 큰 규모로 건축되였다. 이 절간들은 천수백년동안에 수십차례의 보수, 재건, 증축 과정을 거쳐 최근까지 전해왔었다. 그밖에 금강산에는 정양사, 장연사, 발연사, 송림사, 도산사, 금장사, 삼장사, 문수사 등의 이름있는 절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금강산에는 표훈사 반야보전을 비롯한 10여채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 금강산 보덕암
금강산에는 또한 보운암, 상운암, 보덕암, 만회암, 불지암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세워졌다. 리조시기에 불교의 지위가 약화되고 큰 규모의 절간들을 마음대로 지을수 없었던 형편에서도 암자들은 계속 건설되였다.


그리하여 리조초엽에도 금강산에 100여개의 절간들이 있었고 여러 력사기록들에 나오는 암자들의 이름을 종합하여보면 180여개나 보인다. 이렇게 많던 암자들도 인민들속에서 불교에 대한 불신이 강화됨에 따라 점차 줄어들어 1942년 그것은 28개로 되었다. 전쟁시기 미제의 폭격으로 이 암자들의 거의 전부가 파괴소각되였다. 그리하여 오늘 금강산에는 보덕암, 불지암, 마하연의 부속건물인 칠성각 등 불과 몇채의 암자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금강산의 옛 건물을 통해서도 우리 나라 민족건축의 특색과 건축술의 우수성을 여러모로 찾아볼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금강산에 절간을 지으면서도 불교건축의 도식에 구애되지 않고 건축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조화시키는 훌륭한 건축술을 창조하였다. 기암절벽과 폭포수, 맑은 물과 아름다운 풍치를 건축배경으로 적극 끌어들여 건물이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였으며 환경자체를 건축물과 배합하여 인공적으로 더 조화롭게 조성하는 등 재치있는 건축구상과 기교를 펼쳐 보이였다.


▲ 금강산 표훈사
특히 산속에서 건설을 하다나니 평지에서와 같은 격식적인 틀에 의존하지 않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 지세에 맞게 건축물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는 수법들을 발전시켜나갔다. 그리하여 중심에는 중심구성축을, 그 주변에는 여러개의 보조구성축을, 구성축을 설정할수 없는곳에서는 등고선을 따라 건물들을 길게 배치하였다. 표훈사를 비롯한 금강산의 절간들이 이런 질서에 따라 배치되였다. (* 일반적으로 절간건축에서는 제일 앞에 문, 그안의 뜰악에 불탑, 그 다음에 부처를 앉히는 금당, 그뒤에 불교교리를 선전하는 강당 그리고 금당 또는 탑 량옆에 건물을 놓기도 하고 절간주변에 회랑을 두르기도 하였다. 대체로 남북중심축선상을 따라 건물들이 차례로 배치되고 좌우대칭으로 계획되는것이였다.)


우리의 선조들은 또한 금강산의 절간건물들을 매우 다양하게 구성하고 배치하였다.


이곳 절간들은 불교를 선전하여야 하였고 주민지대와 멀리 떨어져 독자적인 경리를 꾸려나가야 하였던 조건에서 각이한 사명을 지닌 건물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건축가들은 절터의 맨뒤에는 기본부처를 놓은 반야전, 능인전, 대웅전 등을 배치하고 그앞 동서에는 중들이 ≪도≫를 닦기 위하여 만들 구들을 놓은 승방을, 또 그앞에는 흔히 높직한 다락식 누각을 세웠으며 대웅전 주변에 미륵전, 관음전, 명부전, 라한전, 산신각들과 경리용건물 등 갖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크고작은 여러개의 건물들을 높고낮은 지대에 배치하면서 뒤건물이 앞건물의 배경이 되고 앞뒤건물이 서로 보충하면서 변화다양한고 웅장화려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건축의 전통적인 수법이며 금강산의 절간건축에도 바로 이러한 수법과 경험이 적용되여있다.